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명 운
아라컨설팅 이사
cnvilla@naver.com
완벽한 성공전략의 태동
2003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산하인 보스턴 연방은행은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다. 美 명문 하버드大 경제학 교수인 데이빗 레임슨은 자리를 참석했던 많은 경제학자들과 사회과학연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의사를 찾았습니다. 환자를 진찰한 의사는 그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의 성공확률과 실패확률은 각각 90%와 10%로 실패확률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수술이 실패하면 환자는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를 망설입니다. ‘이 수술을 받고 당신이 살아남을 확률은 90%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수술을 받고 당신이 목숨을 잃을 확률은 10%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의사가 어떤 식으로 물어보아야 환자가 수술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아질까요?”
다소 엉뚱할 듯 여겨질 법도 했지만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소수의 일부는 ‘의사가 어떤 식으로 물어보든 수술의 성공확률과 실패확률이 각각 90%와 10%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의사가 말하는 방식이 환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리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의사가 성공확률을 언급하는가 아니면 실패확률을 언급하는가에 따라 환자의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컨퍼런스에서 도널드 콘 FRB이사는 “행동경제학이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간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던 ‘행동경제학’이 FRB의 토론주제로 선정되었던 것은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의 주류로 진입하게 됐음을 나타내는 또 한 번의 신호로 여겨졌으며 2002년 美 프린스턴大 심리학 교수인 다니엘 커너먼 교수가 이 ‘행동경제학’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래로 전통적인 주류경제학의 가정을 부정하는 내용이 공인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놀라웠으며 이제 ‘행동경제학’은 최근들어 학계에서도 연구가 가장 활발한 최신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성공전략수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
2009년 9월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환경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을 혼란의 태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예전엔 의사면허증이 곧 ‘성공예약증’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에서 접하는 많은 사례들을 봐도 병원을 개원하는 것이 바로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의료분야의 환경변화는 그나마 일반 여타 산업군에 비해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해오던 의료시장을 급하고도 거세게 흔들어 놓고 있다. 해마다 3,300여 명의 의사가 신규로 배출되고 있고 KTX와 인터넷 환경의 급속한 발전은 지역 간의 공간적,시간적인 환경의 격차를 현저하게 줄여놓음으로써 의료수요의 대형병원 집중화를 더욱 가속화 시켰으며 건국 이래 지금까지 고수되어오던 정부의 의료산업 비영리법인정책이 언제 영리법인정책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상황 등등이 그것이다.
결국 작금에 체감되는 모든 의료환경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기존 의료계도 이젠 일반산업분야처럼 CEO의 개념을 정확히 인지하고 수용해야만 성공적인 경영을 영위할 수 있다는 어쩌면 전혀 반갑지 않은 불청객 같은 새로운 노력을 경주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젠 드러내놓고 압력을 가하는 이런 작금의 의료환경 변화를 놓고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CEO의 개념을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그간의 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의사선생님으로서만 안이하게 수동적으로 고수하다가 결국 실패자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CEO원장님이 될 수 있을까?’
성공적인 병원경영을 위한 마케팅의 핵심기반 ‘행동경제학’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행동경제학’은 이제 경영과 마케팅의 관계를 숙지하고 경영의 핵심사항인 마케팅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지표가 되리라 믿는다. 사실 ‘행동경제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기존 경제학의 학문적 배경으로써 당연시 인정되어왔던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심리학적 연구방법을 재조명해서 인간의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 현대 경제학을 개념화시킨 이래로 경제학의 기본원리는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이론이었다. 요약해보자면 인간은 합리적이므로 이익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주변상황을 완벽하게 분석해 최대이익을 만들어내는 행동만을 선택하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시말해 인간을 엄청난 계산력을 가진 컴퓨터 정도로 대입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인간과 컴퓨터는 같지 않다. 특히나 인간은 컴퓨터처럼 객관적이지 못하다.
앞서 언급한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사망률이 10%인 수술을 어떻게 소개할까’의 문제도 컴퓨터와는 다른 인간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예다. 환자가 진정으로 합리적이라면 의사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가가 환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실제 의사결정과정에서는 그때그때의 기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같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서 행동경제학은 시작됐다.
행동경제학의 결정판 ‘감성마케팅’
이제 필자는 행동경제학이란 다소 생소하리만큼 느껴지는 이 학문이 작금의 혼란스런 이 시대의 한국 의료계에 던져주는 구체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만만치 않은 의료계를 헤쳐나가는 병의원 원장님들에게 행동경제학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에 대해 진지하게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공적으로 병원을 경영하고자 함에 있어 ‘행동경제학’을 통해 벤치마킹할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떤 종류의 마케팅일지라도 그 성공여부는 전략수립단계부터 인간의 비합리성을 겨냥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즉, 인간은 어떤 소비행위를 결정함에 있어 합리적인 손익계산 보다는 그 당시 기분에 의한 결정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마케팅전략은 인간의 기분을 좋게하고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조치를 중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하이테크+하이터치’ 시대라고도 한다. 아무리 기술적인 문명 산업이 발전한다 할지라도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성보다는 마음에 의해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경험하는 존재이다. 하이테크시대일수록 하이터치전략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국 이런 행동경제학적인 인간의 소비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분명하게 실현시켜주는 마케팅 기법이 감성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감성마케팅이란 단어는 더 이상 신개념의 마케팅용어가 아니다. 이미 그 학문적인 배경으로 충분히 자리매김한 행동경제학이란 용어조차 없던 훨씬 그 이전부터 감성마케팅은 존재해왔다. 수없이 많은 모래들의 반짝임 속에 파묻혀 그 존재감을 노출시킬 기회조차 갖지 못하던 사금(砂金)처럼 감성마케팅은 우리의 노력들 중에서 그저 한 부분일 뿐이었다.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객의 욕구가 날로 높아질수록 마치 유행처럼 많은 마케팅기법들이 이 분야 저 분야를 종횡무진 하다가 어느새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조용히 자취를 감추곤 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함으로써 그에 걸맞는 새로운 대처방법이 출현하고 또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리고 비록 잠시 잠깐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고 이내 사라져버린 유수한 기법이라 한 들 그 모든 시도는 결국 기업들에게 고객의 진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또 고객을 대하는 기업들의 바람직한 모습을 재정립시켜주기에 충분한, 나름대로 혁혁한 공로를 남겼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다만 이 시점에서 그래도 이제 막 경영과 마케팅이라는 힘겨운 발걸음을 시도해야하는 의료계를 두고 볼 때 필자는 이 대목에 이르러 반드시 강조해두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적어도 의료계는 일반산업군과는 그 경제행위 대상을 두고 진행하고자 하는 마케팅기법에 있어 분명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부연한다면 의료계는 그 고객이라는 개념의 대상 자체가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인간고유의 내적, 외적인 감수성과 고통마저 포함하는 본질적인 의미의 인간, 바로 그 ‘인간’인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인간의 자리로 회복시켜줄 수 있고 그러기에 인간을 스스럼없이 내어주고 의지하는 인간이 또한 의료계의 고객이자 최대의 관심사인 그 ‘인간’인 것이다. 이런 독특하고도 특수한 ‘인간관계’에서는 오직 인간 자체에 대한 교감과 이해만이 의료계의 마케팅 대상인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문명이 아무리 이기적으로 변모해간다 해도 인간의 관심은 오직 인간 자신에게만 향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이런 예측이 억측으로 판명되지 않는 한, 환자중심이니, 환자만족이니 더 나아가 환자감동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감수성을 회복시키는 감성마케팅 전략은 이전에도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하며 앞으로도 지속되어나갈 병·의원에 있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치명적인 완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