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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 낙태죄는 결국 사회적 뇌관이 될 것인가?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할 경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간주하여 1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고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원래 2016년 9월에 시행령이 만들어졌으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반발하자, 시행시기를 늦추다가 면허정지 처분을 12개월에서 1개월로 줄여서 공식적으로 고시를 시행한다고 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고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2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①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②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③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④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 또는 배우자의 동의를 조건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 낙태죄에 관한 법령은 1953년에 제정된 이후로 아직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법이다. 따라서 실제로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선고유예로 실질적인 처벌을 면하게 된다.
게다가 낙태죄를 만든 이유는 무분별한 낙태수술을 막기 위해서지만, 나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우생학적인 근거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의학적인 이유와 외국의 사례를 들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모든 모성감염이 바로 태아에게 감염되는 것이 아님에도 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오히려 중절수술이 합법화되며, 부모가 유전적인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생학적인 면만 내세워 실제로 유전되지 않을 수도 있음에도 이 역시 중절수술이 합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법에서 정해서 불필요한 중절수술을 만들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반대로 무뇌아 같은 심각한 기형아는 분만 후 대부분 사망하는데 이를 낙태죄로 처벌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의학은 계속적으로 발전해왔음에도 오래된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모순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의학적 판단의 결과에 따라 낙태수술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둘째로, 무분별한 낙태수술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과연 낙태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낙태수술을 줄일 수 있었는지 그 효과에 대한 문제이다. 
OECD 30개국가중 23개국에서는 이미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이 일본법에 근거한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조차도 사회경제적인 이유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불법화함으로써 수술비가 상승하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수술을 하여 산모의 건강에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10만명정도가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임신을 한 여성이 본인의 임신을 포기하는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이 아이가 태어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가 제대로 보호받고 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하기는 힘들고 사회적으로도 범죄발생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의학적으로도 임신 12주까지는 태아의 형태가 형성되는 시기로서, 이때까지는 인간으로서 의식이 있거나 감각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낙태를 허용한 국가에서도 임신12주까지는 허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통계에 의하면 낙태 추정 시술 건수 중 96%가 임신 12주 이내라는 보고가 있다.
결론적으로 임신 12주까지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수술을 허용하는 것으로 개정되어야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향후 안정된 환경에서 임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출산율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산부인과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산율의 급감은 분만병원에도 타격을 주었지만 국가의 경쟁력에서도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복지부는 타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분만수가를 올려줄 수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타과하고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이다. 그래서 저출산 고령화 대책위가 국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분만 건수가 감소하면 청구건도 감소하여 공단에는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과거에 복지부는 분만건수가 연 50건 미만이면 분만수가를 2배로 해주는 시범사업도 했었다. 그만큼 복지부는 분만병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분만수가를 적어도 200%이상 올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산부인과의 환경을 잘 알고 있는 복지부가 이제는 낙태죄를 적용하여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한다. 
만약 어떤 산부인과의사가 낙태수술을 하여 법적으로 선고유예가 나왔다 하더라도 시행령에 따라 면허정지 1개월 처분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복지부는 12개월에서 1개월로 줄여주었다고 마치 큰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개원가에서의 면허정지 1개월은 현실적으로 폐업을 하라는 것이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의료 환경에서 묵묵히 의사로서 여성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의사는 비도덕적 의사라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된다. 이것을 지켜본 대다수의 산부인과의사는 결국 비록 사문화된 낙태죄라 하더라도 면허정지처분을 피하기 위해서 중절수술을 거부하게 되고 많은 여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비전문가에게 수술을 받거나 경제적 사정에 따라 중국이나 일본으로 수술원정을 떠나게 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할 것이다. 

한 산부인과 병원의 폐업은 그 의사만의 고통이 아니라 여성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복지부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다. 그런 복지부가 나서서 이 폭탄 뇌관 같은 시행령을 강행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시행령으로 인한 후폭풍은 누가 책임을 질것인가? 
어느 누구도 지금의 낙태법을 현실적이고 의학적 근거가 있는 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낙태법의 위헌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며, 많은 여성 단체가 여성의 자기신체 결정권을 보장받도록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위에서 설명한 여러 이유 때문에 현재의 낙태법은 개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여 낙태법이 개정될 때까지 그 뇌관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복지부가 비도덕적인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 면허처분을 하고자 했으나, 그동안 구체적인 행위가 명시되지 않아서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여 개정안을 만든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의사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시행령이다. 그런데 여기에 낙태죄를 추가한 것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복지부는 진정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죄 없는 의사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산부인과 단체와 만나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하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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