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분만을 책임질 산과 의사의 신규 배출이 줄어들고 있음은 물론, 산과 의사 배출에 중요한 교수들도 기존의 교수들이 고령화 등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의사들을 가르칠 교수가 없는 산과 교육 인프라 붕괴가 코앞까지 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와 대한주산의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는 6월 4일 상연재(서울 중구)에서 ‘붕괴된 출산인프라, 갈 곳 잃은 임산부,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홍순철 고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022년 기준으로 작성된 시·도별 분만기관(조산원 포함)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대비 2022년 분만기관 감소율은 전국 –65.4%에 달하며, 감소율 –77.5%를 기록한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전국에서 –50%~70%대의 감소율을 기록하는 등 사실상 분만할 데가 지금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산과 ▲마취과 ▲소아과 의사들과 신생아 중환자실 등이 있어야지만 분만을 도와줄 수 있는데, 임신 25주 산모를 받아줄 곳이 없어 구급차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오다가 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낳고 되돌아가는 일이 발생할 정도로 연휴나 주말 저녁에는 환자들을 받을 수 있는 분만기관이 없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박인양 회장도 분만을 책임질 산과 의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15년 전까지만 해도 산부인과는 경쟁률이 있던 진료과였으나, 10년 전부터 역전되기 시작해 이제는 산부인과 전체가 정원 미달되는 진료과가 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충원율이 70~75% 내외가 되는 상태까지 왔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고위험 산모의 비율은 30~35%로, 10~15%였던 예전과 달리 산과 전임의나 산과 조교수 등 분만을 더 많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아졌다”면서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교수들 중 산부인과 전문의를 획득한 사람들에게 고위험 산모 분만을 응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조사를 해보면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분만인프라 붕괴의 제일 주범으로 분만사고에 대한 불합리한 의료소송이 지목됐다.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박인양 회장은 현재 산부인과 의사들이 의료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언론에 뜨면 관심을 가지고 확인하는 것은 ▲산모 사망 여부 ▲신생아 뇌성마비 발생 여부 ▲형사처벌 유무 ▲배상금 금액 등의 4가지라고 강조하면서 이 4가지 사항에 대해 국민과 정치권이 공감대를 가지고 해결해야 분만 인프라의 길이 보인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박 회장은 저출생 해결을 위해 정부가 조 단위의 예산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는 것과 관련해 연간 전체 분만 건수 23만건 중 사망 사건과 뇌성마비 발생 건수가 각각 50여 건이 발생하는 점을 설명했다.
이어서 최근 배상금으로 12억원이 판결이 났던 점을 고려해도 1조원의 몇 %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에서 부담 및 재원을 마련해 보상을 해준다면 산과 의사들이 안정적으로 진료에 임할 수 있고, 산모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제언했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도 정부가 저출산과 관련해 16년 동안 380조원을 쏟아부었는데, 어디에 뭐가 쓰였는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집행함에 있어 그동안의 방식에서 탈피해 현장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면서 실질적으로 예산이 잘 집행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미 산과 의사들을 교육할 교수가 없어 관련 교육 인프라는 무너진 상태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주산의학회 오수영 학술위원장은 한 40대 산모가 임신 20주부터 양수가 사라지면서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이런 산모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음을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고위험 산모 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전했다.
또한,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65명이었던 전국의 의과대학 산과 교수 (전임 교원, 임상 교수)는 現 임상 조교수가 단 1명도 빠짐없이 정년퇴직하는 나이인 65세 끝까지 근무한다는 보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32년에는 2022년 대비 76% 수준으로 감소하고, 2041년에는 36% 수준으로 급감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오 위원장은 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충북·울산·강원 지역에서는 고위험 산모 및 태아의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이는 ▲환자 이송 증가 ▲모체·태아 위험도 상승 ▲지역에 따른 모성 사망비의 불균형 및 상승 등과 연결된다면서 고위험 산모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신규 교수가 양성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요 의과대학의 산과 교수 인원과 고령화도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이날 오 위원장이 공개한 2022년 기준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수련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북의대, 전남의대, 부산의대 등의 산과 교수는 각 2명이었고, ▲원광의대, 충북의대, 가천의대, 경상의대, 경희의대 등의 산과 교수는 각 1명이었으며, 건양의대는 산과 교수가 없었다.
이는 학생 정원 대비 산과 교수의 수를 계산하면 산과 교수 1명당 40~110명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오 위원장은 주요 의과대학의 산과 교수들이 1961~1982년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 이상 산과 의사를 가르칠 교수들이 없는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왜 지금까지 분만병원이 사라지기만 할 뿐이고, 새로 생기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쓴소리가 제기됐다.
먼저 홍재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정책이사는 서울 시내에서 작은 분만 병원을 개원하는 것에 필요한 금액만 해도 건물 임대료와 필수 의료기기 설치비용으로 대략 30억원이 필요해 진입 장멱이 높아 문제라고 전했다.
또, 새로운 산모가 들어와서 분만이 시작되기 전까지 6~7개월이 소요되는데, 해당 시기 동안 매달 몇 억원의 자금 운영이 필요하며, 심각한 저출산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시기가 예측되지 않는 등 쉽게 분만병원 개원에 도전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꼬집었다.
인력난 등으로 병원 경영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도 호소했다.
홍 이사는 “분만병원은 분만실과 수술실 및 신생아실 병동이 24시간 3교대로 운영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최소 30명 이상의 간호팀이 있어야 하고, 이 정도의 인프라가 유지되려면 월 50~60건 이상의 분만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사들 뿐만 아니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도 분만병원 근무를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로, 인력난으로 많은 병원들이 2교대 근무로 전환하게 되면서 기존에 있던 직원들의 워라벨이 매우 떨어지고, 추가 수당 문제도 발생해 경영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정권 때에 최저시급의 인상과 지속되는 저출산으로 분만 병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도 점차 어려워져 지방과 수도권 외곽에서는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마취과 의사 호출이 어려워 어떤 원장은 본인이 직접 산모를 마취한 뒤에 밖으로 나사 손 소독을 하고 다시 수술실로 돌어와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상황까지 펼쳐지고 있음을 비판했다.
더불어 의원급 분만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함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가산을 받을 수 없거나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가산이 적용되지 않거나 절반에 불과하는 등의 탁상 행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이어 홍 이사는 “지역 분만병원 없이 대학병원만으로 분만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서 “지역이 어디든 현재 한계 상황에 있는 분만병원들의 폐업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젊은 의사들에 의한 새로운 분만 의원이 생기고, 해당 지역의 특수성과 요구에 부응해서 분만병원으로 성장 및 대학병원과 유기적인 교류가 만들어져 촘촘한 그물망이 만들어졌을 때에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있다”면서 “진료는 외래에서 보고, 분만은 공공병원에서 진행되는 개방형 병원과 응급이송체계의 정비 등 획기적인 선진국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