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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연세의대 졸업생, 신창희·박서양 선생 독립유공자 선정


제63주년 광복절을 맞아 선정된 361명의 독립유공자 중 2명의 의사(醫師)출신 의사(義士)가 포함됐다.

1908년 연세의대 전신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1회 졸업생으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신창희(사진 좌, 1877~1926)선생과 건국포장을 받는 박서양(사진 우, 1885~1940) 선생이 그들이다.

백범 김구선생의 손위 동서이기도 한 신창희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전후해 신의주와 안동,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애국단체인 신한청년당원 이자 임시정부 교통국 요원으로서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운동가를 적극 후원했다.

특히 1910년 합일합병 후 중국으로 망명한 신창희 선생은 동몽골지역에 정착, 병원을 열어 이주한 많은 동포에 대한 무료진료활동 및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무리한 진료활동 등으로 폐렴을 얻어 49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박서양 선생도 모교인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서 진료와 후학양성을 하던 중 나라를 잃자 1917년 중국 간도에 ‘구세의원’을 개업, 이주동포에 대한 진료활동과 함께 민족교육기관인 ‘숭신학교’를 설립해 학교장으로 항일교육에 앞장섰다.

또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군의로서 독립군의 의료지원을 책임졌다.

이후 일제의 추적과 탄압으로 숭신학교가 폐쇄되고 독립운동 기반이 무너지자 1936년 귀국하여 고향인 황해도 연안에서 개업을 했으나 병이 생겨 귀국 4년만이 1940년 5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두 선생의 항일운동 업적을 정리하고 이번 독립유공자 선정에 앞장 선 연세의대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은 “세브란스 출신 졸업생들이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이 뒤늦게 인정받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7명의 1회 졸업생 중 기존의 ‘김필순’, ‘주현측’에 이어 총 4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는 등 이후 많은 졸업생들이 항일민족운동에 투신한 것은 세브란스가 당시 민족계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사명을 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