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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물에 빠진 사람 보따리 챙겨주기…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김세웅 교수

노년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서구형 암인 전립선암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5번째 남성암으로 자리잡고 있고, 암이 늘어나는 속도는 여성에서 매우 빨리 늘어나고 있는 갑상선암 다음이다.


특히 이러한 암들은 본인이 자각하는 증상이 없어도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어 병원에 내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진료실에 있다 보면 이런 환자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음을 느끼게 된다.


60세 김모 씨는 정년을 앞두고 직장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비뇨기과 외래로 오셨다. 젊어서 시작한 직장생활로 바쁘게 살아오다, 오랜만에 시행한 검사에서 발견된 이상은 PSA 수치 상승… 전립선암이나 비대증에서 올라갈 수 있는 수치인데 환자 본인이 느끼는 배뇨증상과는 관계 없이 관찰되기도 한다.


“저는 소변볼 때 불편한 느낌도 전혀 없어요… 회사에서 건강검진 한다고 피검사를 한 뒤에 여기에 가 보라더군요…”


“PSA는 전립선암이 의심될 때 올라가는 수치인데 본인의 증상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답니다. 조직검사를 해 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으니 날짜를 잡고 가세요…”


그제서야 암이란 말에 잔뜩 겁을 먹고 조직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검사결과는 전립선암으로 나왔다.


크게 충격을 받은 김 씨에게 암이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초기 상태이니 수술만 받으신다면 완치될 수 있다고 안심시켜 드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아무 증상도 없이 갑자기 내려진 암 선고라 그 충격은 더욱 큰 것 같았다.


“아직 자식들 결혼도 못 시켰는데 암이라니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다른 검사를 더 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직은 수술하시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검사를 진행하시지요…”


예상했던 대로 암은 초기 단계여서 김 씨는 몇 주 후 수술을 받게 되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김 씨에게 수술은 비교적 잘 진행되어 문제 없이 끝났다는 말을 전달했을 때 보았던 기쁨, 안도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술 후 회복도 빠른 편이어서 퇴원 당시에는 수술 후 일반적인 합병증인 요실금 증세 외에 다른 문제는 없어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셨다.


1주일 뒤 수술결과를 들으러 외래로 온 김 씨에게 암은 남아 있는 부분 없이 잘 제거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지내시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예상 외로 얼굴이 어둡다.


“환자분, 조직검사 결과를 보니 남아 있는 부위도 없고 깨끗하게 잘 절제되었습니다. 이제 안심하시고 사셔도 되겠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술하고부터는 아침마다 되던 발기가 통 되질 않아요… 어쩌면 좋습니까?”


전립선암 수술을 하면 전립선 주변으로 지나가는 발기에 관계된 신경들이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서 발기부전에 대한 설명을 꼭 드리고 수술을 진행하게 되는데, 수술 전이야 암에 대한 걱정, 전이에 대한 걱정하시느라 이런 설명이 제대로 귀에 들어가지 않으신 듯하다.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흔한 합병증으로, 미리 설명을 드렸다고 말씀 드렸으나 상당히 난감해 하면서,


“선생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 나이 이제 육십인데 이런 상태로 살기엔 너무 젊지 않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 살렸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긴 하지만 여기도 좀 살려주십시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합병증에 대한 치료 역시 많은 연구가 되어 있어, 약물요법부터 주사요법, 음경 보형물 수술과 같은 다양한 방법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비교적 젊은 나이의 환자에서는 효과도 좋은 편이다. 김 씨의 경우도 약물요법을 시행하고 3개월쯤 지나면서 눈에 띄게 발기부전이 호전되어서, 최근에는 ‘물에 빠진 사람도 살려주고, 보따리도 챙겨줘 고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병원을 다니고 계신다.


과거엔 암이라고 하면 의사나 환자 모두 재발을 걱정하며 근치적 절제만을 목표로 했었지만, 치료방법이 발전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암 치료 이후의 삶에 질도 챙겨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