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기고]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마취 영역’ 포함을 촉구한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2년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에는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 방안과 함께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해 중증ᆞ응급·분만·소아 환자가 지역 내 의료기관으로 즉시 이송돼 해당의료기관에서 응급처치 및 검사 후 최종 수술까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이러한 체계가 작동 가능하도록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해 야간·ᆞ휴일 응급 수술과 고난도ᆞ고위험 수술 등 업무부담이 큰 분야에 보상을 확대하는 한편, 필수의료 분야의 근무 강도를 개선하고, 인력 격차 완화를 위해 지방병원과 필수과목에 전공의를 우선 배치하는 등 충분한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등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부터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의 입원 진료와 응급실 야간 진료가 중단되고, 수도권과 지방 할 것 없이 아이들이 아파도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억원 대의 연봉을 제시하고도 내과, 응급의학과 등 이른바 필수 의료분야라 칭하는 과의 담당 전문의를 채용하지 못해 진료에 차질을 빚는 지방의료원들의 사정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마취통증의학과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지방의료원 중에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채용하지 못해 수술이 불가능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들 역시 과도한 당직과 고위험 수술, 소송의 위험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의 이직과 개원이 급증하면서 수술에 난항을 겪는 등 분만 인프라의 붕괴와 그에 따른 출산율 저하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특히 2013년 7월 1일부터 모든 요양기관에서 분만과 제왕절개술에 별도의 마취료 산정이 불가능한 포괄수가제를 적용해 분만에서의 빈번한 응급상황 발생과 고난이도 의료행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어렵게 됐고, 이로 인해 산부인과 병원들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고용하는데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아 마취분야 역시 산부인과 병원과 마찬가지로 기피분야가 되고 있는데, 소아는 작은 체구 때문에 술기가 어렵고 생리적 안전역이 좁으며 약제 사용에도 제한이 많아서 성인 마취에 비해 그 난이도가 높다. 

여기에 더해 의사소통과 협조가 되지 않는 소아를 마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동시에 아이 걱정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부모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저출산의 여파로 소아 환자 수 역시 급격히 줄어들고, 이에 따라 소아마취를 직접 경험하고 수련할 기회가 부족해지면서 숙련된 소아 마취 전문의를 육성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의료기관 역시 환자 수 감소에 따른 수익 감소로 인력이나 시설을 소아 마취분야에 배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증ᆞ응급환자를 담당하는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들도 고위험 수술 마취 및 중환자 관리, 24시간 당직 근무 등의 근무환경에 부담을 느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수가가 더 높고 주간 수술 위주의 근무여건이 좋은 병원으로 떠나거나 통증클리닉을 개원하면서 마취전문의 고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수의료 현장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이탈은 비현실적인 건강보험요양급여 수가 체계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2016년 보고된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방안 2단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취료의 원가 보전율은 72.7%에 불과하고 집계가 불가능한 병원의 인적·물적 투입을 고려한다면 실제 마취 수가는 원가 대비 5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고용에 의한 의료 행위는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의료수가를 비교해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그 나라 국민들의 실제 생활수준과 물가를 반영하는 국민 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차이는 우리나라보다($3만6570) 미국($5만8700) 1.6배, 일본($4만3630) 1.2배 높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취 수가의 경우 일반 복부수술 1시간 마취 기준 우리나라는 10만3700원이지만, 일본은 74만9914원으로 7배 이상, 미국은 227만3767원으로 2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욱이 소아 및 중증 응급 환자 마취의 보상 강화 차원에서 도입된 50% 가산율을 적용하더라도 미국은 200%, 일본은 300% 이상의 가산율을 적용받아서 그 차이는 심장수술 1시간 마취 기준 우리나라가 15만5550원인데 반해 일본은 289만2945원, 미국은 454만7534원 등으로 더욱 벌어진다.



더불어 건강보험요양급여에서는 수술을 하는 집도의가 마취의를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동시에 마취를 시행하더라도, 환자의 안전을 위해 마취를 시행하는 의사를 고용해 개별적으로 마취를 시행한 경우와 동일한 마취수가가 지급된다. 

하지만 마취는 환자를 진정상태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인체 활력징후의 급격한 변동이 수반되고 기도관리가 되지 않으면 저산소증에 의한 영구적 뇌손상이나 사망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도 타과 전문의가 해당과의 진료행위를 시행할 경우 해당과의 전문의 수준에 맞는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 

도로교통법 제49조에서는 자동차 운전자의 집중력과 순발력 저하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때문에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위반 시 벌금 혹은 구류에 처하고 있다. 

하물며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수술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리를 시행해야 하는 마취를 시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환자 안전에 큰 위험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新포괄수가제의 경우 마취료가 별도로 산정되지 않아서 마취의와 회복실 담당 간호사 등 마취분야 인력 고용과 관련시설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투입되는 인력과 안전성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수가가 지급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며,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일부 의사는 간호사에게 마취를 지시하는 불법 행위를 하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마취행위와 동일한 마취수가를 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병원급 의료기관 47.9%에서 마취를 담당하는 전문의가 없다는 통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또 202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한 2차 마취 적정성 평가 결과 회복실 운영 비율이 상급종합병원은 100%인데 비해 종합병원 67.8%, 전문병원 55.4%에 불과했고 마취 관련 약물의 안전 관리 활동 여부 역시 상급종합병원 100%인데 반해 종합병원 65.7%, 전문병원 62.5%에 불과했다. 

이는 경제적인 이유로 종합병원 이하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마취 종료 후 회복실이 없어서 병실로 바로 이동하거나 수술실 간호사가 환자의 마취 회복까지 함께 담당하고, 마취약제에 관한 교육이 전무하는 등 마취 환자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양질의 마취 관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그 기반이 부족한 실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서는 2022년 12월 8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지원대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대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아와 산모, 중증ᆞ응급 환자가 검사 후 최종 수술까지 신속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존재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수의료지원대책에 마취 부문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이를 통해 필수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충분한 충원 및 근무 여건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대한마취통증의학회와 정부간에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며 조속한 시일내에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필수의료의 영역인 소아, 산모, 중증ᆞ응급 환자의 안전한 마취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적 교육과 충분한 임상실습을 경험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시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회복실 등 관련 시설도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현 건강보험요양급여 수가 체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환자안전을 위한 투자 및 고용을 방해하고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무기록과 보험청구 시 마취를 시행한 의사의 의사면허번호를 반드시 기입하도록 해 실질적인 ‘마취실명제’가 시행돼야 하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마취를 전담으로 시행하는 경우 마취 수가의 차등 급여를 적용함과 동시에 新포괄수가제가 적용되는 수술에서도 마취료는 별도로 산정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