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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장애평가 ‘비합리적’…중증도 충분히 반영해야

이평복 대한통증학회 회장

최근 대법원이 통증을 지체기능장애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통증을 운동기능장애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국CRPS환우회와 대한통증학회가 환영의 입장을 밝히는 한편, 현실적인 장애 판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학회와 환자들이 환영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증’ 관련 보건의료의 현실이 어떠하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대한통증학회 이평복 회장(분당서울대병원 통증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지난 2월 3일 대법원이 통증을 지체기능장애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포함한 만성통증환자들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판결로, 대한통증학회 입장에서도 통증에 의해 유발된 신체 기능의 저하가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첫 발을 디딘 판결이라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의사들이 보기에 만성통증환자들은 매우 외롭고 힘든 병입니다. 대개 겉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못 참는 사람'이나 '엄살 떠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만성통증 환자들의 발병 이후 생활의 변화를 지켜보면 병으로 인해 삶이 처참하게 파괴될 경우를 너무 많이 보게 됩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에게는 큰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 장애인복지법령에 의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장애평가는 병의 중증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며, 그 평가방법도 의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통증의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특히, 현재 평가방법은 병의 중증도를 평가하기 보다는 질환의 일부 증상인 관절가동범위의 제한 및 근력 약화로만 장애 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통증학회는 앞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합리적인 장애평가 안을 제시하는 데 학회의 역량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Q. ‘통증’과 관련해 우리나라 보건의료·복지 현황은 어떠하며,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먼저 우리나라의 현황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통증’을 전공과의 명칭으로 내걸고 전공의 및 전임의 수련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의를 배출하는 과는 마취통증의학과가 유일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마취통증의학과에서 통증전문의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만성통증 환자들의 ‘복지현황’은 다른 질환에 비해 열악합니다. 만성 통증을 가벼운 질환으로 여기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겠지만, 다른 질환들에 비해 환자수가 적고, 관련된 증상을 검사나 영상으로 객관화시키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최근 대한민국이 점점 고령화 되면서 통증질환이 증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우후죽순 통증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의사들이 충분한 수련 과정을 통해 배출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교육과 사후 관리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환자들은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의학계 내에 양질의 통증전문의를 배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성통증 환자들의 의료 혜택의 확대와 복지 증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희귀난치병지정 및 장애판정인데, 현재까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한해서만 희귀난치병 지정 및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난치성통증질환에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외에도 ▲삼차신경통 ▲대상포진후신경통 ▲다발성경화증 등 다양한 질환이 있지만, 제대로 혜택을 보지 못해서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정이 병간호나 경제적인 문제로 파괴되는 경우를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Q. ‘통증’ 관련 보건의료·복지체계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고, 단기적·중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최근 마약성진통제와 관련된 문제들이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다른 과에 비해 마약성진통제 처방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마약성진통제에 문제를 접근할 때에는 마약중독자의 숫자가 증가하게 되는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라, 실제 마약성진통제가 꼭 필요한 난치성 통증 환자의 문제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약성진통제와 관련해 대한통증학회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마약성진통제는 반드시 신중하게 처방해야 하며, 마약성진통제 처방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하며, 이런 처방 가이드라인을 의료인들에게 꾸준히 교육을 시키고 대국민 홍보도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성통증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사용되는 마약성진통제의 처방권은 침해돼서는 안 되며, 꼭 마약성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할 환자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됩니다.

대한통증학회는 이미 2017년 대한통증학회지에 비암성통증환자를 위한 마약성진통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식약처, 한림원, 미국질병통제센터(CDC) 가이드라인을 참고로 하여 기존 대한통증학회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고, 의료인 교육에 중점을 둘 예정입니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마약성진통제 사용에 대한 적정성 평가 등을 유관기관에 제시하고자 하며, 중장기적으로 마약 중독자에 대한 조기 발견 및 관리에 학술적 역량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Q. 올해 학회에서 진행할 행사 및 계획, 앞으로 학회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올해 대한통증학회에서 진행할 행사에 대해 말씀드리면, 우선 올해 4월에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5월 부산에서 ‘대한통증학회 춘계학술대회’, 11월경 ‘통증의 날’ 행사, 11월 ‘KPS annual meeting(국제학회)’ 등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한, 통증질환 및 치료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전달을 위해 현재 학회에서 ‘환자가 묻고 명의가 답하다’라는 제목으로 일반인 대상의 책을 집필 중입니다. 

오랫동안 통증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경험 많은 중견급 교수들로부터 평소 환자들한테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을 모아 명확하고 정제된 답변을 드린다는 것이 기획 의도입니다. 

이외에도 활자화된 책 이외에도 다양한 SNS 홍보를 통해 국민들의 궁금증을 메꾸고자 노력할 생각입니다. 특히 환자의 눈높이에서 어려운 전문용어를 지양하고 환자의 언어로 쉽게 통증 질환이나 치료법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학회가 나아갈 방향에서도 말씀드리자면 대한통증학회는 국내 뿐만 전 세계에 K-통증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등과 MOU를 맺어 상호 학술 교류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나라와 협력할 예정입니다. 

특히 2024년에는 통증영역에서 매우 저명한 학회인WSPC (World Society of Pain Clinician)의 차기 회장을 맡기로 했으며, 서울에서 세계적인 통증학회를 성공리에 개최하도록 힘쓰겠습니다.


Q. 그 밖에 정부 및 의료계 등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통증은 여러 질환과 관련돼 있어, 특정 몇 개의 과에서 보기에는 힘든 질환입니다. 대부분은 여러 전문가가 같이 참여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통증질환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의가 필요합니다. 

미국은 이미 통증 영역의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통증 세부 전문의제도는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여러 전문과 사이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대한통증학회는 대안으로 통증분과 전문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교육과 수련을 거친 인정된 전문의와 그에 합당한 진료행태가 형성돼야 국민의 건강이 보장되고 보험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비록 난관이 예상되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늘어날 통증환자를 진료할 양질의 통증의사를 배출하는 것은 대한통증학회의 엄중한 임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