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피임약 전문약 전환 앞서 ‘피임교육’ 시급

‘경구피임약 이대로 좋은가?’ 공청회 찬·반 팽팽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하자는 의견과 사회 현실을 인정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주목된다.

특히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피임약 복용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가 구축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박노준)는 29일 의협회관 동아홀에서 '경구피임약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피임약 분류에 대한 합리적 방안 마련을 위해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는 오남용과 부작용의 위험성이 높은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단체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노준 회장은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큰 약이 경구피임약”이라며 “의사회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효과적인 피임 방법을 정착시키기 위해 현재 피임약 분류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고 의견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고자 공청회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정호진 재무이사는 경구피임약 출시 이후 피임약 복용률 증가와 낙태율 감소 효과를 들어 전문약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 이사는 “최근 전문피임약이 나온 뒤 산부인과 전문의의 피임 상담이 처방과 병행되면서 피임약 복용률이 점차 올라가는 반면 통계상 인공중절수술률은 감소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등 선진국 대부분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피임약이 전문약으로 구분돼 있고 피임약의 복용율도 높다”면서 “피임교육의 일선에 있는 산부인과의사 단체가 좀 더 효과적인 피임약 관리에 대해 여러 전문가를 모아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구피임약 출시 이후 복용률 증가와 낙태률 감소 효과를 들어 전문약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정토론에서는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하자는 의사들의 주장과 현실을 고려해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경구피임약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지정토론에 참석한 대한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백은정 공보이사는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호 의무이사는 “피임이 필요한 여성이 제대로 복용할 경우 99% 이상의 피임 효과와 다양한 부가적인 이점이 있는 경구피임약의 효과를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활용하려면 경구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재분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피임약 선택부터 복용까지 산부인과 전문의의 실질적인 피임 상담과 함께 처방돼야 한다는 것.

이 의무이사는 “최근 전문약으로 분류된 피임약 2종의 경우 일반약으로 분류된 피임약 보다 연도별 판매 증가율이 높다”며 “의사와의 주기적 상담을 통한 복용이 더 효과적인 피임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임순 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도 경구피임약은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큰 약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효과적인 피임 방법으로 정착하기 위해 전문약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구피임약은 임부 금기약품으로 임신부가 복용시 태아나 임신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전신에 작용하는 호르몬제제로 고위험군 여성에서 혈전증, 뇌졸증 등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여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약제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경구피임약은 복합 호르몬 제제로 약제마다 호르몬 성분과 함량이 달라 피임 효과는 동일하더라도 기타 작용과 부작용이 상이한데다 전문약인 ‘폐경 후 여성호르몬 보충요법 제제’에 비해 경구피임약은 4~6배 높은 호르몬 함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에스트로겐과 합성프로게스테론의 호르몬제가 함유된 경구피임약이 일반약으로 분류된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것.

이임순 교수는 “산부인과학회에서도 우리나라의 안전한 피임약 보급을 위해서, 높은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서 산부인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한 안전한 피임약 복용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백은정 공보이사는 “경구피임약이 여성을 위한 ‘약’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공보이사는 “1970년대부터 국내에 경구피임약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약에 대한 적절한 필요성 교육과 관리의 원칙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당장 시급한 인구 억제라는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써 일반약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약국에 배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구피임약은 치료목적의 호르몬 제제로 산부인과 전문의료지식이 필요한 전문의료행위이며 약사는 이에 따라 복약 지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약의 최적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개개인에 맞는 투약기간이 필요하다”며 “성래전증후군 및 부정출혈의 조정 등을 위해서는 2~3개월 간격의 반복 투여 및 타 호르몬 또는 타 약제와의 병합 투여가 필요할 수 있는 만큼 전문의의 진찰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생리주기에 따라 다른 복약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만큼 경구피임약이 여성을 위한 '약'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약으로의 전환은 필수라고 피력했다.

◈현실 인정하고 약국 판매 유지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과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구피임약의 전문약 전환은 아직 이르다고 주장했다.

배정원 소장은 “우리나라 사회 현실은 건강한 성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면서 “피임약에 대해서도 성교육자들과 현장에서는 가급적 섹스를 막아보자는 원칙하에 피임약 교육을 피해 온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피임약에 대해 "부작용을 강조하며 원천적으로 사용을 봉쇄해 왔다"고 꼬집었다.

원칙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피임은 금욕이었으나 최근 들어 피임 방법으로 콘돔과 함께 경구피임약을 미혼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배 소장은 설명했다.

그래서 정확한 콘돔 사용법과 함께 경구용 피임약 복용법을 가르치고 응급피임약 사용에 대한 정보 제공과 경고를 진행했다.

배정원 소장은 “때로는 경구피임약의 다른 효과를 소용하면서 미혼들의 피임약 복용을 권유한다”며 “약국에서 피임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할 때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약을 선택하고 복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일이지만 현실은 피임을 상담하기 위해 의사를 찾을 미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배 소장은 “현장에서 피임약 복용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가 처방을 받을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미혼여성에게 던지면 대부분 "NO"라는 답변을 한다”고 말했다.

생리통 때문에 산부인과에 가는 것도 망설이는 미혼들이 자신의 혼전 성관계를 인정하는 피임약의 복용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 의사와 상담할 지 의문이라는 것.

배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성문화 상황에서는 경구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에만 구한다면 병원을 찾지 못한 미혼들의 낙태 건수는 명약관화하게 음성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식 연구위원은 “오늘날 여성들은 과거와 달리 경구피임제를 다양한 이유로 활용하고 있다”며 “자신의 특성을 고려해 약국과 병의원을 선택, 경구피임제를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더욱 더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후(응급)피임제와 같이 사전피임제를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된다면 피임제 복용방법에 대해 전문의의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이전 보다는 더 안심하고 안전한 임신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김동식 연구위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경구피임약은 이미 FDA로부터 안전성을 승인 받았고, 약사들의 복용 상담만으로도 경구피임제의 피임성공률은 콘돔(85%)보다 높은 98%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사회와는 다르게 경구피임제(3% 미만)보다 피임성공률이 낮은 콘돔 사용률(11.4%)이 오히려 높다고 김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이에 김동식 연구위원은 “피임의 성공률과 이용 대비 효과성만을 고려할 때 경구피임제 보다는 콘돔 사용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약으로 전환돼 더 이상 경구피임약을 보급 받지 못하는 미혼여성이 산부인과를 방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경구피임약의 재분류 논의(부작용 복약지도 등)는 인공임신중절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와 같은 수준의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환 앞서 피임약 복용 인식 개선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해야
지정토론에 참여한 6명의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피임약 복용에 대한 인식 개선과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은정 공보이사는 경구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조기 교육과 사회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백 공보이사는 “초등학교때부터 성교육과 더불어 자기 몸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대처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러한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 중에 수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문 교사를 양성하고 학교 주변의 산부인과 전문의와 연계된 ‘교의’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를 찾기 어렵다는 접근적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단체, 교육자, 언론, 사회여론이 합리적이고 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정원 소장은 사회가 피임약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배 소장은 “성관계를 인정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할 수 있고, 의사에게 상담 받고 처방 받아 복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경구피임약을 접근하기 쉽게 보건소 24시간 콜센터에서 처방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인이라도 섹스에 대한 접근성과 성 상담, 성 교육 등을 의무적으로 받아 성에 대해 한 단계 깨우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의무이사도 “경구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 논의보다는 그 전에 먼저 피임 교육 등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로어에서는 여성들이 산부인과에 가지 않는 이유가 사회적 인식 때문에 못 간다면서 캠페인 등을 통해 산부인과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산부인과를 ‘여성건강의학과’로의 학과 개명을 제언했다.

또 산의회에서 추진 중인 ‘와이즈우먼의 피임생리이야기’ 등의 정책 등을 공청회를 통해 처음 알았다면서 홍보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