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한의계와 의사회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12월 22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원심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의사회의 성명이 보름이 넘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1월 3일에는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4일에는 대한피부과학회, 5일에는 대한재활의학회와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가 각각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각 직역 대표자들과 함께 1월 7일(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대법원 판결 3일 후인 지난 26일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삭발을 감행하며 단호한 반대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한의사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했느냐이고,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봤다. 한의사 단체 측은 그동안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노력을 해왔던 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는 이번 판결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돼 환자들의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정확한 진단을 위한 의료기기의 사용은 그것을 통해 보이는 정상적인 조직과 조직의 병리적 변화, 그것을 판단하는 총체적 의학 지식이 필요한 과정”이라며, “영상의학만을 개별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초음파를 이용한 진단기기의 사용은 전문성을 가진 의사들조차 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술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진단용 기기를 사용함에 있어 그 위해성은 그 기기 자체의 위험이 아닌 ‘정확한 진단’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중대 질환의 오진이라는 명백한 보건 위생상의 위해로 시작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 보건 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피부과학회는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한의사가 본연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했는데 2년여 간 68회나 초음파를 사용하고도 자궁내막암 2기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이번 판결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돼 국민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며 우려했다.
대한재활의학회·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는 “이번 판결이 초음파를 포함한 전 의료영역에서 한의사의 의과영역 침범을 가속화시키는 판례가 될 수 있다. 모든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는 아니라는 점이 판결문에 명시돼 있지만 위반을 법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어졌다”며, “기존에 모순이 있지만 이원화된 체계로 유지돼 온 건강보험 진료체계에 붕괴가 올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순된 판결은 반드시 타직역, 타면허 영역에도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있다”며, “대법원 판결 이후 간호사, 조산사 등의 단체가 환영을 표하며 초음파의 합법적 사용을 주장하고 있다. 면허를 무시하고 소정의 교육을 받으면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법률 강좌를 들으면 변호사법 없이 변호사 역할을 해도 된다는 것인가”고 말했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4일 발표한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합법’ 판결 팩트 체크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의 ‘팩트’는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한의사들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료에 활용하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크나큰 위해를 끼칠 듯이 국민과 언론을 기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초음파 오진으로 인한 양의계의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 사례가 있음에도 양의계는 한의사의 오진이 우려스럽다는 ‘내로남불’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은 양의계의 전유물이 아니며, 인류에 이롭게 활용될 수 있다면 누구든 사용에 제한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그동안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된 지속적인 한의계와 양의계의 입장차가 있었으며, 한의계에서는 진단기기 사용 합법화를 위해 애쓴 바 있다. 또 이번 판결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모순적인 이원화된 한의계-양의계 의료 체계를 깨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