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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대한민국 의료 정상화에 역행하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의 문제점

1. 서론

지난 일주일 여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주말이 지나면서 갑자기 언론을 통해 터져 나온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은 증원 규모가 500명부터 1만 명까지 범위도 다양했고, 이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뉴스들까지 퍼지면서 의료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의료계는 의협을 중심으로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여, 정부의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규탄하고, 의대 정원 확대 강행 시 강력한 투쟁을 시작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정부에서는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발표하지 않은 채, 지난 10월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은 의대 정원 이슈를 희석시키기 위해 급조된 계획에 불과해 보일 정도로 실망스러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2020년 의료계 단체행동 당시부터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고, 이로 인해 심각한 문제점들이 파생될 것임을 수차례에 걸쳐 경고해왔다. 

따라서 9·4 의정 합의 이후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의대 정원 이슈를 현 정부가 다시 꺼내어 혼란을 야기한 부분에 대해서 본 회는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 

이에 본 회는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의 내용을 분석해 잘못된 부분을 밝히며, 대한민국 의료 정상화를 위해서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 방향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2. 실체를 알 수 없는 필수의료의 정체와 범위

정부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살리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공백 없이 필수의료를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느 지역에서든 필수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을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만약 정부가 생각하는 필수의료와 국민들이 생각하는 필수의료가 서로 다르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정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필수의료를 살려내고 이를 국민들에게 공급하려 하는데, 정작 국민들이 정부가 살려내고 공급하려는 의료를 필수의료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필수의료 살리기와 필수의료 공급을 논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필수의료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하고, 이 정의와 범위에 대해 범국민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소아과 오픈런, 지역 분만실 폐쇄, 응급실 뺑뺑이, 응급 수술 지연에 따른 사망 사고 등의 이슈가 터져 나올 때마다 언론과 정부는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고,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대책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워 필수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필수의료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명쾌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아무도 필수의료를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 있었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내과, 신경외과만 필수의료인가? 제때 수술받지 못하면 영원히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정형외과 골절 환자 치료는 필수의료가 아닌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는 안과의 녹내장과 망막 질환 치료는 필수의료가 아닌가? 자해 및 타해의 위험이 있는 정신과적 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는 필수의료가 아닌가? 수술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선천성 안면 기형 환자들에 대한 성형외과의 재건성형은 필수의료가 아닌가?

의료는 속성상 필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라는 용어는 의미가 중복된 잘못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용어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필수의료를 명확히 정의 내리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의료 분야 중에 필수적이지 않은 분야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현재 붕괴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필수의료'가 아니라 '의료'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필수의료 살리기 대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의료 정상화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3. 지역 의료 시스템을 파괴하고, 관치의료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 강화와 권한 강화 대책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의 내용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국립대병원 등을 필수의료의 중추로 육성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각 지역에서 국립대병원들을 중심으로 한 거점기관의 권한과 의료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여 지역에서 중증 및 응급 최종 치료가 완결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변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필수의료 분야 교수 정원 대폭 확대, 공공기관 규제 혁신을 통한 인건비 인상, 중환자실과 응급실의 병상 및 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 지원, 공공정책수가를 통한 필수의료센터에 대한 보상 강화 및 확대, 노후화된 진료 시설 및 병상, 의료 장비 등에 대한 인프라 첨단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지역 내 필수의료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국립대병원이 지역 필수의료 자원관리, 공급망 총괄, 각종 필수의료 지원 사업 및 기관에 대한 성과평가 등을 주도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병원 육성 및 권한 강화 정책은 지역의 필수의료 역량 강화 및 중증 질환 치료 완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만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방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립대병원의 규모만 무리하게 키워버리면, 해당 지역에서 국립대병원은 환자와 의료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역 내 상당수 1, 2차 의료기관들은 경영난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1, 2차 의료기관들의 붕괴는 결국 지역 내 의료 접근성 악화로 이어져 지역 의료 시스템을 파괴하게 되어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을 더욱 촉진시킨다. 

더불어 사실상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 되는 국립대병원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지역 내 의료기관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정부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민간 의료기관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관치의료 시스템이 공고해지고, 민간 의료기관들의 자유는 사실상 박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가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지원 및 육성 계획을 발표한 이유는,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국립대병원들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 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이렇게 단순한 사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의료 시스템의 위기는 인구를 비롯한 사회 전 분야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의 일부로 나타나는 것이고, 필수의료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설계가 잘못돼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위기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떤 대책도 성과를 거둘 수 없다.


4. 현실성 없는 필수의료 분야 R&D 대책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필수의료 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병원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여 진료와 연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서 전체 국가 R&D 예산의 0.4%에 불과했던 국립대병원 비중을 늘리고, 미국의 R&D 지원체계(ARPA-H)를 벤치마킹해 한국형 R&D 지원체계를 만들고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지만, 이번 필수의료 R&D 투자 확대 계획을 현실성 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료 분야의 연구개발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 의료 시장이 산업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규제 일변도의 폐쇄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R&D 투자를 통해서 혁신 의료기술 및 신약, 신의료기기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대한민국 의료 시장에서는 이러한 R&D의 결과물들이 실질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기에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대규모 연구개발은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

현재 의료 분야에서는 소규모 수준의 R&D만 산학협력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사립대병원처럼 국립대병원도 산학협력단을 통한 연구가 가능해지면 제대로 연구개발이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국립대병원도 산학협력단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립대병원에 산학협력단이 설치돼도 의료 분야 연구 환경 자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R&D 투자가 성과를 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대한민국 의료 분야 R&D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이 열악한 환경의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번 정부 발표를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정부는 보수와 정원 규제 혁신을 통해 병원 임상 역량을 유지하면서 연구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하지만 본보기로 예를 든 미국 하버드 의대의 사례는 넘사벽 수준의 괴리감만 커지게 하기 충분했다. 왜냐하면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는 대한민국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한 숫자인 약 1.2만 명 규모의 임상 병행 교수가 교육병원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한민국 의료 분야에서 R&D를 통한 혁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의료 시스템 개혁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저수가와 국가 주도 단일 공보험 체제에 묶여 있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정부의 의료 분야 R&D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혈세 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5. 의대 정원 증원을 전제로 추진되는 의료 인력 확충 대책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서 OECD 최하위 수준인 의사 수를 늘려서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초고령사회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며, 의대 교육 질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과학적 인력 수요 전망 및 합리적 정원 조정 시스템 구축도 추진할 예정임을 밝혔다. 

정부 발표 내용과 발표 순서를 보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 든 것은 결국 또 의사 수가 OECD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점뿐이었다.

그동안 의료계를 비롯한 비교적 상식이 있는 지식인들은 OECD의 의사 수 평균에 의사 수를 맞추는 정책이 얼마나 문제가 많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지적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국책 연구기관과 관변학자들이 내놓은 바로 그 OECD 평균에 따르는 의사 인력 수급 계획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한민국보다 인구당 의사 수가 월등히 많은 영국, 스웨덴 등의 수많은 국가들의 의료 접근성과 의료 질이 대한민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진료 대기 시간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일반 국민들도 알고 있다.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비해서 부족한 이유로 국민들의 의료 이용에 문제가 발생해야 의사 수를 늘리는 정책이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과 의료 질을 누리고 있다. 즉, 의료 이용의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의사가 부족한 국가가 아니라 넘쳐나는 국가이다. 

응급실 뺑뺑이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의 해결책이 의사 수 증원이 되려면, 의사 수를 늘리기만 하면 필수의료 인력이 충원되고, 응급의료 시스템이 개선된다는 학문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를 제시하는 학자나 공무원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하기 이전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하겠다고 밝힌 의대 교육의 질 관리 방안과 과학적인 인력 수요 전망 및 합리적 정원 조정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 정말로 대한민국에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가를 따져보고, 현재 대한민국 의과대학들이 늘어난 정원을 감당하여 적정한 수준의 의대 교육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작업을 먼저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미 의대 정원 확대라는 답을 정해놓은 후에,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의 순서를 뒤바꿔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원 조정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이미 정부에서도 성급한 의대 정원 확대가 의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적절하게 정원을 조정하지 못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 최고의 의료 이용량과 접근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의료비가 증가하는 대한민국에 더 많은 의사가 배출되면, 폭증하는 의료비와 파탄날 건강보험 재정을 정부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재도 지방 의대들을 중심으로 부실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정원 증가로 인해 심화될 부실교육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의대 정원을 확대했음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 자명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로 인해 국민들이 입게 될 피해를 정부가 책임질 수 있을까? 

정부는 왜곡된 통계와 신념에 사로잡힌 채 잘못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민 건강과 의료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6. 지역의료와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에는 역부족인 의뢰 및 회송 대책

정부는 지역 내 필수의료 협력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동일 지역권 진료 의뢰 및 회송 활성화 방향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는 동일 시‧도내의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의뢰와 회송 유인을 강화하기 위해서 수가를 개편하는 내용인데, 동일 시‧도의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의뢰하거나 회송하면 의뢰 및 회송 수가를 인상해 주고, 타 시‧도로 환자를 의뢰하면 의뢰 수가를 삭감하는 방식이다. 

타 시‧도로의 회송 수가는 지방 환자들이 연고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지하기로 했고, 상급종합병원 평가 지표에 동일 시‧도 2차의 의료기관 회송 실적을 반영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현재 고려되고 있는 의뢰 및 회송 수가의 인상 및 삭감 수준을 가지고는 절대로 환자들의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발표된 의뢰 및 회송 수가 금액은 의뢰의 경우 의원 기준 의뢰서 1만원, 의뢰서+진료정보 1.5만원, 의뢰서+진료정보+영상 정보 2만원이고 동일 시‧도 내 의뢰 시 3000원을 가산해 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회송 수가의 경우는 종합병원 기준 입원 5.5만원, 외래 4만원 수준이다.

의뢰를 하는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1~2만 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가려는 환자를 설득하고 막아설 이유가 없다. 

지역 내 3차 병원이든 수도권 대형병원이든 환자가 중증 질환을 잘 치료하고 오면, 대부분 환자는 경증 질환 발생 시 집 근처 의료기관에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상급병원 의뢰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은 의료기관과는 신뢰관계가 깨져버렸기에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환자를 의뢰해야 하는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1~2만 원의 수익을 위해서 환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회송을 하는 상급종합병원의 입장에서도, 아무리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진료 수익에 한참 못 미치는 회송 수가 수익을 위해서 원하지도 않는 환자를 연고지로 강제로 돌려보내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환자가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해놓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과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어떠한 대책을 내놓아도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는 바로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은 제한하지 않은 채 의료기관에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gate keeping 역할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막고,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시키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을 설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추진할 정부가 과연 대한민국에 나타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7.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려낼 수 없는 인력 운용 대책

정부는 지역의료를 살려내기 위해서 365일 의료기관 순환 당직제와 국립대병원 교수의 지방의료원 출장 진료 활성화 등을 통한 인적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지역 인재 선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함은 물론, 비수도권의 전공의 배정 비율을 늘리고, 의료기관에 필수의료 전문의 고용 기준을 강화하고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기존 대책을 답습하는 수준의 대책만 남발하고, 과도한 규제를 통해 의료기관을 압박하는 정책으로는 절대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려낼 수 없다.

365일 의료기관 순환 당직제, 공공 임상 교수제와 다를 바 없는 국립대병원 교수의 지방의료원 출장 진료 활성화, 지역 인재 선발 확대,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 비율 조정 등의 대책은 이미 올해 1월 31일 정부가 발표했던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365일 의료기관 순환 당직체계는 중증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들의 휴가와 휴식에 대한 자유를 제한하게 되므로, 중증 필수의료 종사자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고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또한, 기관별로 당직 순번을 정해서 운영하게 되면, 오히려 당직이 아닌 병원들은 중증 응급 환자 치료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게 되기 때문에, 현재처럼 중증 의료 분야에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지역 내 유사 환자들이 다수 발생할 경우 오히려 당직체계로 인해 환자 치료가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해 위험할 수 있다.

국립대병원 교수로 임용되는 대신에 일정 기간 지방의료원 근무를 의무화하는 공공 임상 교수제 시범사업이 지원자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국립대병원 교수 정원을 대폭 늘린 이후 교수들에게 지방의료원 출장 진료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지방의료원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지방의료원 근무 의사들에 대한 연봉 및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통해 의사 인력을 수급하는 합리적인 방법은 제쳐두고, 국립대병원 교수라는 명예를 팔아서 이름만 교수인 지방의료원 봉직의사들을 손쉽게 모집하겠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방 병원과 필수의료에 전공의들이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수도권 생활을 원하고,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열악한 직종을 기피하는 현상이 의료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 병원의 전공의 정원을 늘리고, 비인기과로 전락한 필수의료 분야의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방과 필수의료 분야에 전공의 지원이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지방 의과대학 지역 인재 모집 확대와 전공의 배치를 연계하는 것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지도 의문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인구가 있는 곳에 일자리와 기회가 있으므로 지금도 지방 의대 출신들이 졸업 후 또는 전문의 취득 후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인구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수록 의사들의 수도권 이동도 심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역 내 2·3차 의료기관에 필수의료 전문의 고용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민간 의료기관들에 인력 고용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필수의료 전문의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는 고용 기준을 강화하면서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지만, 실제로 의료기관들이 전문의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금액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강제적인 방식은 의료기관들에 경영 부담만 안기게 되고, 또 다른 최소 기준에만 맞추는 방식으로 의료기관들이 적응하도록 만들 뿐이다.

의료기관들이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 고용을 망설이는 이유는 필수의료 분야는 수익성이 낮고, 의료 분쟁의 위험이 높아 장기적으로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기관들이 자발적으로 필수의료 전문의 고용을 늘리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분야의 수익성을 높이고, 의료 분쟁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주어야 하며,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보험 제도와 수가 제도 등을 포함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8.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 대책

앞서 언급한 대로 필수의료 분야가 기피의 대상이 된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의료 분쟁 등으로 인해 민사상 막대한 배상 책임을 지게 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게 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사법부의 판결 경향을 보면, 의료분쟁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금고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과실이 없어도 막대한 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온정주의에 기반한 판결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료 분쟁에서 의료진들의 법적 부담을 완화시켜야 한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서 별도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서 의료인 형사처벌특례 범위를 확대하고, 필수의료분야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 지원 등을 통하여 필수의료 종사자의 민·형사상 부담도 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선의에 의해 이루어진 의료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료인들이 형사처벌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의료 분쟁의 위험성이 높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되었다는 측면에서 의료인 법적 부담 완화 대책이 추진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의료인의 민·형사처벌 부담을 완화시키는 법이 환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법이 절대로 아님에도 이 법을 반대하는 일부 환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압박을 정부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9. 결론

정부는 이번 필수의료 혁신 전략 발표를 통해서 의대 정원 확대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혁신 전략 발표 내용에는 의대 정원 문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계획이 담겨 있었지만, 대부분의 계획들은 지난 1월 31일 발표되었던 필수의료 지원대책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베낀 수준의 계획들이었다. 

또한, 국립대병원을 지역 내 필수의료의 중추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지원을 하고, 국립대병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은 지역 의료 시스템을 파괴하고, 관치의료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양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실효성 없는 R&D 대책과 의뢰 및 회송 대책 등의 대책과 민간 의료기관들을 더욱 옥죄는 규제책들이 담겨 있는 것을 보면서, 정부가 과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정상화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를 정상화시킬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의료 분야는 필수적이지 않은 분야가 없기에 정부는 필수의료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정부에서 의료 정상화를 목표로 하여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결국 모두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시키려면 왜곡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모든 정부에서는 당장의 상황만을 모면하려는 정책만을 남발했기 때문에 상황이 정상화되기는커녕 나빠지기만 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답을 정해놓고 정책을 짜 맞춘 행태를 중단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다 근본적인 의료 정상화 대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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