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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최근 데이트 폭력으로 발생한 뇌출혈 환자의 응급수술 중 사망 사건과 관련해, 광주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필수 의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법적 판단에 강력히 탄원한다.
이 사건은 뇌출혈 환자가 응급수술을 위해 중심정맥관 삽입 과정에서 발생한 혈관 손상으로 인해 사망한 사례다.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과 폭행 가해자의 행위를 공동불법행위로 판결했으나, 이는 다음과 같은 법리적·의료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의료 행위는 환자의 상태, 기저 질환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의료인의 과실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의료행위가 행하여진 당시의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을 기준으로 하여, 의료인이 그 의료수준에 따라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822 판결).
응급 수술에서 중심정맥관 삽입과 같은 시술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되는 의료 행위이다. 이는 일반적인 의료 행위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일반적인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맥천자의 가능성이 3.7-12%로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시술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본질적으로 ‘환자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으며,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합병증에 대해 의료진들은 일반적 표준에 따라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시술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는 동맥 천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 표준을 준수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의료 사고라는 것이 일반적인 불법행위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법원은 의료진이 환자 사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의료 과실을 ‘공동불법행위’로 해석했다.
그러나, 의료 과실은 ‘과실 책임’이며, 공동불법행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 인정된다. 응급 상황에서의 필수적인 의료 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므로, 과실과 불법행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본 사건의 경우도 의료 과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를 불법행위, 특히 공동불법행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단순한 의료 과실을 공동불법행위로 해석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부당하며, 향후 의료진이 심각한 법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의료사고 판례에서 ‘공동불법행위’라는 것은 의료진이 아니라 환자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판단했었다(대법원 1998. 11. 24. 선고 98다32045 판결).
즉, 사고가 없었다면 치료도 없었을 것이므로, 가해자의 행위가 손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 것이며, 과실이 존재하더라도 의료진은 공동불법행위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최선을 다한 존재로 보아왔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폭행 가해자는 고의적인 폭력 행위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이며, 반면 의료진과 병원은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 환자의 사망 원인이 됐고, 이에 대해 의료진과 폭행 가해자를 동일한 법적 책임 아래 놓는 것은 의료 행위의 본질을 심각하게 무시한 것이다.
의료 행위를 불법행위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특히 공동불법행위로 판단하여 폭행 가해자와 동일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만약, 의료진의 행위가 의료 과실이라면, 이는 개별적인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이지, 공동불법행위로 인정될 사안이 아니다.
이번 법원의 판결과 같이 폭행 가해자와 의료진 및 병원에게 공동 책임을 인정하고 연대해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방식은 손해배상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향후 의료진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며, 필수 의료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마취통증의학과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의료 분야이다. 이번 판결처럼 의료진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면, 마취 필수 의료 분야의 위축은 불가피하며,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사법부는 이번 판결을 재검토해, 응급 의료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합병증은 과실로 단정하지 않도록 법적 기준을 정비하고, 의료 과실과 불법행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법적 판단 기준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정부는 의료진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의료진이 고의성이 없는 과실에 대해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적 장치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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