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의사회 남소자 회장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같이 빨리 늙어가는 사회는 없다고 한다.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은 늙고 힘없고 병든 노인들의 국가적 사회적 관심과 정책이다.
젊을 때 국가와 사회에 미력이나마 이바지한 사람을 늙고 힘없어 경제적으로 아무런 기여도 못한다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에서 얼마만큼 보살펴 줄 것인가가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모도 자식도 필요 없이 그들 부부만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개인주의가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현 세태에 효(孝)를 강요할 수도 없고 부모에 대한 의무(Filial Duty)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현실에서 국가마저 노인수발 보장법이니 요양 법을 갖고 이론 투쟁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발의 국어학적 풀이는 곁에서 불편함을 거들어 주는 시중의 뜻이 강하고 온갖 잡병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건강은 건강 보험에 맡기는 이중정책을 하겠다는 게 정치권이나 정부의 생각인성 싶다.
30여년 동안 제대로 정착도 못하고 의사를 쥐어짜고 국민의 부담금만 올리는 건강보험에 노인 수발비까지 얹으려는 정책은 이해하기 힘들다.
거기다 치매나 중풍 등 중한 질병에 걸린 노인을 간병이나 시중만 들게 하는 것이 과연 노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도 의문이다.
요는 빵이나 만두를 만들 때 그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속칭 앙꼬나 만두소)을 안 넣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빵이나 만두일 수 있겠는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인건강이 급격히 악화 되었을 때 간병인이나 간호사가 어떻게 처치할 것이며, 건강보험에서 병원비를 다 물어줄 수 있겠는가.
건강보험재정이 그렇게 넉넉할리도 없고 수발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당사자는 이중부담을 질 가능성은 없는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같이 노인도 격리 수용하겠다는 의도이면 이것은 수용이지, 수발이나 요양 중 아무 곳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늙어가는 사회를 만든 책임을 의학도 면할 수 없다.
1900년대 30세도 채 안된 평균 수명을 70~80세까지 늘려놓아 오래 살고 싶다는 본능 충족은 시켜놓았지만 정책이나 사회적 인식이 못 따라가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제 의료의 목표가 생물학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행복감증진이나 요즘 많이 쓰이는 웰빙(참살이)에 있다면 그 주체인 의료를 뺀 정책으로 왈가왈부, 시간을 끌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10여년 후면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란 전망인데 법을 정하고 시행착오가 생기면 보완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한데 수발이니 요양이니 곁가지만 건드리는 소모적 논쟁만 계속 하는 것은 정부나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노인이면 병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개념을 도입해야지 의사를 뺀 시설에서 또 병원으로 이송하는 이중정책은 옥상옥일 뿐이다.
이 어려운 경제난 시대에 유료요양시설에 드는 200여만원의 기금을 한 가족에게만 맡긴다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들의 부담도 거들어주고 늘어가는 노인복지문제도 다 같이 잘살자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소리만 요란한 구두선이 되어서도 안되고 보란 듯 포장만 잘된 전시행정이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의료서비스가 필수불가결한 노인건강에 의료가 빠지는 것, 그것을 건강보험에서 책임지겠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생색용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정책입안자나 행정가도 그들은 늙지 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