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상태를 보이는 듯 했던 이른바 ‘진료실 출입 사전동의’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양승조 의원이 진료실에 출입하는 전공의와 제3자를 대상으로 환자에게 사전설명을 의무화하는 동의서를 받도록 입법안을 강행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할 기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의료계가 정작 ‘교육받을 권리’와 ‘환자의 인권’이라는 논의의 접점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양 측의 자존심 싸움으로만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양승조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교육목적이라도 임산부 등 환자의 동의 없이 전공의나 제3자가 마음대로 진료실을 드나드는 관행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양승조 의원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이후 국회에서는 대전협의 행동이 국감 방해 행위라며 일침을 가하고 의료계에서는 현실도 모르면서 사전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 포퓰리즘적 탁상공론이라며 비난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임산부 마루타’ 취급과 ‘망언’, ‘비전문가의 치기’ 등 일부 용어 문제까지 겹쳐 의료계에서는 공식사과를, 양승조 의원은 입법강행을 외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한 의료계 관계자는 “사전동의가 법으로 될 건 아니지만 양승조 의원이 환자의 불편한 점을 지적한건 고무적”이라며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대안을 모색하는 것보다 법안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자존심 싸움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라는 건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하는 만큼 의사들이 먼저 환자와의 소통문제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자정기능을 발휘했으면 한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처럼 일각에서 ‘법안 상정 자존심 싸움’으로 이번 논란이 비춰지는 데는 그간 대전협과 양승조 의원실 사이의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협은 최근 대의원 총회에서 “임산부 마루타 취급 등 일부 용어로 전공의들이 상처받고 이미지가 실추된 만큼 공개사과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양 의원은 환자의 인권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으나 분명한건 일부 발언에 대해 실수를 인정하고 차후에 정책적인 이야기를 나누자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양승조 의원실의 설명은 다르다. 양승조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번 대전협에서 3명의 관계자가 의원실을 찾아왔을 때 문제가 되는 용어에 대해 양승조 의원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며 “다만 환자의 알권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담당의사가 아닌 다른 이들이 참관을 할 경우 환자에게 사전 설명의 의무를 다하자는 취지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양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전협은 양 의원이 홈페이지에 밝힌 ‘유감표명’을 공식사과로 받아들였지만 이후 국정감사 마지막 날 양 의원이 대전협의 공개 사과요구가 국감방해 행위라며 비판해 다시 재반박 성명서를 내며 현재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전공의를 의사로 취급하지 않고 피교육자로만 보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것.
반면 양 의원 측은 사전설명과 환자동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문제제기’수준에서 매듭을 지으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 측이 스스로 윤리적 재정립이라든가 자정적인 분위기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거센 반발을 해와 사전설명을 의무화하는 입법안까지 검토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양 측이 입장차만 재확인하고 있는 가운데 환자의 알권리와 인권보호를 위한 실제적 대안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교수는 “교육을 위한 참관과 관련해 환자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것은 큰 틀에서 맞다”며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는 교육도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동의를 얻고 어디까지를 환자의 프라이버시로 볼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현 상황을 바라봤다.
양승조 의원이 앞으로 1~2달 내 입법관련 공청회 등을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소모적 논쟁이 될지, 혹은 환자 인권과 전공의의 교육받을 권리를 아우르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열릴지 추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