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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학회

“시설·인력 부족한 분만취약지 의료기관 지원정책 시급”

100~300병상 병원 운영 시 산부인과 필수과 지정
산부인과 신규 지원 전공의, 특히 남자 의사 감소


분만취약지 증가로 분만인프라가 붕괴하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신규 산부인과 지원 의사가 감소하고 있어 적극적인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난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제107차 학술대회 및 제26차 서울국제심포지엄을 기념해 연 기자간담회에서 출생아 수 감소와 산부인과 지원 의사 부족 등의 영향으로 기존에 분만을 시행하던 산부인과 병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분만인프라가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의 분만취약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학회 홍순철 수련위원장(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은 “분만취약지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라북도에서 분만취약지가 아닌 곳과 분만취약지인 곳을 놓고 표시해보면 분만취약지가 훨씬 많고 분만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서 “전국 지방의 현황이 거의 비슷하다. 정부에서 분만취약지에 병원을 개설하면 병원설립비로 10억원을 지원하고, 운영비로 2억원 이상을 매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신청하는 곳이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24시간 하루 종일 분만실을 운영할 의료진과 간호인력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그 정도 국가 지원 갖고는 운영하기 어렵다는 게 홍 위원장의 주장이다.

열악한 근무환경도 분만취약지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학회 이정재 보험위원장(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은 “분만실은 응급실과 마찬가지로 의사, 간호사가 24시간 존재해야 하는 장소인데 산부인과 의사들은 낮에 환자들을 진료하고 밤에 근무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오히려 응급실보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면서 “응급실은 시간제로 근무하며 팀을 이뤄 당직을 서면되는데 산부인과는 그런 조건이 못되는 상황에서 분만실을 지켜야 되다 보니 삶의 질이 많이 떨어져 산부인과 지원인력도 감소하는 등 분만실 유지가 여러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분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는 응급의료센터 개념으로 분만실을 운영했으면 좋겠고, 거기에는 24시간 분만할 수 있는 의사들이 응급의학과 의사들처럼 근무하면서 언제든지 분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인건비나 시설 유지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분만실, 시설유지비와 인건비를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면 분만취약지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100~300병상 사이의 병원들에 산부인과를 필수과로 두도록 함으로써 전국에 분만하는 산부인과 병의원 수를 늘릴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100~300병상 병원 설립 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필수로 있어야 하는 규정을 어려운 중소병원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소위 ‘중소병원 살리기 운동’ 이후로 4개 필수진료과에서 3개과만 있어도 100~300병상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산부인과나 소아과가 빠지고 있어 법 개정을 통해 이를 막자는 것.

홍순철 위원장은 “이 정책은 공공의료를 확충해서 환자들이 필수진료과도 지방으로 가게끔 하겠다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역행하는 것”이라며 “분만취약지 산부인과병원 설립비 지원 사업을 분만취약지에서 산부인과 분만실을 운영하는 중소병원의 경영이 악화되면 산부인과 의사를 고용하거나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로 전환해서 필수진료과가 지방병원에서도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회 이필량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도 “단순하게 숫자 논리에 의해서 ‘이 지역은 분만의료기관이 없으니까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는 안 되고, 지역적 인구분포를 토대로 지역 의료기관에 분만실을 개설하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의사 몇 명이 있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어야지 그것이 진정으로 분만취약지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분만의료기관이 사라지는 문제도 크지만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신규 의사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도 산부인과학회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다.

학회에 따르면, 2000년에 270여명의 산부인과 전문의를 배출한 이래 매년 전문의 배출 수가 급격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124명을 배출했다. 특히 남자 산부인과 전문의가 전체 전문의의 6%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야간당직을 설 전문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진 상황이라는 것.

학회는 산부인과 지원 전공의 수가 감소한 원인으로 출생아 수 감소와 무과실 의료사고에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꼽았다.

실제 지난 9월 학회가 산부인과 전공의가 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에 대한 명확한 정책이 없어 산부인과를 하고 싶어도 지원을 못하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홍 위원장은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배상방안 마련 필요성을 제시하며 “코로나 백신 이상반응으로 인한 문제를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처럼 분만과 관련된 합병증, 가령 임산부가 불가피하게 사망하거나 태아가 뇌성마비가 오는 등의 의사가 최선을 다했지만 피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나라에서 임산부에게 약 30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그 돈을 분만의료기관에 내고 보험을 가입하면 만약 출산하다가 아이가 뇌성마비가 오는 경우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만들어져 분만취약지로 가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는 게 홍 위원장의 설명이다.

산부인과 지원 의사들의 교육 역시 중요하다. 

현재 학회는 코로나19나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로 임산부들이 남자 의사를 기피하는 상황 때문에 당장 환자를 옆에 두고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교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필량 이사장은 “현실적으로 전공의들의 술기 교육이 열악하다. 무엇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온라인으로 이론교육, 실기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실제로 환자를 옆에 두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회에서 노력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우리의 간접교육을 많이 지원해줘서 금년 정부 지원액이 1억 3000만 원 정도 된다. 전공의 수련 역량강화를 위해서 내년에도 어느 정도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도 “분만뿐만 아니라 모체태의학, 부인종양, 난임 분야에 근무하고자 하는 전공의들의 최상의 교육을 위해 학회에서 많이 노력하고 있다”라며 “시뮬레이션센터 교육과 온라인 교육도 준비하고 있고, 각 병원에서 현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학회는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최근 산부인과 진료 과정 중 남자 산부인과 의사에 의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 등에 대한 언론보도들에 대해 이 이사장은 “신부인과는 필수의료라는 명칭 아래 국민 의료를 담당하고 있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 그런 언론 기사들에 의해 산부인과 의사들, 특히 남자 의사들이 비슷한 동류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억울한 경우가 많다. 지금 어려운 산부인과, 남자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으려는 산부인과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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