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심각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과잉금지원칙이 모두 지켜지지 않아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은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발간한 계간의료정책포럼 19권 2호에 실린 ‘수술실 CCTV 의무화는 공공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다’ 글을 통해 수술실 CCTV 의무화 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 회장은 “공익을 위한다는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얼마나 심각한 개인의 기본권 침해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지원칙에 입각해 검토해야 한다”며 “과잉금지원칙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모두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하나의 원칙이라도 맞지 않으면 위헌이 된다는 헌법상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목적의 정당성=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자 한다면, 그 입법의 목적은 헌법과 법률의 체계 내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CCTV 설치를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법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막고자 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의료법과 충돌을 일으킨다.
환자가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는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환자의 사생활 및 기본적 인권 보호를 위한 비밀유지 준수 의무는 의사의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이자 법적 의무다. 극소수의 범죄 가능성 때문에 직업윤리와 의료법에 반하고 개인정보 보호법에 상충되는 법안을 입법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수단의 적합성=입법 수단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CCTV 설치·운영이 첫째로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되고, 둘째로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셋째로 범죄를 단속하는 데에 도움이 돼야 한다.
CCTV가 대리수술이나 무면허의료행위 등의 범죄를 예방할 수는 있겠지만, 수술 중 환자의 안전을 지키거나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는 이뤄낼 수 없다. 환자와 의사의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크게 침해하는 불합리성에 비해 효과가 작은 수단이라면 적합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범죄를 단속하는 용도라면 수술실 입구의 CCTV로도 충분하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수술실의 60.8%가 입구에 CCTV를 자율적으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피해의 최소성=법률의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하다고 해도 만일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방법이 있거나 아예 의무를 부과하지 않더라도 목적을 실현할 방법이 있다면 이를 택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수술실의 입구와 통로에 설치된 CCTV나 지문 인식기, 또는 수술실 출입자 명부 작성 등을 통해 대리수술 등의 불법행위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면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요즘은 법안과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CCTV를 설치하고 홍보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이러한 병원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이러한 의료계 상황을 무시하고 기본권만 침해하는 의무화 법안은, 자유를 중시하는 헌법정신에 반하는 입법이다.
법익의 균형성=입법으로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당하는 사익을 저울질해, 보호되는 공익이 사익보다 커야 균형잡힌 입법이라 할 수 있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극소수 의료인의 잘못을 밝히려는 공익에 비해 모든 의사와 환자가 포기해야 하는 사익이 너무나 크다.
감시당하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집중할 때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자유가 억압당하면 최소한의 일만 억지로 하는 존재다. 모든 의료활동이 그렇듯이 수술은 의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최대 편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오직 자유롭게 집중할 수 있는 직업환경이다. CCTV로 감시를 하겠다는 법안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모든 의료진의 이익을 박탈하고, 모든 환자가 얻어야 하는 최선의 수술 결과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처럼 균형이 맞지 않는 입법은 옳지 않다.
문 회장은 “의료계가 정상적인 신뢰의 관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며 의료계의 자율 규제 강화, 의사 윤리 교육 강화, 정부 재정 지원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끝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감시하고 견제하려는 것은 커다란 우를 범하는 일이다. 수술실 CCTV는 환자 안전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도 자격이 없다”라며 “무리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법안으로 환자와 의료진의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