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의사 인력 수급을 둘러싼 정책 혼란과 의료 현장의 위기는 과학도, 책임도 없는 수급 추계위원회의 부실한 추계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필수의료의 미래를 위협하는 왜곡된 수급 추계를 양산해 온 수급 추계위원회를 강력히 규탄한다.
수급 추계위원회가 제시한 추계는 전제와 가정부터 불명확하며, 의료 이용 행태 변화, 필수의료 붕괴의 구조적 원인, 지역·전공별 불균형이라는 핵심 요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축소했다. 추계 방법과 자료에 대한 검증은커녕 최소한의 투명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분석을 ‘전문적 판단’으로 포장한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이자 국민 기만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급 추계위원회가 스스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포기하고, 이미 정해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형식적 기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과학적 불확실성과 한계를 명확히 밝히기는커녕, 단편적 수치만을 제시해 의대 증원이라는 단순하고 위험한 결론으로 정책을 유도했다. 그 결과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본질적 문제는 방치된 채, 의료 교육과 수련 체계는 붕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의사 인력 문제를 단순한 숫자의 문제로 왜곡한 수급 추계위원회의 판단은 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그 기반을 더욱 잠식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추계가 정책의 출발점이 되는 한, 어떤 의료 개혁도 성공할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의료 현장에 전가될 것이다.
의료계가 과반으로 추천한 위원들의 핵심적인 문제 제기와 전문적 의견은 추계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으며, 인공지능에 따른 의료 생산성 변화, 실제 진료 현장의 업무량과 근무 일수, FTE 기반 노동량 자료 등 의료계가 반복적으로 요구한 핵심 변수들 또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는 요구한다. 수급 추계위원회는 이번 부실 추계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추계 과정과 결과 전반을 즉각 공개하라. 아울러 현재의 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은 이미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만큼, 전면적인 재구성과 근본적 개편 없이는 더 이상 존속할 명분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사 인력 정책을 부실한 추계와 무책임한 위원회에 맡길 수는 없다. 수급 추계위원회는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실패를 직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다. 부실한 추계와 형식적인 위원회 운영이 더 이상 정책의 출발점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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