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 (주)코메드 대표이사
최근 산업자원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 동안 정부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던 의료기기 산업이 바야흐로 고부가가치 고성장의 미래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의료기기, 특히 전자의료기기 산업은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나 철강보다 부가가치율이 높고, 수요의 소득탄력성도 높아 소득증대에 따른 고성장이 예상되는 등 산업적으로 매력도가 큰 산업이다.
그럼에도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대상에서 소외되어 왔다. 다행히 차세대 전략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의료산업 전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맞물려 뒤늦게나마 의료기기 산업 육성에 정부가 발벗고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지원 방안들을 살펴보면, 기업의 입장보다는 연구자의 마인드에서 문제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이 짙어 아쉬운 점이 많다. 현재 의료기기 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기업규모의 영세성 등 기업의 허약한 체질에서 비롯된 것임은 여러 자료에서 지적되고 있다.
자금과 인력의 영세성, 경영의 비전문성, 핵심기술의 취약성 등 3가지 문제점이 서로 얽히고 설켜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면서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도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터 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체질강화를 위한 대책보다는 의료기기 전문인력 양성, GMP 등 품질관리 강화, 의료기기 인허가 행정 개선, R&D자금 지원 등 주로 재정적, 규제적 지원에 초점 맞춰져 있다.
이러한 간접적인 지원만으로 과연 국내 의료기기 제조회사들이 막강한 자금력과 엄청난 R&D 역량을 갖춘 다국적 의료기회사의 틈새에서 국제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자못 의문이다. 자칫 종전처럼 변죽만 울리다 큰 성과없이 그치는 지원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
정부가 의료기기 산업육성에서 객관적인 성과를 바란다면, 의료기기 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의료기기 산업이 개별적 영세성을 탈피하여 규모의 경제(scale of economy)를 이룰 수 있도록 기업간 M&A를 활성화하는 정책적 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의료기기 산업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만 자금력, 기술력, 영업력 등 기업성장에 필요한 제반 자원을 외부로부터 유치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영세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형병원 고객과 전문투자자, 우수한 기술인재의 호응을 얻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M&A를 통해 시장과 기술을 통합하고, 통합된 시장지배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과 투자를 유치하며, 유치된 자금으로 R&D와 경영역량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실현될 때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추어 미래의 비전있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기 산업분야에서 M&A는 그리 익숙한 기업현상은 아니다. 대부분의 CEO들이 기술자 출신이거나 가업을 승계한 입장이라서, M&A를 기업성장의 주요 수단으로 보기 보다는 회사를 “내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의료기기 산업전반으로 시야를 확장하여, 의료기기 산업 외부의 생태계에서 필요자원(자금, 기술, 인력)을 “얻어오는” 것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개별기업에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폐쇄적이고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서 기업간의 관계가 감성에 지배되는 경향이 짙은 의료기기 업계에서 M&A에 대한 합의는 용이치 않은 면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중재자에 의한 지원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정부가 의료기기 기업간의 인수합병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M&A에 대한 가능한 정책지원 프로그램(이를테면 의료기기M&A펀드 설립 등)을 구축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필자는 의료용 소프트웨어인 PACS를 제조하는 어떤 회사 재직시에 M&A를 통해 경쟁사 및 유관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합병하여 국내 시장지배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한 M&A 성공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성공사례가 업계에서 보편화되어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이 세계경쟁력을 갖추기를 기대하면서, M&A를 통한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전략의 성공가능성에 대해 업계와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논의를 활성화기 위해서는 우선 M&A수요조사와 효과분석이 적극 실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