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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재개정 필요해 보이는 허술한 정신건강복지법

비자의입원 시 타 정신의료기관 전문의 추가진단 필수인데, '자체진단' 여전히 이뤄져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자의입원에 대한 '같은 의료기관 내에서의 추가진단(자체진단)'이 여전히 민간지정병원에서 높은 비율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문제의 결정적인 해결책이 될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추가진단전문의 채용은 아직도 절반도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9월 한 달 동안 민간지정병원에서 이루어진 신규입원에 대한 추가진단 1,901건 중 무려 25.1%에 달하는 477건이 자체진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지정병원에 신규로 입원한 환자 4명 중 1명은 자체진단으로 비자의입원을 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민간지정병원에서 내려진 입원연장에 대한 추가진단 역시 1,899건 중 12.5%에 해당하는 238건이 자체적으로 이뤄졌다.

21년 만에 전부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올해 5월 30일 시행됐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 인권보호 강화를 위한 입·퇴원제도 개선과 정신질환자 복지지원 및 국민 정신건강증진에 대한 사업근거를 새로 마련한 법률이다.

과거에는 보호자와 전문의 1인의 동의만으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비자의입원을 허용했으나,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비자의입원 시 '전문의 1인의 진단'과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의 전문의 진단'이 함께 이뤄져야만 2주 이상 입원이 가능하다.

한편, 개정법 시행 초기에 추가진단을 할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 인력이 부족할 것을 참작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자체진단을 허용했다.

그런데 개정법 시행 5개월이 지난 현재,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자체진단이 민간지정병원들을 중심으로 높은 비율로서 이뤄지고 있다.

정춘숙 의원은 "비자의입원에 대한 추가진단 제도는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라는 관점에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로 꼽히면서도, 제도 시행 시점부터 꾸준히 졸속행정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부분이다."라며, "5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도 보완을 위해 누구보다도 보건복지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 쏟았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체진단이라는 예외지침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참담한 현실이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7월부터 9월까지 민간지정병원에서 이루어진 전체 추가진단건수 대비 자체진단건수 비율은 국공립병원보다 5~6배 이상의 수치를 보였다. 민간지정병원에서 이뤄지는 자체진단 건수 조절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개정법의 취지에 맞게, 각 지역으로 파견돼 추가 진단을 수행할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속 추가진단전문의 확충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태이다.

지난 7월 27일 메디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재훈 정책이사는 "국공립정신병원은 예산문제로 인력충원이 안 됐다며 그 지역 민간정신병원들끼리 서로 지정해 적정성 평가를 진행하라고 한다. 민간정신병원은 급성기 정신병원이 많아 본인들 입원환자 관련 업무를 진행하기도 바쁘다. 따라서 적정성 평가를 위해 지정된 외부 민간병원에 신청하면 시간이 어렵다며 반려된다."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개정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재훈 정책이사는 "시간은 지체되고 결국 자체 진단으로 전환돼 같은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행하고 있다. 정신병원에 대한 입원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겠다는 법의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고, 해당 병원은 병원대로 행정업무만 많아져 진료에 투자할 시간만 줄어들고 있다. 결국, 의료서비스의 질이 현재 법으로 인해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외부전문의가 입원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하는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환자가 해당 병원을 상대로 외부기관에서 부적절한 입원이라고 결정이 났으니 자신은 부당한 입원을 당했다고 해당 의료기관에 대해 소송을 진행할 경우 병원은 고스란히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라고 추가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재훈 정책이사는 "이에 대한 법적인 규정이 모호한 상황에서 병원은 외부 전문의의 적정성 평가에 대해 소명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또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규정도 없다. 향후 이와 관련된 많은 문제가 야기될 위험성이 높다고 예상된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7월 22일 서울대치과병원 강당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울산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준호 교수는 "어느 나라도 입원 시에 소속이 다른 전문의 2인 진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같은 병원 전문의 2인 진단, 일본은 보호 입원 시 전문의 1인이 진단하며, 미국 · 캐나다 · 대만도 2인의 정신건강전문가라고만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안준호 교수는 "우리나라 전문의 2인 진단제도는 UN과 WHO의 인권 보호 원칙에 없고, 선진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까다롭고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제도다. 이를 OECD에서 가장 열악한 수준의 정신과 전문의 인력과 재원을 가진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국립정신건강센터에 16명의 추가진단전문의를 채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춘숙 의원실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현재 추가진단전문의 채용에 대한 상황을 문의한 결과, 채용인원 16명 중 고작 6명(기술서기관 1명, 전문임기제 가급 4명)만 채용이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8월에 있었던 추가 채용 공고에는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원자조차 없는 상황에서 시행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 역시 향후의 추가적인 채용계획에 대해서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추가 채용계획에 대해 '시행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일임한 상태'라고 답변했다.

정춘숙 의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속의 추가진단전문의 채용에 나서야 할 텐데, 시행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채용에 대한 모든 절차를 맡기고 정작 보건복지부는 손을 놓고 있는 지금 상황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춘숙 의원은 "법 개정 취지에 맞는 추가진단 제도의 올바른 시행과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주무부처로서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30일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공청회에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동진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의 핵심은 입원 단계에서 입원의 필요성 여부를 심사하는 사전적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지만 2인 진단이나 입원 적합성심사는 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의료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준사법적 위원회나 법정절차, 혹은 제3의 기관이 입원 여부를 판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재훈 정책이사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의 증상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개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 법이다. 이런 부분에서 볼 때 환자 의견 존중이라는 미명하에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법이다. 사법입원제도의 도입과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은 천천히 진행될 문제가 아니라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안준호 교수 역시 "정신건강복지법의 무리한 시행으로 열악한 의료시스템은 더 악화되고, 형식적 시행으로 인권보호를 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재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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