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병원에서 입원 도중 창문을 통해 추락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로부터 자살 징조를 찾을 수 없었고, 시설물도 기준·규칙에 따라 관리됐다면 병원이 책임질 사항은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광주고등법원이 알코올 전문병원에서 환자가 창문을 통해 추락한 사건 관련 병원 측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 이 같이 판결했다.
앞서 원고 A씨의 부모인 망인 B씨가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병원에서 실시하는 자율산책을 나갔다가 복귀하다가 병원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위치한 창문을 통해 밖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병원 의료진이 알코올 의존증후군과 우울증을 함께 앓으면서 입원치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환시·환청까지 경험하고 있던 B씨의 이동동선이나 복귀 여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창문도 정신병원 건물이 갖추고 있어야 할 안전성이 결여돼 있으며, 이로 인해 B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달랐는데, 원고 A씨가 제기한 소송 청구 이유인 주의의무 위반과 공작물 책임 모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항소 기각을 판결한 것이었다.
우선 법원은 해당 사건 사고가 병원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알코올 의존증후군과 중등도 우울에피소드 등의 증상으로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한 환자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가능한 자유로운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보호관찰 의무는 자신·타인에 대한 가해 위험 방지와 밀접하고 불가분적인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해 영향을 미치며, 자신·타인에 대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되거나 예측가능성(사고발생의 구체적 위험성)이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합리적인 노력을 게을리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법원은 B씨가 과거에 환청·환시를 경험한 적이 있으나, 정신증이나 자살시도 경험은 없고, 금단증상으로 ‘진정섬망’ 증상이 표시돼 있으나, 지각·지남력은 문제가 없으며, 자살위험성도 현재 관찰되는 바가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음은 물론, ▲우울도 ▲Beak 불안 척도 ▲상태불안척도(현재상태) 및 상태불안척도(기질) 검사 대부분 보통 수준으로 평가됐음을 꼬집었다.
이와 함께 B씨는 스스로 ‘자살 생각을 하지 않음’에 체크하는 등 특별한 문제없이 생활해 온 점과 의료진의 권유에도 스스로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기를 희망한 점, 주치의로부터 B씨가 ‘아캄프로세이트정’을 처방받았으나, 해당 약제 투여군 중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미미한 점, 알코올 중독 회복 과정과 자살과의 관계가 확인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지목하면서 병원 의료진이 B씨에게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기 어려웠음을 강조했다.
더불어 알코올 전문병원과 관련해 환자들의 산책시 동반 인원의 수나 이동동선 관리 관련 의무규정이 없으며, 금단증상이 없어 산책이 가능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산책을 실시한 점, 알코올중독자가 다른 정신질환자 대비 자살 등 돌발적인 행동의 위험성이 높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놨다.
법원은 창문과 관련해서도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의 창문이 설치·보존상 하자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음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이 벌어진 병원의 4~5층 사이에 위치한 창문의 경우, 해당 창문까지 가려면 출입이 통제된 유리문을 통과해야 하고, 병원 5층에 있는 비상구는 화재시를 제외하면 늘 폐쇄돼 있어 평소 환자들의 통행로로 사용되지 않고 있었던 점이 있음을 꼬집었다.
또, 지면으로부터 약 158cm 높이에 위치해 보행자용 안전손잡이 ‘핸드레일’을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는 점. 폐쇄병동 바깥에 위치한 계단참에 설치된 창문까지 탈출·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잠금장치·차단봉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에 지목했다.
이를 토대로 법원은 알코올 전문병원이 창문 등 시설에 관한 기준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음을 근거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