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의사협회가 개최한 세계의사회(WMA) 서울총회는 ‘서울 선언’ 등 굵직한 성과를 남기고 역사의 장으로 넘어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대회를 치른 조직위원회의 신동천 사무총장(의협 정책이사, 연세의대 예방의학 교실)은 이제야 긴장에서 놓여난듯 했다. 대한의사협회 직원 3명과 함께 ‘모든 것’을 준비한 신 사무총장이 갈무리하는 서울총회 이야기다.
이번 서울총회는 ‘서울 선언’이나 ‘헬싱키선언 개정’ 등 굵직한 성과들이 많았는데?
= 정책적인 측면에서 가장 성과가 많은 총회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 꽤 많은 선언, 결의문, 성명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체계적으로 적용해 나가느냐에 대한 의사사회의 컨센서스를 구축할 때라고 본다.
이 주제들은 ‘막연’하지만,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며, 오랜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의사회는 ‘의사’를 위한 단체라기보다는 ‘인류’를 위한 단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 그렇다. 결국 의사는 세계시민의 ‘일원’이자 그들을 보호하고 리드해 나가는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세계사회에서 인류의 보편적 문제들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고, 그것을 각국 의사사회에 권고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로 규정하게 됐다.
이번 총회에서도, 앞서 말한 ‘막연하면서도 중요한’ 이슈들을 많이 다뤘다.
우리나라 의사들도 이러한 수준에 맞춰 고민도 하고 기여도 해 나가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언급한 ‘막연하면서도 중요하다는’, 그리고 ‘인류를 위한다는’ 이슈들이 과연 우리나라 의사사회의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 모든 시스템이며 현상들이 역사와 원인을 갖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의료계가 안고 있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도 세계의사회의 가이드라인으로 재조명하면 오히려 본질적인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2004년 도쿄총회 때 제약회사와 의사간의 인터랙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이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제약회사 영업정책과 연관되는 문제다.
“서울 선언, 현재 의료현안과 무관치 않아”
이번에 채택된 ‘서울 선언’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의 진료행위에 정부 등의 불필요한 간섭이 배제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된 진료권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도 한다.
하나 더, 이번 총회까지 회장을 맡았던 스내달 회장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태스크 시프팅’도 그렇다. ‘인력부족 등의 특별한 환경’이 아닌 한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중급인력(middle level health worker)이 담당하는 문제들을 세계의사회는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 영역과 관련된 이슈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 총회에서는 특히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이 많았었는데?
그렇다. 의사와 인권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특별히 이번 총회에서는 학술대회 주제를 건강과 인권으로 잡을 정도로 인권 분야에 무게중심을 많이 놓았다.
처음에는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런던대학 네이탄슨 교수에 힘입은 바 컸다. 이분과 꾸준한 논의를 이어오면서, 세계의사회 이사 중에 관심있는 7~8분의 의견도 함께 수렴했다.
1년 정도 이런 준비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프로그램이며 연제 등의 학술대회 구성자체가 매우 짜임새 있어졌다. 나중에는 네이탄슨 교수마저도 감탄했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는 예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에 비해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건강과 인권 학술대회의 특징을 뽑으라면?
= 문태준 명예회장이 구한말의 애비슨 박사 일화를 전할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콜레라 우려를 없앤 후 고종께서 소원을 묻자 “백정도 상투를 틀고 인간적인 대우 받게 해 달라”고 청한 것, 그것이야말로 인권과 인류애의 본질을 보여 준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트래디셔널’한,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진 인권 논의가 사회적 약자, 환경문제, 의사들의 인권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 등으로 확산됐다는 의미도 크다.
3세계 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인권의식은 이번 학술대회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대회에서는 “환경은 후손의 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총회 유치에서 폐회까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 세계의사회를 아시아에서 유치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일본이 2회 유치했고, 인디아가 2001년에 하기로 했다가 9∙11 사태로 연기된 바 있었다. 따라서 이번 총회의 우선권은 인디아가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의협이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유치활동을 벌였고, 의외의 몰표를 받아 유치에 성공했다. 생각해보면, 문태준 명예회장이 WMA 회장을 하던 시절까지 거슬러가자면, 우리는 WMA에 참 많은 것들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할 때이긴 하지만…
유치가 확정된 이후에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야 했다. 일본 대회에서 천황이 환영을 했었기 때문에 우리도 대통령을 모시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한편 대부분이 우리나라를 처음 찾는 참가자들을 위해 ‘문화’ 위주의 활동을 많이 기획했다. 결과? 대성공이었다. 참가자들의 “브라보!”를 들으며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들이 자국의 지도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외교 측면에서도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텐데…
= 2004년 도쿄총회에서 서울 유치가 결정되고 꼬박 4년을 준비해 왔다. 대한의사협회 직원 3명과 함께 준비작업을 벌였는데, 전문 용역회사에 의뢰하지 않고 의협 자체내에서 모든 것을 해냈다.
“대행업체에 맡기면 중간 수준은 해내겠지만, 최고수준은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의협 직원들의 능력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의전이며 스케줄, 진행 등 모든 과정을 준비했다는 뜻인가?
= 그렇다. 학술대회 준비며 연자섭외, 임원진 영접, 총괄 시나리오 작성, 이에 따른 진행, 관련내용 번역 및 전달, 이사회 진행을 위한 WMA 사무국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부분을 직접 준비했다. 심지어 날씨며 메뉴 체크까지 우리 직원들이 직접 챙겼다. 신라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외하면 모두 의협 직원들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대회를 앞둔 몇 달간은 제대로 잠잘 시간도 못챙기면서 일에 매달렸다. 성공적으로 대회가 끝나고 나니, 이제야 이들에게 감사할 여유가 생긴다.
대회를 마치고 난 소감이라면?
사실 세계의사회와 관계 없이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모든 것을 잘해나가고 있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선캠프에서 우리 의료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는 설까지 들리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남에게 배우고 얻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을 돕고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진화했지만, 지구촌 사회의 일원이라는 마인드에서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지 않은가?
이번 서울총회는 그런 포지셔닝을 확고하게 해주기도 했다. 세계의 의사사회와 정신적 차원에서 호흡을 같이하고, 또 때로는 그들을 리드해 나가기도 하는 그런 역할모델을 체득하는 기회가 됐다고 본다.
이번 총회의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의 활동은 계획돼 있지 않은가?
= 이번 총회는 의협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이뤄졌으니, 101년째부터는 세계에 기여하는 의사회로 포지션을 변경해도 될 것이다. 세계의사회를 통해 세계의 의사사회에 기여할, 그리고 대안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반대방향으로 세계의 흐름을 우리 의사사회에 전달하는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WMA 회장을 지낸 미국의 코블 박사는 ‘Caring Phsicians’이라는, 봉사하는 의사를 독려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스내달 전 회장도 태스크 시프팅 문제를 주도적으로 고민하며 경고메시지를 전하는데 주력해 나갈 것이다.
”정책-지역사회 기여방안 찾을 때”
한편으로 2010 대회를 준비하는 캐나다는 환경문제를 주도해 나갈 태세고, 스웨덴은 환경호르몬 협약을 주도했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다. 건강과 환경 등의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리고 지역사회의 리더로서 지역의 건강-환경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안을 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대회의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작은 기구가 설립된다면, 보다 체계적인 사회기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아니면, 소외된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공간이 개설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