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환자의 증상은 미묘하고 신기하다.
필자의 군의관 시절, 한 사병이 군대 훈련 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야전병원으로 실려 왔다. 그런데 여러 가지 통증 자극이나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어, 현장에 있던 다수의 군의관들은 환자의 뇌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응급 헬기로 수송해 환자를 통합병원으로 보내자 했다.
정신과 군의관인 필자가 보기엔 환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필자는 다른 군의관들에게 후송하기 전에 정신과적 진찰을 하겠노라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를 청했다. 둘만 남은 상황에서 필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환자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네가 힘든 상황에 있는 거 다 이해해. 근데 지금 다른 군의관들이 네가 어떤 자극에도 감각반응이 없어서 뇌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대로 통합병원 가서 뇌수술을 받으면 너 수술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할 수 있어. 지금 일어나 앉으면 야전병원에서 네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쉬게 해줄게!”
필자의 속삭임 후 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고, 다행이 후송되지 않고 정신과에 입원하게 됐다. 그런데 입원 후 말을 못하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꼭 ‘꾀병’ 같았다.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갑자기 놀라게 하거나, 바늘로 찌르거나, 심지어 담뱃불을 몰래 뒷목에 대도 본능적인 “앗! 뜨거워!”하는 반응조차 없었다.
필자는 할 수 없이 환자에게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입원해 쉬라고 했고, 2~3개월 후 환자는 갑자기 말문이 트여 말을 하게 됐다. 필자는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칭찬(?)을 하고 계속 쉬라고 했지만 얼마 후 환자는 귀대하겠노라 했고, 귀대 후 군대 복무를 잘 마치고 제대한 사례가 있었다.
그 후 필자는 대학병원에서 40년간 근무 후 정년을 맞았고, 현재는 개원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 관심을 갖고 진료를 하고 있다. 필자가 그동안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질환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환자에게 ‘증상’은 있는데,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나오지 않는 병! 이 병의 진단명이 바로 ‘신체화 장애’이다.
필자가 오랜 기간 연구한 결과로는, 이 병은 자율신경계 기능 변화에 의한 증상이란 것이다. 이런 증상들은 꿈-수면의 불균형에 의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꿈-수면의 이상은 불면이나 우울증에서 주로 나타난다. 따라서 ‘신체화 장애’의 증상은 항우울제로 꿈-수면을 조정해주는 치료로서 치료가 가능하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아형이 있고 증상의 주기성, 원인 등에 따라 약제에 대한 반응이 달라 일괄적으로 방법을 제시하기가 곤란하지만 대부분의 항우울제에 잘 반응한다. 훗날 정신의학이 발달되면 피 한 방울로 진단과 치료제가 제시되는 날이 올 테지만, 그때까지는 환자의 증상과 유전적 배경, 성장 과정 등 정신의학적 면담으로 항우울제 치료를 해나가야 할 것 같다.
◈ 정희연 원장은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병원 정신과)로 재직, 제12·13대 천안병원장(2003~2007년)을 역임했고, 2010년 제17대 순천향대학교중앙의료원 의료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