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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사무장병원 척결 별렀던 정부 뭘하나!

병원장 취임했다가 40억원 빚 떠맡은 오 원장의 피끓는 호소


사무장병원이 적발됐을 경우 사실상 주도적으로 병원운영상의 불법 행위를 저지른 사무장은 가벼운 처벌만 받는 것으로 그치는데 비해 의사는 법률상 모든 책임을 다 떠안게 되는 현 구조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가 30억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고민 끝에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사무장병원에 의사면허를 대여해줬다가 심평원에 적발돼 55억원의 요양급여환수처분을 받은 여의사의 사연도 알려졌다.

이외에도 사무장 병원의 꼬임에 넘어가 의사명의를 빌려줬다가 적발돼 병원운영과 관련된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사무장 주도로 병원이 부당 청구한 요양급여환수처분까지 받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본 의사들의 사연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 실제로 불법을 저지른 사무장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받고 만다. 대표적인 사무장 병원의 피해자인 오 원장의 경우도 그랬다. 막대한 자본가면서 실제 병원 주인이었던 사무장은 2000만원의 벌금을 낸게 전부다.

한해 3000명이 넘는 신규 의사들이 쏟아지고 있는 2012년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병원의 30% 이상이 사무장 병원일 것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으니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숨죽여 피눈물을 토해내는 의사들의 사연까지 모두 합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무장병원 폐해가 극심한 지금, 사무장 병원의 대표적인 피해자로서 사무장병원 피해의사 모임을 이끌고 있는 오성일 S실버병원 노인의학과 원장을 기자가 직접 만나 그의 말을 들어봤다.

오성일 원장은 지방 명문고와 A의대를 졸업하고 20여년간 의사생활을 하다 지난 2006년 일산 J병원의 병원장으로 부임했다.

6층 규모에 150개 병상, 최신식 시설과 의료장비를 갖춘 J병원은 일산뿐만 아니라 전주와 남양주에도 분원을 갖고 있는, 겉으로 보기엔 나무랄 데 없는 병원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건물임대료조차 제때 내지 못해 진료비를 가압류 당하고 있는 ‘사무장 병원’이었던 것.

의료법인이라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었으며 병원의 주인도 의료인이 아니었다.

현재 의료법상 병원의 개설자는 의료인만이 될 수 있다. 오 원장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을 개설할 수 없는 ‘진짜’병원주인 홍모씨에게 의사면허를 대여해준 꼴이 돼버렸다. 당연히 모든 법적책임도 그의 몫이었다.

다 망해가는 병원의 ‘바지사장’이나 다름없었던 오 원장은 하루아침에 건물임대료와 각종 물품 및 의약품, 체불된 직원들의 임금까지 모두 물어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렇게 악몽같은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대한의사협회 불법신고센터에 자진신고를 했다. 300만원의 벌금과 3개월의 의사면허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진짜 악몽은 따로 있었다.

이후 ‘진짜’병원주인과의 민·형사 소송에서 모조리 져 병원부채 16억을 물어내야함은 물론 근무하는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급했던 18억원의 급여까지 환수처분 당했다. 제약회사에 지급하지 않아 생긴 밀린 대금, 병원음식 제공업체에 대한 미지불금, 그는 아예 알지도 못했던 병원직원들이 받아 챙긴 리베이트에 대한 벌금까지 그가 지금까지 진 빚은 4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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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일 원장 “정부가 가장 큰 잘못”

- 사무장 병원 토양 제공한 정부에 가장 큰 잘못
- 사무장의 노예나 다름없는 의사
- 현실 알고도 외면한 정부, 성매매업소 묵인과 마찬가지
- 의협도 일부 책임 있어...
- 차라리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든지 아니면 단속을 강화하든지...
- 따지고 보면 국내 대형병원도 다 사무장병원!
- 사피모와 의협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설 예정


▶어떻게 사태가 그 지경이 되도록 몰랐나? 자신이 대표자로 병원이 운영된다는 사실이 불안하지 않았나?

◁합법적 의료법인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 이것저것 법률관계를 따져 볼 겨를도 없었다. 의사들은 원래 전공지식만 공부하느라 의료법 같은 건 잘 모른다.

▶왜 사무장 병원의 피해자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고 보는가?

◁현행법상 병원 설립 및 운영은 의사만 할 수 있다. 신규의사가 한해 3천명이 넘게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병원취직이 매우 어렵고 단독 개원도 힘들다. 실질적으로 병원을 개원하려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초기비용이 들어가는데 의사들한테 그런 큰돈이 어디 있겠나? 어쩔 수없이 사무장병원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의사들은 사무장병원이 뭔지도 잘 모르고 일만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가서 일한다. 그렇게 순진하게 병원에 ‘고용’된 의사들은 사무장들의 노예나 다름없다.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사무장병원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나?

◁노인병원의 30%, 네트워크 병원의 30% 이상이 사무장 병원이라고 알고 있다. 특히 생협의 50% 이상은 다 사무장 병원이라는 말도 있다. 특히 고령의 의사들이 사무장 병원에 많이 고용돼있는 것으로 안다.

▶폭행과 협박도 받았다고 들었다.

◁실제로 조폭같은 남자들이 밤에 찾아와 내 멱살을 붙잡고 폭언과 협박을 일삼는 등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사무장 병원의 사무장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수백 수천억원의 자산가로 대게 다 지역 내 유지들이다. 지역 보건소 등 관계당국에 행사가 있으면 지원도 많이 하고 인맥도 넓어서 나 같은 힘없는 개인들이 상대하기 매우 힘든 사람들이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다. 내 경우엔 건설업에 종사하다 건설 경기가 어려워져 의료에 눈길을 돌린 사람들이었다. 의료를 무조건 돈으로만 보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다. 결국 의사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누구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무장병원도 나쁘지만 정부가 먼저 사무장병원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진료하기에 바뻐 법을 잘 모르는 의사들에게 서류상 명의가 의사로 돼있으면 병원에 대한 모든 법적책임을 다 져야한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것 조차 하지 않는다. 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의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어이없는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개선책이 있나?

◁차라리 이럴바에야 영리병원을 허용시켜 선진국처럼 병원 설립과 운영을 비의료인도 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하는게 나을지도 모겠다. 그래야 의사들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국내 초대형 병원들도 다 사무장 병원들 아닌가? 아니면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의사들에게 병원을 개원할 때 필요한 법절차나 준수의무 등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이나 고지를 해야한다.

현재의 의료제도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사무장병원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토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되면 단속을 강화하면 된다. 사실 현재 있는 법으로도 충분히 사무장 병원을 근절시킬 수 있다. 보건당국, 수사당국, 심평원 등 단속권한이 있는 정부부처와 지역 의료사정을 잘 아는 지역의사회가 협조해서 단속활동이나 예방활동만 제대로 해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정부쪽) 알면서도 잘 하질 않는다. 마치 성매매업소 단속과 비슷하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돈 많은 사무장들과 지역 보건당국이나 수사당국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돼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의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기회에 이야기 하는데 사실 의협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맨날 포괄수가제 같은 이슈만 가지고 투쟁할 게 아니라 많은 의사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기본적인 민생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심정이 어떤가?

◁정말 참담하다. 살던 아파트도 모자라서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까지 처분하고 현재 신용불량자 신세다. 하는 소송마다 전부 패소하고 수십억의 빚을 지고 멱살잡히고 협박까지 당해 모든것이 엉망이다. 한때 너무 괴로워서 자살할 생각까지 해봤다. 너무 억울하다. 나같이 억울한 의사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사피모(사무장 병원 피해의사 모임) 회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전 사무장 병원에 피해를 당한 의사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나도 피해를 겪고 극단적인 생각을 해봐서 아는데 정말 괴롭다. 많은 의사들이 사무장병원에 피해를 당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극단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사피모나 의협에 도움을 요청하면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일단은 “가정의 행복을 잘 지키도록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언젠가는 잘못된 것들이 분명히 고쳐질 것이다. 그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