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개인 간병비 부담을 국가서비스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기존 시설 및 제도의 개편과 함께 간병전문요양원 ‘너싱홈’ 설치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최근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함께 국민의 ‘사적 간병비’ 부담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이를 공적서비스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동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작년 12월에 발표한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대책’을 바탕으로 간호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병원협회 등 관련 종사자 및 전문가들이 토론회에서 정책의 세부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최재형 의원실 주최, 국민의힘 중앙여성위원회 간호사특별위원회 주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후원으로 ‘고령화시대, 국민의 사적 간병비 규모와 제도적 해결방안 모색’ 토론회가 1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최재형 의원은 개회사에서 “간병비 부담은 어느 가정도 예외 없이 겪고 있거나, 겪게 될 문제다. 현재는 간병의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어 개인 가정이 오롯이 부담하는 현실이다.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높은 간병비로 인해 직접 간병에 뛰어드는 가족들의 사회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영미 부위원장도 “작년 3월,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심화되는 상황의 절박성을 인식하고 고령사회 정책과 핵심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저출산만큼이나 함께 다가올 고령화도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년 12월 보건복지부의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 발표와 함께 ‘간병비 걱정없는 나라’라는 비전이 제시됐다. 오늘 논의를 통해 여러 가지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가 토론에 앞서 ‘고령화시대, 국민의 사적 간병비 규모와 제도적 해결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진현 교수는 “고령 인구는 스스로 건강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국내 연금 수준은 낮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가 커지면서 고령층의 의료돌봄서비스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현 교수는 “2021년 기준 건강보험에서 16%의 65세 이상 노인층이 지출하는 의료비는 전체의 43%로 평균보다 3배 많은 수준이며, 이는 간병비를 제외한 값으로 향후 간병비가 포함된다면 부담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2020년 기준 입원환자의 사적 간병률은 60.5%로 나타나, 가족의 간병부담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며,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 10만원 이상으로 형성되는 유급간병비도 결코 적지 않지만, 가족간병으로 인한 사회적 활동, 취업 제한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그보다 더 큰 상황이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12월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발표했고, 여야가 ‘간병비 급여화’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점차적인 개선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230만 명이 이용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2027년까지 400만 명으로 확대하려고 하는데, 이 경우 추가적으로 170만 명의 사적 간병비 10.7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간병비 지원 대책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확대와 요양병원 간병 지원 등으로 나뉘는데, 김진현 교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 수를 1:10 수준으로 감소시키고, 수가를 원가의 120~140% 수준으로 보전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김진현 교수는 “전체 간병 중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이용 비중은 2020년 12.7% 수준으로, 2017년 4.3%에서 크게 증가했으며, 복지부의 계획대로라면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며 “상급종합병원 등 간병수요 충족률이 낮은 의료기관부터 통합병동의 단계적 확대, 전체 병동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운영하는 기관의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간병 지원 정책에는 탄력적 인력 배치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 분장과 함께 병상 수 조절이 필요하다. 기존 요양병원 병상의 상당수를 요양시설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중간 단계로 임상경력 간호사가 운영하는 ‘간병전문요양원(너싱홈)제도’를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발표 이후 지정토론에서 세밀한 정책 적용을 위한 다양한 고려사항들이 제시됐다. 송경자 전(前)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이 좌장을 맡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김수완 위원(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은 “간병비 사회서비스 지원은 확대될 여지가 너무나 많은 영역이다. 단 간병이 의료, 장기요양 안에 혼재돼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감에 집중하기보다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평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양적 확대는 바람직하지만, 중증 환자를 받기 어려워 경증환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등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 동반돼야 한다. 특히 발표자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간병서비스전문 ‘너싱홈’은 굉장히 논의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논의를 포함해 요양서비스의 발전을 논의할 수 있는 장, 적절한 거버넌스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환자의 입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재가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모델이 개발돼야 하며, 사적 간병비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 높은 간병이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정재철 정책자문위원은 “사적 간병비를 공적 간병서비스로 바꾸려면 공동부담 비용에 대한 재원조달방안이 필수적이다. 간병비 지원이 단순 시범사업으로 끝나선 안되며, 사적 간병비의 사회화를 통한 소득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재원이 건강보험인지, 노인장기요양보험인지 명확하게 하고, 의료전달체계 개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상이 간호본부장은 “의료현장에서 느끼는 고령화는 더욱 심각하다. 60대 이상의 간병인이 많다보니 간호사가 보호자와 간병인까지 간호해야 되는 상황이다. 업무 과중으로 인해 간호사의 임상 근속 평균 년수는 2.7년에 불과하다.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의 상황에 맞게, 중증도에 맞게 환자를 볼 수 있는 배치도가 나와야 한다. 젊은 인구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전동환 기획실장은 “지방 중소병원이 급성기 병원의 역할을 잘 하지 못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의료기관 외 시설에서도 국민들의 의료적, 돌봄적 요구가 있다. 방문간호, 방문재활, 방문요양서비스로 이 부분을 잘 제도화하지 않으면 병원의 업무 과도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재활의학과)는 “간병에 대한 정의가 이뤄져야 하고, 어느 시점에서 간병을 제공할 것인지 고도화가 필요하다. 급성기 모형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30~60일 장기 입원 모형에서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병원 경영자로서 모형이 다양화되지 않으면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서유진 사무관은 요양병원 간병 급여화 시범사업 등 정책 설명과 함께 “작년 현장 답사를 하며 간병인력 수급의 중요성을 느꼈다. 현재 간병은 너무 노동집약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2030세대가 들어오기 어려운 환경이며, 노인-노인 케어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재원에 대한 논의는 계속 해나갈 예정이며, 간병 인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조속하게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토론회를 마치며 김진현 교수는 발표 마지막에 ‘너싱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요양시설 수십 곳을 방문해봤다. 임상경험이 있는 간호사의 유무가 시설 내 사망률, 욕창 발생률 등에서 많은 차이를 발생시켰고, 굳이 의사가 없어도 될 의료요구도가 있는 환자에 대한 효과적인 케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가 요양서비스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재가 서비스가 잘 돼 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환자가 직접 시설 입소와 재가 서비스 중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재가 서비스를 선택할 경우 시설 비용을 선택하지 않아 절감되는 비용을 현금으로 환자에게 지급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