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드불패’라는 말이 있다. 소위 의학드라마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방송가의 말이다. 물론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가 양방 외과 전문의여야 한다. 어쨌든 왜 양방 외과 전문의가 나오는 드라마는 성공할 수밖에 없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외과수술을 요하는 극적인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양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 전공의라는 직함으로 쉽게 젊은 주인공을 투입할 수도 있고, 그 젊은 주인공들이 연애하는 과정을 만들어내기도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시청자가 드라마에서 바라는 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병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다. 바로 시청자들의 삶과 현실적으로 관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벌 드라마나 기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자녀를 둔 부모나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내 자식이, 혹은 내가 미래에 의사가 되어 경험해봄직한 일들로 다가오기도 하고, 내가 환자가 되어 실제로 저런 의사 선생님들을 만날 수도 있다. 즉 나와 무관하지 않는 이야기로, 정말 현실적으로 저런 일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양의사의 모습은 정말 저 드라마 속 모습과 같을까?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료 현장에는 드라마와 같은 모습의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선량하고 평범한 개인의 윤리와 그 개인이 모인 집단의 윤리의식 수준이 서로 다르듯 환자를 위하는 양의사들 개개인이 양의사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구축될 때는 우리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최근의 몇 가지 모습만 봐도 극명히 알 수 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리베이트 관련 법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리베이트 관련 처벌 기준을 2년에서 3년으로 상향하는 법안에 대해 양방 의료계는 자신들을 범죄자로 보는 것이냐며 극렬히 반대했다.
법으로 금지된 리베이트를 안 받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베이트를 받든 안 받든 처벌이 강화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개개인과는 달리 집단으로서 양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의사 단체로서의 당연한 행동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양방 의료계는 이익단체 수준을 넘어 누구라도 양의사의 이익이나 권한을 침해하려 하는 집단이나 기관에 대해 비정상적인 공격적 행태를 취해왔다.
이는 단순히 경쟁 직능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의사나 기타 다른 의료인 단체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의료계 문제를 지적한 국회의원들에 대해 각종 불이익을 추동하고, 국민에게 합리적이고 이롭더라도 양의사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법원이나 국가 기관에 대해서는 의료라는 전문적인 직능을 비전문가가 뭘 아냐고 항의하며 각종 민원 등으로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면 대부분 양방 의료계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양방 의료계의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전방위적 압박이 이루어지면 웬만한 사람들은 국민을 위한 소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진다. 국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TV 속 양의사들의 멋진 모습이 현실에서도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 속 집단으로서의 양의사들은 그들과 다르다. 유령수술을 막기 위한 설명의무법과 의료인 명찰 패용까지 반대하고 있는 양방 의료계다.
그렇다고 이를 모두 양방 의료계의 잘못이라고 결론지으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양방 의료계를 키워낸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행정, 그리고 그 중심축에 있는 보건복지부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분명 존재했다. 광복 이후 열악한 의료시스템을 단기간에 키워내고 구축하기 위해서는 양의사들에게 과도한 특혜와 독점적 권한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 양적 팽창이 아닌 질적 성장이 필요한 지금의 대한민국 의료에는 전문가라는 이름의 양의사보다 국민의 관점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관점보다 양방 의료계의 목소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인상을 준다. 모든 보건의료 정책 사안이 양방 의료계가 반대하면 직능간 갈등 사안으로 전락하여 진행되지 않는다.
최근 이루어지는 영유아 건강검진 거부 사태도 마찬가지다. 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영유아 건강검진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양방 병의원이 현재 전국적으로 800군데가 넘는다.
영유아 검진은 정밀검사가 필요한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한 기본적인 검사다. 주로 설문으로 이루어지며 그 내용조차 소아과를 배운 의료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영유아 검진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양의사에게만 있다 보니 양의사들이 이를 거부하면 해결방안이 없는 것이다. 양의사들 역시 본인들만 할 수 있으니 아이의 건강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싸움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양의사에게만 주어진 과도한 독점적 권한과 의무를 사안에 따라 다른 의료인에게 동등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수가문제로 양의사들이 최근 거부하거나 보이콧 운운한 노인 독감 예방접종이나 영유아 검진 같은 사안들은 실질적으로 양의사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관례적으로 보건복지부가 그렇게 정하고 그렇게 생각해 왔을 뿐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계속해서 양방 중심적 사고를 하고, 양방 의료계는 ‘천상천하 양방독존’만을 외친다면 결국 대한민국 의료는 지금의 수준에서 단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미 의료를 보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시선은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보수적으로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법부마저도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이라면 양의사가 독점적으로 해오던 의료기기 사용이나 시술들을 같은 의료인인 치과의사나 한의사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바뀌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양방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보건복지부와 아직도 우리만이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양방 의료계다.
이제는 이 정체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