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대통령 공약과 국회 입법 논의를 바탕으로 전 국민 주치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시범사업이 예정돼 있으며, 내년에는 30개 의료기관을 선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는 주치의제를 통해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의료자원의 불균형을 개선하며, 예방·치료·관리를 포괄하는 건강관리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시점에서 제도 설계와 추진 방식에는 여러 우려가 존재한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핵심 사안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첫째,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주치의제가 포괄적 건강관리 체계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구체적 운영 방식과 참여 요건, 진료 범위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더욱이 건강보험 재정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충분한 수가와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제도는 안정성을 잃고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는 주치의제 도입 초기에 높은 수가로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재정 악화로 인한 수가 삭감으로 의사들이 대거 이탈하며 제도가 약화 된 바 있다. 한국처럼 전문의 비율이 80% 이상으로 높은 의료 구조에서, 불안정한 설계와 불충분한 재정 지원이 결합 된다면 주치의제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둘째, 환자 선택권 제한에 따른 사회적 수용성 문제가 있다.
주치의제라는 단어는 국민에게 친숙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줄 수 있지만, 그 환상 뒤에는 건강보다 의료서비스의 제한과 통제를 우선시하는 구조가 숨어 있다. 주치의제가 본질적으로 특정 의사를 거쳐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능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유로운 의료기관 선택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제도의 명칭과 취지와 달리 실제 운영에서는 국민 불편과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과 간 균형있는 역할 분담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주치의제가 특정 진료과에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로 설계될 경우, 지역사회에서 일차의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비인후과를 비롯한 다른 전문과들의 기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제도 전체의 균형성을 해치고 의료계 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각 전문과의 특성과 역할을 인정하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주치의제가 지향하는 국민 건강 증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도의 불안정한 설계와 재정 문제, 환자 선택권 제약, 과별 형평성 문제 등 다양한 우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성급한 제도화가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검증 과정을 거쳐, 의료현장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국민 건강은 정치적 공약이나 제도적 실험보다 훨씬 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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