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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지옥 같은 시간”의 코로나19에 맞선 요양병원 근무자들

요양병원협회, 요양병원 현장보고서 ‘우리가 K-방역입니다’ 발간
“자료 보내달라는 요구만 있었을 뿐 현장지원은 없었다”

대한요양병원협회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요양병원들의 절박했던 상황과 방역 과정의 문제점, 대안 등을 제시한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코호트 격리를 한 바 있는 요양병원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요양병협은 서울과 지방의 9개 요양병원을 방문해 대표자, 실무책임자 등 14명으로부터 ▲코로나19 확진자 이송 ▲코호트 격리 ▲PCR 검사 ▲역학조사관 활동 ▲방역물품 지원 ▲방역당국의 역할 ▲피해 보상 등에 대한 증언과 함께 감염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본지는 보고서를 토대로 현장관계자들의 지적과 개선점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감염병전담병원 부족

지난해 12월 27일 한 요양병원 의료진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호트 격리로 죽어가는 요양병원 환자들을 구출해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코호트 격리 이후 요양병원의 절박한 상황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감염병전담병원 병상 부족으로 확진자를 이송하지 못해 이송대기자만 60명에 달하고, 이 때문에 N차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

해당 청원인은 “요양병원 간병사들 모두가 나가고 일부 간호사가 나간 상태에서도 환자 치료에 대한 사명감으로 일하던 간호사들도 7명이 확진됐다”면서 “레벨D 방호복을 비롯한 4종 방호구를 착용하고 기저귀 갈기 등 격리된 병동에서 수십 명의 환자 케어를 담당하고 있으며,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도 힘든 상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1명의 수간호사가 또 쓰러졌다고 방금 연락이 왔다”고 당시 현장의 급박했던 상황을 알렸다.

보고서에서 현장관계자들은 초기 확진자들만 빨리 전담병원으로 보냈어도 위급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E요양병원 관계자는 “자구책으로 양성환자 전용병동을 만들어 확진자를 관리했지만, 초기에 확진자를 이송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보니 확산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았다”며 “초반에 간병인들이 감염됐고, 일부 직원들도 상황이 점점 힘들어지니까 방어하는 데 한계가 왔는지 확진되더라.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방역당국이 지난해 봄부터 가을철 대유행을 예고하고, 이에 대비하겠다고 발표했었는데 감염병 전담병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게 참 아쉽다”고 덧붙였다.

◆수천만 원 넘는 사비로 PCR검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지침에 따르면, 확진자 진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PCR검사를 해야 할 대상을 예시하고 있다. 특히 요양병원의 경우 감염에 취약한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중환자들이 다수 입원해 있는 만큼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전체 입원환자,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관계자들은 병원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통보를 받아서 보건소에 전수검사를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아 수천만 원의 사비로 PCR 진단키트를 사서 전 직원, 입원환자들을 검사했다고 한다.


H요양병원 관계자는 “직원 1명이 확진됐는데 밀접접촉자 10여명만 PCR검사 하라는 거다. 감염에 취약한 노인 환자들이 수백 명 입원해 있는데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직접 검사할 테니 진단키트를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라며 “원장님이 그 자리에서 ‘알았다. 그럼 사비로라도 검사하겠다’라고 했다. 바로 전체 직원, 입원환자들을 검사했다. 비용만 5000만원 가까이 들어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전원 음성이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현장관계자도 초기에 매일 검사했거나 유증상자만이라도 신속하게 검사했으면 확진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현장의 목소리가 신속하게 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A요양병원 관계자는 “전수검사에서 확진자가 나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는데 PCR검사를 3일에 한 번만 해주니까 입원환자들이 너무 걱정됐다”며 “그래서 병원에서 신속진단키트를 따로 구매해 열이 있거나 감염의심증상이 있으면 바로 검사해서 양성반응 나오면 자체 격리시켰다”고 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코호트 격리지침

방역당국은 코호트 격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요양병원의 특성을 반영하고, 대체근무 인력 지원 등 환자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했는가에 대해 현장관계자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지침으로 힘들었다며, 심지어는 버려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E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에 들어가니까 방역당국에서 환자들을 분리해라, 1인 1실로 하라고 했다. 병실마다 환자들이 꽉 차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며 “환자들을 빼낼 생각은 하지 않고 현실에 안 맞는 조언을 했다. 확진자를 빨리 이송하지 않으니까 그 병실은 전멸이었다”고 지적했다.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방역용품 지원

레벨D 방역복을 어느 곳은 100벌, 어느 곳은 300벌씩 지원받는 등 지역에 따라 방역용품 지원이 천차만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라텍스 장갑, 손소독제, AP가운, 페이스 쉴드 등 기타 방역용품을 자체비용으로 충당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방역용품 모두를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B요양병원 관계자는 “보건소에서 코호트 격리할 때 레벨D 방역복 100벌을 줬다. 그런데 의사, 간호사, 간병인들이 한두 번 갈아입었더니 다 소진됐다. 보건소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더니 재고가 없다고 했다”며 “직접 방역용품 사러 쫓아다녔다. 전쟁해야 하는데 총알을 안 주는 것과 비슷하다. 방역하랴, 치료하랴, 방역물품 사러 다니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면, I요양병원 관계자는 “지역마다 방역물품 지원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레벨D 방역복, 손소독제, 소독티슈, 페이스쉴드 등 엄청 많이 왔다. 방역복만 6000만원 어치 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부족한 인력은 탈진으로 이어져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뒤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인력 부족이었다고 한다.

D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뒤 가장 힘들었던 게 인력 부족이었다. 간병인들은 환자 만지지 않겠다며 일을 안 했다. 간병인이 움직이지 않으니 간호인력이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며 “격리 해제될 때까지 보건소에서 인력 지원을 안 해줬다. 다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료폐기물

코호트 격리가 되면 일회용 식기까지 전부 격리의료폐기물이 되는 바람에 하루 수백 톤의 의료폐기물이 나와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게다가 방역용품 지원과 마찬가지로 자부담해서 의료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곳은 지자체에서 처리비용을 대주는 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 들어가니까 모든 게 다 격리의료폐기물이다. 엄청나게 나왔다. 처리비용은 온전히 병원에서 부담했다”며 “코호트 격리 명령은 방역당국에서 내리고, 비용은 전부 우리가 부담하는 게 맞느냐”고 했다.

◆지원보다 더 많은 자료 요구

코호트 격리 기간 방역당국은 요양병원을 지원하고 조언해 주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해당 보건소, 전문가가 포함된 단체 카톡방을 개설해 운영했는데, 도움을 주려는 핫라인이 아닌 일방적 핫라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정도로 바쁜데 질병관리청, 시청, 보건소 등 수십 개 기관에서 전화해서 같은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구만 하지 상주하면서 현장을 지휘하거나 지원해주는 전문가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A요양병원 관계자는 “코호트 격리 시작단계에서부터 해제될 때까지 병원에 상주하면서 지휘한다거나, 지원해주고, 교육해주는 그런 공무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며 “우리는 바빠 죽겠다. 밥 먹을 시간도 없고, 하루 한 끼도 못 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보고하라고 난리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고 털어놨다.

◆서럽고 눈물 나는 싸움의 연속

방역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충분히 지원해 치료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그동안 힘들고 눈물 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특히 이들은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는 이유로 감염병 확산 주범 취급을 받거나, 병원이 직원 관리를 잘못했다는 식으로 대하거나, 요양병원 구조 탓으로 돌려 감염 확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등에 상처를 받았다고 의견을 모았다.


D요양병원 관계자는 “격리병동 직원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밖에 있는 우리가 빨리 해결해줘야 하니까 정말 온 힘을 쏟았다. 간식이든, 식수든 다 해결해 줬다. 원장님한테도 빨리 해달라고 재촉도 하고, 같이 울 때도 많았다”며 “코호트 격리 병원들은 아우성치는데 방역당국은 현장에 뭐가 필요한지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 같지 않았다. 2015년 메르스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감염병은 또 발생할 텐데”라고 한탄했다.

F요양병원 관계자는 “요양병원에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방역당국이 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어떻게 환자 전파를 줄일까에 초점을 맞춰서 사태수습 방법을 지도해주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매우 아쉬웠다”며 “사실 요양병원은 집단감염이라는 재난의 피해자다. 그런데 가해자인 것처럼 자꾸 몰아간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또 병원이 입은 손실은 큰데 보상 지급은 적고 느리다고 지적한다.

I요양병원 관계자는 “확진자 발생하고 환자가 엄청 빠졌다. 코호트 격리하면서 소문도 이상하게 나고, 타격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런 것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제도 개선하려면?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간병제도 개선, 감염관리 수가 현실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더해 요양병원협회도 ▲다인실 구조 개선을 위한 상급병실로 보험급여화 ▲일당정액수가 제도 개선 ▲격리실 입원료 체감제 개선 ▲코로나19 야간간호료 수가 인정 등을 제시했다.


협회는 “간병이 급여화가 되면 인력 및 관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환자 대 간병인의 적정 기준이 생기며, 하루 24시간 전일 근무가 아닌 2교대나 3교대가 되어 과중한 업무를 피할 수 있다”며 “그리고 병원 소속 정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고 직접 교육을 할 수 있는 등 관리·감독도 가능해져 간병의 질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협회는 “감염에 취약한 요양병원의 다인실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수가 감산 등의 규제책에서 벗어나 4~5인실을 시작으로 상급병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선순환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요양병원 집중치료실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협회는 “감염병전담요양병원 입원 대상도 개선해야 한다. 요양병원 환자는 대부분 복합 만성질환을 가진 고령자로, 코로나19 확진이 되면 중증환자가 된다고 봐야 한다. 요양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중증환자를 모두 거점 요양병원으로 전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거점요양병원에서 경증환자만 치료하더라도 중증으로 악화하면 상급병원으로 전원해야 하지만, 코로나 거점병원이어서 전원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