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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존경받는 ‘간호직’까지 ‘밥그릇 싸움?’ 누명 벗도록!

지난 9월 9일 천안에서는 일시에 수천 명의 군중들, 특히 여자들이 많은 두 무리들이 대규모 맞대응 시위를 벌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전국에서 3000여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양승조 의원이 입법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에 집단 반발해 양 의원의 지역구에 몰려와 규탄대회를 열고 가두시위까지 벌인 것. 이에 질세라 간호조무사협회에서도 급히 인원을 모집해 대응시위를 펼쳐 오후 내내 천안은 시끄러웠다.

다행히 두 단체의 시위장소가 제법 떨어져 있고 만일의 사태를 우려한 경찰이 효과적으로 대응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등의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깊게 베어진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이고 논란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간호협회에서는 “양승조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제80조 개정안이 중소병원의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을 부추기고 국민건강권을 위협하는 법안이며, 의료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악화시키는 한편 국민의 건강보다 의원 및 중소병원급 의료기관의 이윤추구를 위한 법안”이라고 말한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간호보조업무 대부분을 간호조무사가 수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하루빨리 간호조무사의 자격관리를 복지부 장관으로 일원화시키고 간호조무사 명칭을 간호실무사로 변경하며 전문대학 내 간호조무과 설치를 허용하는 등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양측 주장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다. 억울한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 단체의 싸움을 지켜보는 여론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양자 모두 의료 서비스 관련 직종이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병원을 박차고 나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탐탁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각자 이익을 주장하다보니 ‘국민의 건강’과 ‘의료현실’이 도외시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이익단체의 역할이 특히 그렇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에도 당연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국민 건강을 저해할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살펴보자면, 먼저 간호실무사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는 간호조무사협회의 주장에 대해 정작 바꿔야 할 것은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이지 명칭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사회적 판단과 가치에 따른 것이지 명칭 하나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던가.

굳이 명칭 변경을 하고싶다면 간호사와 구분을 둘 필요는 분명히 있다. 간호사들이라고 간호 실무를 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잘 헤아려 좀 더 업무영역에 있어 간호사와의 직종 구분이 명확하도록 간호조무사 직업의 특성을 잘 살려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참으로 고민이긴 하다. 조무(助務)라는 어감에 반감을 갖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관련법에 간호보조업무가 간호조무사 업무영역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記者)라는 직업 명칭의 경우도 말 그대로 하면 그리 세련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기록할 기(記)자에 놈 자(者)를 더하면 기껏해야 “쓰는 놈, 받아 적는 놈 또는 기록하는 놈”밖에 되지 못하니까 말이다.

가끔 일부 간호사들은 “그럼 우린 의사실무사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활동 간호조무사 중 70% 이상이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소지자이며 이들은 대학졸업 후 별도로 간호학원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비를 이중으로 부담한 셈이기 때문에 전문대학에 간호조무과가 개설되면 대학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므로 사회비용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한번 더 생각케하는 대목이다.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춘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 것이었던가”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친한 다른 매체 기자는 나에게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또 다시 대학을 진학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보다 더 큰 학비부담이 발생할 수도 있을것"이란 말을 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기도 했다.

대학 내 간호조무과 존치 문제에 있어 “애견이나 미용 관련 학과도 대학에 개설돼있는 마당에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조무과 폐지는 말도 안된다”는 간호조무사들의 외침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직업조건에 학력 하한이 아니고 상한을 정하는 제도가 과연 지구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다행히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간과하지 않고 복지부에 다시 검토해 보라는 결정을 내린 모양이라 안심이 되긴 한다.

그러나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조건이 붙는다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 등의 문제 역시 간과할 수만은 없다.

사실 “애견이나 미용도 되는데 왜 간호조무과는 안돼?”라고 간호조무사협회에서 불만을 제기했을 때 혹시 동물단체나 미용사 단체에서 성을 내지는 않을까 하는 조금은 엉뚱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국민 건강과 의료계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 처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후문에 의하면 지난 9일 맞시위 이후 천안 고속터미널과 기차역 등은 몇 시간동안 북새통을 이뤄 마비상태였다고 한다. 자동차를 갖고 갔던 기자 역시 운전대를 잡은 채 고속도로에서 몇시간을 흘러보내며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과연 이 문제가 거리를 뛰어나와 국민에게 눈쌀을 찌풀리게 할 사안이었을까?”

오랫동안 국민들은 '간호'라는 명칭이 붙은 의료인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새겨왔다. "가족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감수해 주는 남다른 '봉사'를 하는 고마운 분들로" 그래서 '천사'라는 별칭까지 붙여주고 있지 않았나!

지금도 국민들은 간호사이든, 간호조무사이든, 모두 '고맙고 훌륭한 분들'로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마치 '밥그릇 싸움'을 벌리느라 "저! 야단들!"이란, 비아냥에 오르는 것 조차 낯 뜨거운 일이다.

뭐니, 뭐니해도 병원에서는 가장 가까워야할 사이가 아닌가?, 공적으로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그렇다.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가족보다도 먼저 알려야할 만큼 24시간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혈육같은 직장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이다.

사안의 중요성을 도외시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눠야한다고 믿는다. 영원히 안볼 사람들도 아닌데, 길거리까지 나와 트잡이를 할 까닥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양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주무당국의 무성의와 안이한 행정자세를 가장 나무라고 싶다. 이 문제가 '남의 집 불구경할 사안'인가 말이다. "행정은 능률의 합리화"란 말도 있드시, 사안의 본질과 문제점 및 해결책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더 이상 "나 몰라라!"하는 무능을 보이지 말고 예지를 발휘해 중지를 모아 최대공약수를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간호 직분'의 고귀성에 흠집이 가지 않도록 단안을 내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