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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②]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의 실체

송명제 대한의사협회 대외협력이사

지난 2019년 정기국회에서 우리 의료계는 큰 홍역을 치른 기억이 있다. 보험업계는 ‘실손 보험 청구 간소화법’ 이라 부르고 우리 의료계는 ‘실손 보험 청구 대행법’ 혹은 ‘실손 보험 지금거절 꼼수법’ 이라 불렀던 보험업법 개정 추진 때문이다. 물론 당시 의료계와 시민단체, 국민들의 저항으로 해당 개정안은 결국 통과되지 않고 폐기되었지만,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현재 해당 개정안은 다시 한 번 여의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가을 큰 홍역을 치르고도 또 다시 개정안이 발의되고 추진되고 있다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해당 개정안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이 개정안은 민간보험사와 계약자, 즉 소비자의 관계에 아무 관련이 없는 의료기관을 개입시킨다는 것으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다. 실손 의료보험은 미래 의료비 지출을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보험계약자)이 민간보험사(보험자)가 판매하는 상품에 사적으로 가입, 계약하는 민간보험으로 제 3자인 의료기관은 민간보험과 그 어떠한 구속이나 법률적 관계가 없다. 하지만 동 법안은 의료기관을 개입시킴으로써 상기 관계 사이에 특정한 역할을 주문하는 것인데 그 발상이 맞는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보험계약자가 진료를 받은 후 실손 의료보험 계약 사항에 따라 민간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경우, 자료 수집 및 근거 확보 의무는 보험사에게 있으며 이 과정에서 보험계약자가 불편을 겪는다면 당연히 보험금 청구 절차의 개선의무도 보험사에게 있는 것인데, 그 해결방안이랍시고 소비자 편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의료기관에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에는 보험금 지급을 위한 업무수행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보험사가 고객의 서비스이용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으로 인해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하는 의료기관이 행정력 부담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논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 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의료를 행하는 곳이지 행정을 하는 곳이 아니다.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행정인력을 따로 두지 않고 진료하는 의사가 병행하는 곳이 많은데 의료기관에 일방적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신설하여 행정업무를 부과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더불어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편의를 빙자하여 유독 의료기관에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넷째, 해당 개정안은 향후 실손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동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환자의 편익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실손 보험사의 수익 보전이 주 목적일 수밖에 없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손 보험사에서 진료에 대한 세부 내역서를 요청할 경우의료기관은 민감한 개인의 진료 기록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가입자의 진료정보 축적을 통해 향후 보험금 지급 및 갱신을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 실손 보험사들은 가입한 소비자들에게 최대한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기 위해 힘써왔는데, 해당 개정안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충실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3일 보험업계는 올해 상반기 실손 보험 위험손해율이 13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보험금을 더 쉽게 청구할 수 있도록 실손 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천명하며 해당 개정안의 통과를 주장하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보험사의 입장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것으로, 청구간소화 법안을 통해 오히려 손해율을 낮추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다섯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개입의 부당성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진료비 심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공적기관으로, 그 운영비용은 건강보험료에서 충당된다. 하지만 공적기관인 심평원을 민간보험사가 운영하는 실손 의료보험 청구과정에 개입시키는 것은 심평원의 기본적인 설립 목적 및 역할 등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건강보험법 위임 범위의 위반 소지도 있다. 

여섯째,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다. 환자의 진료기록은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같은 기본적인 정보보다 훨씬 민감하고 예민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현재는 환자가 본인의 정보가 담긴 서류를 의료기관으로부터 직접 수령한 뒤, 보험사에 제출할지 여부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과 같이 환자 본인의 결정을 거치지 않고 관련 서류가 보험사에 바로 전송된다면 환자 스스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보험사로 넘어가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바, 이는 국민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나아가 그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 중계기관, 보험회사 간 그 책임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의무만을 수행하게 하고, 그에 따른 위험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일곱째,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이 조장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진료 최일선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 치료에 매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의사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의료계 전체의 문제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정안과 같이 환자의 정보를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전송하도록 하고, 보험사가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해 환자의 진료정보, 진료비 청구 내역 등을 축적한 뒤 보험의 가입이나 갱신, 지급 거절 등의 근거로 활용하거나 상기와 같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환자는 최초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한 의사와 의료기관을 비난할 가능성이 크며, 이러한 상황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다면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가 시작하자 마자 발의된 실손 보험 청구 대행 및 지급 거절법에 대해 몇 자 적어보았다. 지난 가을 의료계는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국민의 기본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많은 동 개정안에 대해 잘 대처했다. 필자는 민간보험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인식한 아주 어렸을 적부터 민간보험사가 소비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더 많이 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은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현재 보험업계는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가 소비자들의 편익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데, 정말로 해당 개정안이 순수하게 소비자 편익을 위하고 소비자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라면 보험업계가 그렇게 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보험사가 영리활동을 하는 기업이라는 점만 생각해보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물음이다. 의료계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하나가 되어 국민들의 건강권,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분명한 동 개정안에 대한 대처를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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