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두 개의 신장은 어제 먹고 마신 탁한 국물들을 밤새도록 애써 걸러내었다. 짙은 호박 빛깔의 고농축 오줌은 요관을 통해 방광까지 흘려 내려갔다. 덜 깬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신을 집중하자 방광 근육이 수축하면서 밤새 고였던 소변은 줄기차게 떨어져 내렸다. 열 손실을 만회하고자 온 몸이 한바탕 부르르 떨렸다. 어제 요관을 잘라내고 소장으로 갈아 끼우는 수술을 했다. 암은 이겨내었으나 치료 과정에서 요관이 막혀 힘들어 했던 환자였다. 오래 걸렸던 수술 탓인지 허리가 쑤셨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컴퓨터 유튜브 창에 열어 놓은 7080 음악만으로도 흡족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노랫말 속에 반복되는 J를 듣다 보니 요관 속을 지나가는 오줌의 흐름이 떠올랐다. 사람 몸은 온갖 복잡한 구멍과 관들의 집합체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몸 밖에서 이 구멍이나 관에 접근하여 막힌 곳을 뚫고 새는 곳은 막으려는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해 왔다. 요관이 막혔을 때 방광내시경을 통해 신장까지 삽입하는 요관 스텐트는 양쪽 끝이 J 모양으로 구부러져 '더블 제이' 간단히 그냥 'J' 라 불린다. 삽입된 J를 통해 소변은 다시 흐를 수 있다.
2016-12-13 17:54맑은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설레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어떤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볼까? 진료 대기실에 들어서니 교복을 입은 아이가 가방을 둘러멘 채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자리 어머니의 얼굴엔 오만가지 걱정이 서려 있다. 시험이 코앞인데 힘들더라고 좀 참고 묵묵히 달려주면 좋으련만. 전력으로 질주해도 경쟁에서 이길까 말까 한 이때, 왜 또 아프다고 하냐는 표정이다. “저 괜찮을까요?”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묻는다. 공부할 때가 되면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아이는 힘든 낯빛이 영력하다. 어머니는 ‘더는 듣고 싶지 않은 언사를 늘어놓는다’면서 아픈 자식을 원망한다. 책상엔 잠시도 앉아 있지 않으면서 머리 아프다고 하다가도, 놀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짱한 얼굴로 기분이 좋아지니 꾀병이 분명하지 않느냐며 아이에게 눈을 흘겨댄다. 배불리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고생도 끝이 날 것인데, 그것이 무에 그리 힘들어서 저리도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르겠단다. 진찰대 위에 누워 있는 아이가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 속 레퍼토리를 다 내어 보이는 어머니, 하소연하다
2016-10-17 05:50민준의 나이가 벌써 열아홉 살, 청년이 되었다. 출생 25일 만에 보송보송한 우윳빛 피부로 평화롭게 누워 첫 진찰을 받을 때가 생생한데 세월은 공평한 것인가. 그날... 그의 신체 계측 백분위 수치는 표준이었다. 그러나 아기 포대기를 홀랑 벗기고 진찰대에 옮길 때 내 손으로 느껴지는 그의 중량감은, 직감적으로 뇌신경 계통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척주와 사지의 근무력(筋無力)과 경직성이 뇌성마비 중증이었다. 내 표정만 살피던 젊은 부부는 마치 공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상태를 묻는 아기 아빠는 거의 울상이었다. 신생아 운동반사 반응 등을 정밀 진찰하면서, 난 이 결과가 젊은 부부에게 줄 수 있는 충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하고 내심 걱정을 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흔히 있는 경우인 것처럼 사무적으로 설명했다. “운동신경에 장애가 있으니 종합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군요.” 집에서도 갓난아이의 행동과 반응에 뭔가 이상해 했던 부부 역시 낙담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때부터 민준의 성장은 내 인생의 고리가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민준이 예방주사 맞으러 왔습니다.” 늘 밝은 미소로 민준이 아버지가 진찰
2016-09-19 06:02정신과 환자의 증상은 미묘하고 신기하다. 필자의 군의관 시절, 한 사병이 군대 훈련 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야전병원으로 실려 왔다. 그런데 여러 가지 통증 자극이나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어, 현장에 있던 다수의 군의관들은 환자의 뇌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응급 헬기로 수송해 환자를 통합병원으로 보내자 했다. 정신과 군의관인 필자가 보기엔 환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필자는 다른 군의관들에게 후송하기 전에 정신과적 진찰을 하겠노라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를 청했다. 둘만 남은 상황에서 필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환자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네가 힘든 상황에 있는 거 다 이해해. 근데 지금 다른 군의관들이 네가 어떤 자극에도 감각반응이 없어서 뇌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대로 통합병원 가서 뇌수술을 받으면 너 수술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할 수 있어. 지금 일어나 앉으면 야전병원에서 네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쉬게 해줄게!” 필자의 속삭임 후 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고, 다행이 후송되지 않고 정신과에 입원하게 됐다. 그런데 입원 후 말을 못하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꼭 ‘꾀병’ 같았다.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갑
2016-08-26 10:11“원장님! 이번에는 정말 우리 아이 코 좀 시원하게 빼주셔야 해요!” 모처럼 진료 받으러 온 아이 엄마가 불만스런 말투로 부탁을 한다. 콧물을 잘 빼주지 않아 내게 자주 오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동안 나는 콧물을 빼달라고 하면 빼주지 않거나 건성으로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불만이 있는 보호자들은 다른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에서는 매번 열심히 빼준다는 볼멘소리까지 듣곤 했다. 그 때문에 환자들이 떨어들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아직까지는 이 소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의사라면 의과대학 시절 배워서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눈물과 콧물 속에는 아주 유용한 성분이 들어 있다. '라이소자임'이라는 성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 효소는 인체가 분비하는 소중한 천연 항생 물질이다. 코에 염증이 생기면 점막의 술잔세포에서 분비물을 많이 생산하여 콧물을 많이 흘리게 된다. 콧물 속에는 라이소자임 외에도 염증으로 상처 난 비강 내의 호흡기 점막을 보호하고 재생을 돕기 위한 기능 물질까지 있다. 이번에는 내가 반격할 차례다. 위에 있는 내용을 설명한 다음, 컴퓨터에서 라이소자임을 직접 검색하여 보호자와 같이 읽는다. 그리고 내가 콧물을 뽑지 않고 치료하는 것과, 이비인후과 등에서 콧물을
2016-07-18 11:42“대체 왜 주사를 안 놔 주는 거예요?” 진료를 마친 환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염증이 그리 심하지 않으니까 소독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다시 설명해줘도 막무가내로 주사를 원하며 투덜투덜 혼잣말을 한다. “참 이상한 의사도 다 있네. 주사를 놔달라는데 왜 환자 말을 안 듣지?” 비단 주사뿐이 아니다. 진료실에는 약을 더 많이 지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도 많다. “항생제를 지어 달라고요.” 라든가 “왜 약을 삼 일치만 주죠? 다른 병원에선 일 주일치도 처방해주던데…….” 라며 나의 진료에 반기를 드는 환자들을 만나면 진땀을 빼곤 한다. 물론 약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는 긍정적인 예도 많지만 약물이 과용되거나 남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요즘은 의료보험 덕택으로 약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단 점이 약물 남용의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약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건 실제로 무분별한 약물 복용으로 무서운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신혼 초에 미국에 계시던 시부모님이 신혼집에 방문한다는 날이 다가오던 때였다. 새색시이자 맏며느리로서 나는 침상이며, 식단이며, 여러 가지를 철저히 준비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어른들 눈 밖에 나거나 흠이라도 잡히면 어쩌나 걱
2016-06-22 13:45노년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서구형 암인 전립선암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5번째 남성암으로 자리잡고 있고, 암이 늘어나는 속도는 여성에서 매우 빨리 늘어나고 있는 갑상선암 다음이다. 특히 이러한 암들은 본인이 자각하는 증상이 없어도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어 병원에 내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진료실에 있다 보면 이런 환자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음을 느끼게 된다. 60세 김모 씨는 정년을 앞두고 직장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비뇨기과 외래로 오셨다. 젊어서 시작한 직장생활로 바쁘게 살아오다, 오랜만에 시행한 검사에서 발견된 이상은 PSA 수치 상승… 전립선암이나 비대증에서 올라갈 수 있는 수치인데 환자 본인이 느끼는 배뇨증상과는 관계 없이 관찰되기도 한다. “저는 소변볼 때 불편한 느낌도 전혀 없어요… 회사에서 건강검진 한다고 피검사를 한 뒤에 여기에 가 보라더군요…” “PSA는 전립선암이 의심될 때 올라가는 수치인데 본인의 증상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답니다. 조직검사를 해 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으니 날짜를 잡고 가세요…” 그제서야 암이란 말에 잔뜩 겁을 먹고 조직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검사결과는 전립선암
2016-04-01 06:09당뇨병도 완치가 가능한가? 당뇨병은 기원전 1500년 전에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에 ‘소갈’, 조선시대에는 ‘감뇨’ 등 당뇨병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렇게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특징적으로 소변을 많이 보고 소변이 달았다.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나 인슐린저항성에 이상이 생겨 혈당이 지속적으로 증가되어 여러 가지 혈관합병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당뇨병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여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질환이며, 치료도 환자에 따라 개별화해야 한다. 당뇨병은 대부분 완치할 수 없는 질환이나, 일부 당뇨병 환자에서는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식사 및 운동요법만으로도 평생 관리할 수 있다. 의사의 관심은 환자를 행복하게 한다! 환자를 처음 볼 때 의사는 환자의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단할 때나 환자의 병명이 확인된 후에도 어떤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비용 효과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 하나! 필자가 대학에 근무할 때 일이다. 시골 개인병원에서 당뇨 조절이 잘 안되어 리퍼된 45세 여성 환자였다. 당시 20년간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환자는
2016-03-11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