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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태움으로 잃은 딸, 흐느끼는 유가족…정부 · 병원은 방관만?

병원이 인권 침해를 방조하는 이유는 바로 병원이 범인이기 때문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 더 이상 간호사를 죽이지 말라!"

故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故 박 간호사 대책위) ·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이하 故 서 간호사 대책위)가 16일 오후 3시 청계광장 남측 프리미어플레이스 빌딩 앞에서 '故 박선욱 간호사 1주기 · 故 서지윤 간호사 추모 집회'를 열어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는 지난해 2월 15일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를 의미하는 간호사 내 태움 문화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아산병원 故 박선욱 신입간호사(27) 사건과 금년 1월 5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비극적인 선택을 한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29) 사건의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故 박 간호사 대책위 엄지 간호사는 태움이 간호계뿐 아니라 全 의료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국민 건강을 도외시하는 정부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병원, 본인 살길만 찾는 상급자와 모든 이해관계에 동조하는 대한간호협회로 인해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엄지 간호사는 "간호사는 24시간 환자 곁에서 일하며, 잠깐의 사고 · 실수로 타인의 몸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된 실습 ·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병원에 입사하며, 선임이 후임을 1:1로 가르치는 도제식 수련에서 네다섯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하는 병원 구조 탓에 사실상 방치된다."며, "병원 내 죽음의 컨베이어벨트는 잔인하게 돌아간다.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은 사지가 찢기고 온몸이 조각나며 활활 타서 재가 된다. 응급상황이 닥칠 때의 압박감, 질책 · 좌절감, 살인적인 연장 근무, 늘 새롭고 창의적인 병원 갑질 등은 3 · 5 · 10 · 20년차 모두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근무표 때문에 타고 △할 줄 몰라서 타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느라 타고 △소리 지르는 의사 때문에 타고 △상급자의 폭언 · 폭력 때문에 타고 △강제 로테이션 때문에 탄다고 했다. 

엄지 간호사는 "병원이 인권 침해를 방조하는 이유는 바로 병원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직하는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덜 숙련된 하급자가 나가는 게 이득이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유지하며 적은 인력으로 본전을 뽑기 때문이다."라면서, "故 박선욱 · 서지윤 간호사 죽음 뒤에는 △의료 질 · 국민 건강은 내팽개친 정부 △싼값으로 공장을 돌리며 모래성을 쌓는 병원 △본인 살길만 찾는 윗사람들 △모든 이해관계에 동조하는 대한간호협회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故 박선욱 간호사의 이모인 김윤주 씨는 병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조속히 요구하며, 인력 부족 해소, 충분한 신입 간호사 교육 시스템, 적절한 휴식이 보장된 노동, 간호사 한 명이 맡는 적절한 환자 수 등이 지켜진다면 태움이라는 악습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故 박 간호사의 어머니가 작성한 글을 대독했다. 故 박 간호사의 어머니는 "내 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 간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한 딸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딸이 너무나도 그립다. 내 곁에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던 내 딸이 너무나 보고 싶다. 내 딸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몰랐던 나 자신이 정말 견디기 힘들다."며, "너무나 사랑스럽고 꿈 많던 내 딸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싶다.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선욱이가 아프지 않을 거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가 너무나 미안하다."라는 글을 인터넷상에 게시한 바 있다.  

김 씨는 "언니가 원하는 한 가지는 병원의 공식적인 사과다."라면서, "저 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보며 슬퍼할지도 모를 내 사랑하는 조카가 떠올라서 너무나 힘이 든다. 수많은 간호사가 힘든 노동 현장에 내몰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 어른들은 부끄러울 따름이다. 6개월 만에 13kg의 체중이 빠지는 고된 근무와 매번 거르는 식사가 우리나라 간호사의 현실을 방증한다. 인력 부족 문제와 충분한 신입간호사 교육 시스템, 적절한 휴식이 보장된 노동 시간, 간호사 한 명이 맡는 적절한 환자 수 등이 지켜진다면 태움이라는 악습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개선된 환경에서 선욱이의 선배 · 동료 · 후배가 근무할 날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故 서지윤 간호사의 어머니는 딸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 모두 병원에서 떠나야 하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자 및 사건과 관계된 모든 이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흐느꼈다. 

어머니는 "딸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맑고 예쁜 내 딸을 누가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2013년 3월 서울의료원에 입사하여 병동 간호사로 6년을 근무하면서 항상 밝고 웃음이 많았던 내 딸이었다. 병동 환자 한 명이 자기를 천사간호사라고 불러준다며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라면서, "딸은 로테이션 때 간호행정부서 권유를 받고 많은 고민을 했다. 마침 대학원 준비 중이어서 공부할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아 결국 간호행정부로 이동하게 됐는데 실상은 오버타임이 많고  괴롭힘도 상당했다. 앞에 세워두고 앞담화 · 뒷담화를 하고 있어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딸이 내게 카톡 ·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딸이 열심히 하려고 아침 7시에 출근했는데 상사는 왜 일찍 왔냐며 꾸짖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행정업무가 어려워서 잘해보려고 일찍 나간 것을 격려는 해주지 못할망정 차가운 시선으로 혼을 냈다. 완벽주의인 내 딸이 얼마나 큰 수치심이 들었을지 가슴이 찢어진다."며, "병동간호사를 어떻게 행정부서로 발령낼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일 잘하고 똑똑하며 인사성도 바른 간호사라서 추천했다고 했다. 12월 29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딸이 '간호사 태움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했다. 고작 출근 12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큰딸 · 아들이 병원에 들러 지윤이 자리를 찾았으나 부서에는 책상조차 없었다고 했다. 화가 난 아들이 '당신들이 우리 누나를 죽였다'고 소리쳐도 그 누구도 한마디 말도 없이 서 있었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건강과대안 이상윤 책임연구원은 "생명을 살려야 하는 병원에서 생명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만든 자가 누굴까. 8시간만 일하면 된다며 8시간분의 임금을 주고, 10시간 이상 일하게 하는 자가 누굴까. 밤에도 쉴 수 없게 일거리를 만들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자가 누굴까. 화장실을 못 가고 밥 먹을 새도 없이 일하게 만든 자는 누굴까. 행정 업무 · 컴퓨터 업무 등 새로운 업무를 창의적으로 만들어서 환자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온갖 업무를 다하게 만든 자가 누굴까.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컨퍼런스를 만들어 못살게 구는 자가 과연 누굴까."라고 반문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돈을 버는 주체인 병원이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병원은 우리를 괴롭혀서 돈을 벌려고 하며, 환자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힘들어서 인력을 늘려달라고 병원에 요구하면 병원은 돈이 없다고 호소한다. 몇억을 주고 들여오는 비싼 의료기기는 과연 무슨 돈으로 샀을까. 그런 돈은 있으면서 왜 환자 서비스에 직결되는 인력에는 투자하지 않는지?"라면서, "돈벌이에 혈안이 된 병원들의 체계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간호사 노동 조건은 나아지지 않고, 환자도 안전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돈벌이하는 병원 행태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를 쥐어짜서 돈벌이를 하는 병원을 조속히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을 대한간호협회에 요구했다.

이 연구원은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이유에는 대한간호협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간호사는 적은 수의 조직이 아니다. 또, 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지? 대한간호협회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단체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지?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서 대한간호협회에 요구해야 한다."며, "더 이상 환자 · 노동자가 죽지 않는 병원을 같이 만들어나가자."고 선동했다.

이외 △故 박선욱 간호사 산재 대리인 권동희 노무사의 산재 신청 경과 △故 서 간호사 대책위 변희영 공동대표의 발언 △간호대생 · 간호사의 자유 발언 △입사를 앞둔 예비간호사 익명 메시지 대독 △보건의료학생 매듭 유경 씨 · 대한간호대학 학생협회 최혜민 부회장의 자유 발언 △결의문 낭독 등이 진행됐다. 

이날 발표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다.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 죽음이 들려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서울의료원에서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을 들어야 했다. 병동에서 6년 이상 일했고 심지어 서울시가 관리하는 공공병원에서 일한 간호사의 죽음은 현 병원 구조 속에서는 그 어떤 간호사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태움이 문제라고 한다. 맞다. 태움이 문제다. 그런데 태움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있는가? 인력이 부족해서 간호사가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기본 인권을 박탈당하는 것을 병원은 인건비 절감이라고 부른다. 권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간호사가 희생당하는 사건이 발생해도 진실을 은폐하고 입단속 하는 것을 병원은 이미지 관리라고 부른다.

병원이 사람을 연료로 태우고 있다. 우리는 계속 요구해왔다. 간호사가 줄줄이 사직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병원을 떠나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난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약속하라고. 그러나 병원 ·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내가 떠나간 자리를 또 다른 간호사가 채우고, 내가 겪은 고통이 누군가에게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열악한 간호노동 환경 때문에 매 순간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것도 보고 있다. 병원은 사람을, 간호사를, 환자를 일회용 연료로 태워서 운영하고 있다. 병원이 사람을 연료로 태워서 돈을 벌고 있다.

더 이상 간호사를 죽이지 말라! 사실 아직도 두렵다.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끊임없이 명령받아 왔다. 그러나 나와 동료, 환자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기에 조금씩 용기를 내려고 한다. 더 이상 간호사를 죽이지 말라.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겠다. 故 박선욱 간호사 · 故 서지윤 간호사 죽음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인권을 지키고 병원이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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