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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뇌전증,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병

한국뇌전증협회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식 및 인식개선 포럼’, 질병보다 무서운 사회적 편견
대장암·간암과 비슷한 발병률… 취업, 운전 등 사회적 제한 많지만 지원 체계 거의 없어

한국뇌전증협회(회장 김흥동)와 대한뇌전증학회(이사장 허경)가 세계 뇌전증의 날을 맞아 뇌전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 대신, 올바른 이해와 국가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2월 13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는 협회와 학회 관계자들, 그리고 뇌전증과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식 및 뇌전증 인식개선 포럼’을 진행했다.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은 국제뇌전증협회가 정한 ‘뇌전증의 날’로, 전세계적으로 뇌전증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협회와 학회가 현장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고, 뇌전증의 날 하루 전 KBS 9시 뉴스 자료 협조를 통해 뇌전증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나라의 37만명으로 추산되는 뇌전증 환자는 강원도 원주의 인구보다도 많지만,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사회적 편견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WHO는 뇌전증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중대질환으로 지정했으나, 올해 뇌전증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현 상태에 머물 것이다. 뇌전증 관리에 대한 지원법이 통과되길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대한뇌전증학회 허경 이사는 기념사에서 “뇌전증 환자의 직장 제출을 위한 진단서를 써준 적이 있다. 뇌전증 환자는 오해와 차별 등 발작 이상의 고통을 받고 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회는 뇌전증 인식을 증진시키는 꾸준한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제뇌전증협회 프란체스카 소피아 회장도 기념식 개최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소피아 회장은 “뇌전증은 세계적으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남아 있는 질병이지만,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뇌전증 환자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인권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강화시켜 달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여러 국회의원들도 영상을 통해 정부와 국회가 뇌전증에 대한 과도하고 막연한 편견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그동안 뇌전증 극복을 위해 힘써온 단체 및 개인에 대한 시상이 이뤄졌다. 남양유업은 뇌전증 식이요법 치료에 쓰이는 액상 케톤식 ‘케토니아’ 생산 및 뇌전증 행사 후원의 공로를 인정해 한국뇌전증협회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동아리 인식개선 캠페인과 만화 연재 등을 통해 뇌전증에 대해 바로 알려온 장예진 간호학과 학생, 부처 작가, 슬로우인디고 작가에게 Purple light award가 수여됐으며, 뇌전증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넌지 작가에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표창장,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상암 교수에게는 뇌전증 인식 제고 특별 공로상이 수여됐다. 협회에서 준비한 에필라이저 미래설계 장학금도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이어진 뇌전증 인식 개선 포럼에서는 준비된 3가지 발표인 ‘뇌전증 국내 역학 자료’, ‘한국 뇌전증 환자의 낙인감’, ‘뇌전증 환자의 복지제도’로 뇌전증 환자들의 현황을 돌아보고, 지원 방법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대목동병원 최선아 교수는 “국내 뇌전증 유병률은 2017년도 기준 25만명으로, 인구 천 명당 4.5명이다. 30대에서 발병률이 가장 낮고 20대 미만과 60세 이상에서 높으며, 75세 이상에서도 뇌전증 발생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최선아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발생률은 인구 10만명 당 32명으로, 대장암과 간암 발생률과 비슷하다. 뇌전증 환자를 분류했을 때, 국소 뇌전증이 78%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뇌전증이 35%로 가장 많다. 뇌전증은 전체 희귀 질환 중 입원료, 처치 및 수술료, 검사료가 가장 높은 질환이며 뇌전증 환자의 사망원인 중 2.6%는 자살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이상암 교수는 ”조사 결과, 미국의 뇌전증 환자들이 운전, 독립성, 취업을 1~3순위로 걱정할 때 한국의 환자들은 사교친목 활동제약, 뇌전증 정보취득, 발작 발생을 가장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의 환자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 환자들은 취업 및 직장에서의 차별, 운전에 관한 문제, 사보입 가입에 관한 차별 등을 겪고 있다. 이런 불이익으로 인해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고, 뇌전증의 낙인이 환자에게 내재화된다“고 말했다.

이상암 교수는 ”병원 조사 결과 3분의 1이 낙인감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이것 역시 상당히 저평가된 결과다. 병원에 약만 받으러 오고, 조사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더 심할 것“이라며, ”뇌전증 개명 효과 검증 설문조사를 하며 느낀 뇌전증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인식 개선은 아직 미미한 수준으로, 범정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이우진 교수는 ”현재 뇌전증 환자를 지원하는 복지제도는 희귀 및 중증난치 질환 산정특례와 장애인복지법 산정특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난치 뇌전증인 경우에 해당되며, 장애인 등록은 일상생활이 현저히 제한되는, 장애가 고착된 시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우진 교수는 ”장애인 등록을 위해서는 발작 기록 등 세부 내용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현재 뇌전증 등록 장애인 수는 7천여 명으로 예상보다 훨씬 적은 명수이다. 장애인 등록과 중증질환 산정특례를 위한 의료인의 제도에 대한 이해, 환자와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뇌전증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패널토의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뇌전증 지원의 어려움이 다뤄졌다.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은 ”사람들은 뇌전증에 대한 정보를 몰라서,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피하는 경우가 많다. 뇌전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년간 많은 노력을 경주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이제는 국가가 예산을 갖고 적극적으로 감당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서 발표에서 봤듯이 뇌전증은 소아와 노인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사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이대의 뇌전증 환자들은 불이익 때문에 병을 숨긴다. 그래서 환자들의 목소리가 작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상암 교수는 ”현재 뇌전증의 약물 치료는 잘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 환자가 많은데다가 정신건강 측면을 전혀 봐줄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정신건강 악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환자들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도 있어 진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신원철 교수는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적다. 모든 장애가 다 사회적, 정신적 낙인이 큰 문제가 되지만 특히 뇌전증이 더 큰 것 같다. 뇌전증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을 기피하고, 기록이 안 남겨지니까 의무기록에 남지 않아 장애 등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학회에서 몇 년 전부터 상담치료, 직업 재활치료 지원 등을 준비해 장애인 지원법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현재 회기가 지나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병역비리 면탈 사건으로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장애인 지원법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일반 뇌전증 환자들이 대부분 장애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낙인감, 사회생활 측면에서 장애 기준을 적용하도록 완화해 지원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함께 향후 스마트워치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뇌전증 경련 데이터를 확보, 뇌전증 장애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37만명에 이르는 뇌전증 환자들이 뇌전증으로 인한 불이익 때문에 주변에 알리지 못하고, 사회적 낙인을 겪는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해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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