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가운데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는 지난 28일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자녀들이 낸 소송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한 것.
이와 관련 의료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대한의사협회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서 소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한 것은 국가·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환영했다.
의협은 그동안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의해 의사가 소생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환자 및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충분한 동의를 얻는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의료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피력해온 만큼 이번 판결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무의미한 치료에 대한 의사의 적극적인 진료 결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법원의 판결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잇고 관련법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반면, 윤리적인 문제 등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까지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 왔으나 찬·반 논란이 격렬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엄사 논란 재발화 되나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말기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유지장치 등 발달된 의술에 의존해 생명만 연장되는 현상이 발생된다.
이러한 현상은 환자본인이나 환자보호자에게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어 ‘무의미한 연명의 거부’,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등의 요구가 나오게 됐다.
하지만 연장 가능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형법’상 살인죄·촉탁살인죄·살인방조죄저촉여부에 관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의사의 치료중단이 문제화돼 공론화된 계기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1997년 의식불명상태에 빠졌으나 응급처치와 수술을 통해 회복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환자보호자의 요구에 의해 조기 퇴원시킴으로써 사망을 초래했고, 이에 대해 환자보호자와 담당 의료진에게 살인죄 또는 살인방조죄의 유죄가 선고 확정된 것.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퇴원조치·생명유지장치의 제거 등의 연명치료 중단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우리 의료계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관행으로 ‘보라매병원 사건’ 이전까지는 법률적으로 문제돼 처벌된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윤리지침을 통해 사실상 연명치료중단을 인정하려 하고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가 의학적으로 무익·무용하다고 판단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환자 또는 그 보호자가 적극적이고 확실한 의사표시에 의해 환자의 생명유지치료 등 의료행위의 중단 또는 퇴원을 요구하는 경우에 의사는 의학적, 사회통념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의료행위를 보류·철회·중단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
한편, 대부분의 국가들은 적극적 안락사(예: 모르핀 등을 치사량 주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소극적 안락사(연명치료 중단, 존엄사)에 대해서는 일정한 요건하에서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말기암환자에 대한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환자 본인의 의사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 움직임이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번 존엄사 첫 인정 판결이 우리나라 '존엄사' 논쟁의 재불씨를 당김에 따라 향후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