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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 국정과제 스케줄에 맞춘 원격진료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국정과제 스케줄에 맞추려면 모집단을 늘리고 기간을 줄여서라도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복지부의 정책은 각 이해집단의 조율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국정과제로 정해질 경우 스케줄에 맞추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정책 집행에 큰 차질을 불러 오게 된다. 더구나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각별히 신경 쓰는 국정과제인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의 시행을 책임져야 할 복지부로서는 시간은 가고 발등의 불이 됐다.

국정과제를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국정과제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시기를 놓치지 말고 진행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국정과제를 말하면 힘이 실리고 거부하는 상대는 공익에 반대하고 사익을 추구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의료계 전문가들은 국정과제 스케줄에 맞춰야한다는 정부 정책관의 말은 황당하다며 반대했다. 원격진료 시스템이 안전한 지, 효용성은 있는 지를 검증하려면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근거중심의 임상의학을 중요시 여기는 전문가로서는 스케줄에 맞춘다는 것은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국민의 건강이 달린 문제를 콩 구워 먹듯 서둘러서도 안 되겠지만, 과연 원격진료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도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국정과제가 되려면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원격진료가 안 되서 국민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의료접근성이 떨어질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의료접근성은 높다. 도서지역 등 의료취약지역에는 공중보건의사들이 파견된다. 교도소 군함 등 의료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현행 의료법 내에서 의료인-의사 간 원격의료로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의료법까지 개정하면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양산할 필요가 없다.

원격진료가 국정과제로 인식된 데는 지난 2월 대통령이 취임 1주년 담화문을 통해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하면서 부터다. 앞서 작년 5월1일 대통령이 주관한 첫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업체가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규제문제를 호소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보다 앞서 삼성전자는 장비개발, 특허출원, 업체인수 등으로 원격진료를 준비해 왔다. 창조경제의 아이콘인 원격진료를 발전시키면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을 위해 국민이 희생되는 데 있다. 채혈기 영상전송장치 등 비싼 장비를 사야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된다. 전송도중 개인의 중요한 의료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다. 정확한 진료가 어려워 의료사고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의료전달 체계도 더욱 왜곡시킬 것이다. 원격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나 원격진료 시설과 인력을 잘 갖춘 대학병원 등으로 환자가 몰리고, 개원가는 환자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의료접근성을 높여 온 개원가는 더 어려워져 폐업이 늘어날 것이다. 원격진료전문병원, 대학병원 등에 원격진료를 신청한 환자가 몰려 자기 차례를 오랜 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의료접근성은 더 떨어지게 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를 선언하면서, 세월호 참사는 자본의 입장에 치우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드러낸 최악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규제완화한 것 등이 참사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원격진료 또한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국회에 제출됐다. 법이 통과되어 자본을 위해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1차 의료인 개원가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불러올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부작용은 불 보듯 뻔 한 원격진료를 국정과제로 밀어붙이는 복지부의 의도는 자본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됐다.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자본을 위한 원격진료가 과연 국정과제일 수 있을까? 정부는 국민과 자본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