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의료농단을 자행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정부의 압제에 저항해 피해를 입었지만, 2024년 2월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의료의 위기 상황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의사협회의 무능은 14만 의사회원들의 분노와 좌절감만 키워왔다.
2024년 2월 당시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정책패키지라고 불리는 의료붕괴 정책을 추진했는데,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일시 저지했으나 어찌 보면 의료농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필수의료정책패키지의 추진은 막지 못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정부와 정치권에 끌려다니기만 하면서 회원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이에 의료계는 지불제도개편, 1차 의료기관 역할의 획일적 GP화, 의사면허 통제의 강화, 비급여 의료의 자율성 침해, 타 보건의료 직역의 의료영역 침탈 등 이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쓰나미에 직면하게 됐다. 필수의료정책패키지의 추진을 막지 못했던 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지난 2020년 문재인 정권에서 추진하려 했다가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투쟁을 통해 간신히 저지했던 공공의대 설립을 비롯한 각종 의료 악법들이 다시 추진되고 있고, 여기에 더해 국회에서는 대한민국 의료를 아예 말살시키려는 시도를 입법이라는 형태로 자행하고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현 여당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추진, 지역의대 신설,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등 이전부터 추진하려던 정책뿐만 아니라 입법을 통해 성분명 처방 시행, 한의사 X-ray 허용, 의료기사 단독 개원 허용 등 지난 정부의 의료농단을 넘어서는 의료파괴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지난 정권에서 이미 연구용역 등을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검체 위수탁기관간 상호정산 문제를 다시금 불법적인 것인 양 수면 위로 올려 1차 의료기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가 파괴되고 의사의 생존권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와 국회의 압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 의협 집행부를 바라보는 14만 의사회원들은 의협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쏟아내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좌절감으로 인한 의협 해체 요구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25일 있었던 비대위 구성을 위한 임시대의원 총회는 바로 이러한 회원들의 불만이 현실로 도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임시총회에서 비대위 구성안은 부결됐지만, 비대위 구성안 부결이 곧 현 의협 집행부에 대한 지지라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수많은 회원들이 의협 집행부의 무능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의협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의원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비대위 구성안 부결은 곧 현 의협 집행부를 재신임한 것이 아니라, 의사협회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정부와 국회의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우라는 준엄한 명령이며, 마지막 기회라고 보아야 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현 의협 집행부에 회원들의 준엄한 경고를 받아들이고, 사즉생의 각오로 정부와 국회의 압제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는 바이다. 앞으로 의협 집행부가 이러한 회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경 투쟁의 길로 나선다면 본 회는 적극적으로 의협에 협조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회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협 집행부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무능과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강경한 비판의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회원들의 요구에 따르는 행동을 이어 나갈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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