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9 (수)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기고] 성매개감염체 자가검사시약 품목 확대 반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6년 3월 25일 ‘체외진단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하고, 자가검사용 성매개감염체 면역검사시약을 새롭게 신설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는 국민의 검사 접근성을 높이려는 정책적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진단의 정확성, 치료 연계, 법정 감염병 신고 및 공중보건 관리체계가 충분히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품목을 일반 소비자용 자가검사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진단은 단순히 검사 결과의 양성·음성을 확인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다. 진단은 환자의 증상, 병력, 노출 위험, 검체 채취의 적절성, 검사법의 한계, 위양성·위음성 가능성, 추가 확진검사, 치료 필요성, 추적관리까지 종합하는 전문적 의료 행위이다. 특히 성매개감염병은 개인의 사생활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단순한 소비자 선택의 영역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무증상 감염, 반복 감염, 성 파트너 전파, 임신부와 신생아에 대한 영향, 항생제 내성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대표적인 공중보건 질환이기 때문이다.

성매개감염체 자가검사시약의 가장 큰 문제는 표준 진단 알고리즘과의 괴리다. 매독은 단일 항체검사만으로 현재 치료가 필요한 활동성 감염인지, 과거 감염 후 치료된 상태인지, 위양성인지 판단할 수 없다. 트레포네마 검사와 비트레포네마 검사, 특히 RPR 또는 VDRL 역가, 환자의 임상 양상과 과거 치료력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

임질과 클라미디아 역시 핵산증폭검사, 즉 NAAT를 중심으로 한 표준 진단과 적절한 검체 채취가 중요하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가 제한된 검체와 불완전한 검사 결과에 의존할 경우 실제 감염을 놓치거나, 반대로 불필요한 공포와 낙인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위음성 결과를 믿고 성접촉을 지속하면 지역사회 내 전파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비뇨의학과 진료 현장에서 성매개감염병은 다양한 임상 양상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여러 병원체가 동반되거나 HIV, 매독, B형·C형간염 등 추가 평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단순히 병원체에 대한 검사 하나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는 본인 치료뿐 아니라 성 파트너 평가와 치료, 재감염 예방, 추적검사, 신고체계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자가검사 키트는 이러한 진료 전 과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진단의 일부 조각을 전체 진료로 오인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와 높은 의료기관 접근성을 갖춘 나라이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된 자가검사 정책을 국내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이유는 없다. 자가검사 결과가 법정 감염병 신고와 역학 관리 체계에 포함되지 않을 경우 실제 감염 규모는 왜곡되고, 접촉자 관리와 재감염 예방은 약화되며, 국가 감염병 감시망에는 중대한 공백이 발생한다. 

이는 공중보건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진단과 관리의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이번 행정예고는 성매개감염에 대한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근시안 적인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 것 같아 우려스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이에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성매개감염체 면역검사시약의 일반 소비자용 품목 확대를 즉각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진단 정확성, 임상적 유효성, 검체 채취의 적절성, 확진검사 연계, 치료 및 파트너 관리, 법정 감염병 신고체계와의 연동 방안이 충분히 마련되기 전까지 허용돼서는 안 된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길은 진단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 진료체계 안에서 정확한 검사와 적절한 치료, 책임 있는 공중보건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번 개정안 추진을 중단하고,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국민 건강 보호와 국가 감염병 관리체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