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한국 제약산업의 역사 중 2015년과 2016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는 그동안 끊임없는 R&D 투자와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신약도 글로벌신약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고 올해는 신약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신약 개발 어려움의 교훈을 얻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다국적 빅파마들은 어떻게 40억달러 규모의 라이센싱 계약을 진행하고 이미 계약금을 투자한 약물을 반환결정을 하는 것일까?
IT 분야나 다른 제조산업과 달리 의약품은 최종 제품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중간단계를 건너뛰고는 허가 받을 수 없다. 즉 동물실험에서 독성이나 유효성을 확인하고 건강한 성인에서 임상 1상을 마친 뒤에는 환자에게 투여하여 적절한 용법용량을 확인하고 대규모 환자에게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2상, 3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전주기 신약 개발과정에서 제약회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의 최종 성공률을 0.01% 라고 한다. 즉 만분의 일인데 ‘만의 하나’ 라는 말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확률을 놓고 ‘go’ 할지 ’not go’할지 심각하게 고민이 될 것이다. 더구나 그 선택에 전 재산을 걸어야 한다면 만분의 일이라는 확률에 확신을 갖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약회사들은 낮은 확률이라는 배경 외에도 개발하는 물질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평가하고 아울러 경쟁회사들의 개발 속도도 고려하여야 한다. 환자들의 치료 패턴도 분석하여야 하며 약가와 마케팅 요인까지 모두 고려한 결정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제품이 실패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화이자가 인슐린 주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28억달러의 개발비용을 인슐린 흡입제를 시판하였으나 환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해 실패한 경우는 의약품 시판 후 결정이라 큰 손해를 입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제약회사들은 매 단계 신중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이유는 의약품의 개발 특성상 초기 개발단계보다 사람에게 투여하는 후기 임상 개발단계로 들어가면 R&D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임상시험 중에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였다면, 수천억 원 이상의 개발비용을 투자하였는데 경쟁회사가 먼저 발매하였다면, 개발 시간이 너무 지연되어 더 최신의 치료 기전을 가진 약물이 나왔다면 회사들은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약물 개발의 진행이나 중단이냐를 결정하여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임상 단계까지 진행한 약물은 안전성의 문제가 아닌 유효성의 문제로 중단결정이 될 경우 다른 질환에 효능을 가져 다시 개발을 하여 더 우수한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신약 개발 중의 임상실패는 개발회사에 비용적 손해를 입히지만 더 우수한 의약품 개발을 위한 경험과 다른 치료제 개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제약현장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지금 키워야 할 능력은 바로 이러한 의사결정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이제 겨우 27개의 국산 신약을 개발하였고 기술수출이나 물질의 라이센스 아웃의 경험이 거대 다국적사에 비해 부족하다. 라이센싱 파트너의 의사결정을 보며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배워야할 때이다. 10여년의 R&D 투자를 감내하여 드디어 신약을 발매하여 글로벌로 진출하고자 하는 제약회사들의 계약성사나 중단에 정부나 민간은 일비일희 하지 않고 긴호흡으로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2015년 현재 전세계 신물질의약품 파이프라인은 약 7,200여개라고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제약협회에서 회원사 및 일부 바이오벤처를 대상으로 조사한 파이프라인은 약 800여개였다. 적지 않은 수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블록버스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경험도 쌓여가고 R&D 투자 비용도 증가하며 무엇보다도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고취되어 있다. 정부와 민간, 학계에서는 더 많은 지원과 격려를 해주어야 할 때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