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신건강센터가 국가정신건강 중추기관으로의 도약을 선포하고,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근 발표된 ‘국가적 국민 정신건강 전주기 돌봄’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연계된 센터의 역할을 논의했다.
정부 주도의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이 제시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질적인 재정 및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지속적인 동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20년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상위권(1·2위)을 기록했으며, 가장 최근 조사결과인 2020년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4.1명으로 전체 국가의 평균인 10.7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특히 2018년부터는 또다른 자살률 상위권 국가였던 리투아니아를 앞질러 3년 연속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감이 확산되며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작년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정신건강을 주요 국가 아젠다로 공포하고 4대 전략 및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1962년에 개원해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으로서 다양한 정신건강 사업을 진행해 온 국립정신건강센터(센터장 곽영숙)은 지난 2월 1일 센터 11층 열린 강당에서 ‘창립 62주년 기념행사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창립 기념행사에서는 ‘정신건강 증진을 통한 국민행복 실현, 예방부터 회복까지 함께하는 정신건강 중추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 선포와 함께 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진행됐다.
심포지엄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기조연설과 특강이 진행됐고, 2부에서는 정신건강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분야별 실행 방안이 논의됐다.
1부의 좌장을 맡은 곽영숙 센터장은 “이번 개원 기념 심포지엄을 준비한 이유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나아갈 시대적 전환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임상적인 연구 결과를 보며 정책과 향후 방향에 대해 깊이있게 고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국립건강정신센터에 드리는 세 가지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현재 코네티컷 보훈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 교수는 미국에서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안했다.
먼저 나종호 교수는 “뉴욕의 공공병원인 벨뷰 병원은 시 재정으로 운영이 되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회 취약계층의 최종 저지선으로서 다른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이 최종으로 오는 병원이다. 이처럼 국립정신건강센터도 공공병원으로서 한국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가 돼 달라”고 말했다.
이어 자살예방의 모범 사례로 미국 보훈병원의 예시를 들며 “미국 보훈부는 자살예방에 많은 재정을 들이고, 전체 군인으로부터 위험군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전략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한국의 자살예방 예산이 451억인 반면, 미국 보훈부는 6,000억원을 사용했다. 이는 국가별 경제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큰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역 군인은 전쟁 PTSD 등으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며 2020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31.7명으로 미국 전체 자살의 22%를 차지하는 수치다. 하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자살예방 정책의 효과로 2018~2020년 사이 전역군인의 자살률은 전역군인이 아닌 미 국민 대비 5.5% 감소했고, 2020년은 2006년 이후 최저의 자살률을 기록했다.
나종호 교수는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으며, 또한 많은 재정이 필요한 일”이라며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미국 보훈병원처럼 한국 자살 예방의 구심점이 돼 달라”고 말했다.
나 교수는 “우리나라 정신건강 예산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거의 2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체 보건 예산의 2% 이하고, OECD 평균 5%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구조적인 낙인 또한 남아있는 가운데, 최근 대통령 주재 정신건강 정책 회의가 열린 것은 고무적”이라며 “마지막 부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한 헌신과 노력을 이어가주시길 감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가 ‘외국의 비자의 입원제도 및 국내외 제도 발전 방향’에 대해 특강을 진행했다. 더 이상 가족에게만 정신질환의 문제를 맡길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된 국내 정신응급 기관들이 정작 정신응급 환자에 대한 입원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것이 문제로 제기됐다.
백 교수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의 해외 사례를 통해 정신질환 환자가 억울한 불이익을 누리지 않게 안전선을 마련하되, 필요한 경우 입원을 진행시킬 수 있는 ‘비자의 입원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비자의 입원 제도를 시행중인 미국은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판사가 20~30년간 고정적으로 사법입원을 심사하도록 했으며, 영국도 정신건강심판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중 수십만 건의 입원 중 제기된 심사는 4천 건 수준으로 적은 수준이라고 했다.
백종우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의 정신의료서비스 수가 보장이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60명의 입원환자를 1명의 전문의가 보는 상황의 개선 없이는 어떠한 제도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최근 국민의 8%(4백만 명)가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양적 이용이 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시범사업 등 고강도 서비스가 많이 시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발표 이후에는 현재 국립정신병원의 역할의 모호하다는 점과 함께 만성적인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재로서는 예산의 지원이 적어 민간병원, 개원가와 비교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립정신건강센터도 92병상 운영에 그친다.
백종우 교수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발전을 기원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립정신건강복지센터로 모든 데이터가 모여 정책 수립의 근거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외부 전문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논의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형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