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의 글이 논란이 되어 다수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고 국민들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우 원장은 지난 4일 발간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계간지 <의료정책포럼>에서 ‘필수의료 위기와 의대정원’라는 제목의 시론을 썼다.
우 원장은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에서 진료 받기 위해 병의원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등 환자가 몰리는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젊은 엄마들이 소아과 진료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맘카페 등에서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면서 동네 소아과가 문을 닫는 경우도 늘어났고,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아침 시간에 환자가 집중되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더러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어서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 시간에는 스톱”
현재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은 동네소아청소년과의원부터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까지 모든 소아의료 인프라가 철저히 붕괴됐다. 붕괴 원인은 크게 두가지다.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타 국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오직 진찰료에만 의존하는 소아청소년과 수입에 더해 자유낙하하듯 악화되고 있는 저출산 상황과 코로나19로 인한 직격탄으로 동네소아청소년과의원들부터 대거 폐업했고, 그 곳에 취업해 월급 받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취업할 곳이 없어졌고, 이에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의대학생들과 인턴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 전공하지 않아서 동네소아청소년과에서 의뢰된 중환아들을 받아줄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응급진료와 입원진료가 마비된 것이 첫 이유다.
몇 년전 있었던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사고 이후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면 심지어 교수까지도 치료 결과가 안좋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고, 교수, 전공의 할거 없이 5년 넘게 형사 재판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역시 의대학생들과 인터의사들이 지원하지 않게 된게 두 번째 이유다.
동네에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수 없이 폐업해서 줄고 상급종합병원조차 소아과 진료를 못하게 되니 그나마 남은 소아청소년과병의원으로 밤새 아팠던 아이를 들쳐없고 부모들은 뜀박질 할 수밖에 없고, 어렵게 치료 받고 나서 아이돌봐 줄 조부모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고 직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아빠, 엄마가 직장에 가서 아이가 생각나서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기 어렵다. 또한 밤에 응급실이나 처음가는 병원에 가면 아이 치료에 대한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아이의 병이 낫기가 어렵다. 따라서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치료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동네 소아과 선생님’이 ‘낮시간’에 아이를 진찰후 적절한 처방을 하고 부모가 아이를 직접 돌볼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안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아이를 밤늦게까지 진료하는 달빛병원을 대거 만들어서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정이 늘자 스웨덴 정부는 바바(vabba·스웨덴어 아이barn와 돌보다varda의 합성어) 제도를 도입해 아이가 아프면 누구나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직장인 누구나 바바를 이용해 결근하거나 퇴근할 수 있다. 보육 기관에서 아픈 아이를 데려 가라고 요청하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회사에서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 12세까지 연 최대 120일 사용할 수 있으며, 정부는 월급의 80%를 지급한다.
부부 육아할당제, 바바제도 등 공동 육아시스템 도입은 스웨덴의 출산율 증가로도 이어졌다. 아빠 할당제를 처음 도입한 1995년 1.73명을 기록한 후 1998년과 1999년에 1.5명까지 하락했지만 2000년부터 상승 추세를 보이며 2016년 기준 1.85명까지 올라왔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라면 달빛병원이 아니라 이런 제도를 도입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어야 마땅하다.
우 원장은 14만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씽크탱크인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소아과 오픈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에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해야할 지위에 있다.
제대로 된 분석없이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가 있다”고 망발을 하다니 기가 차다. 다분히 아이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꼰대스럽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또래 엄마들을 만나서 수다 떨며 동질감과 정서적 공감을 얻고 같이 밥먹으며 아이 키우는 데 힘을 얻고 스트레스가 풀린 상태로 퇴근한 남편을 맞이 하는게 잘못된 일인가?
수없이 걸려오는 언론들의 입장 표명 요청에 꿩처럼 머리 쳐막고 숨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 공감을 하나라도 더 얻어도 시원치 않을 중요한 시점에 의료 현장의 제대로 된 상황파악이나 분석조차도 못하고 중책을 맡은 상태에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의사들에 대한 국민 신뢰를 크게 잃게 한 우봉식 소장은 당장 사퇴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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