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안정화와 의료의 질 향상,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각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주도하는 보건복지부는 의료정책의 방향성은 제쳐두고 재정 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우왕좌왕,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수많은 정책들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각종 이해단체와의 관계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상실, 정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매듭을 짓지 못하는 정부부처의 현 시점을 짚어 보았다
선택의원제와 리베이트 근절, 일괄적 약가인하 등은 올해 보건의료계를 술렁이게 만든 가장 큰 이슈였다. 이 외에도 영상장비 수가인하, 전문병원 선정, 경증질환 본인부담 약제비 차등적용, 중증외상센터설치, ESD 급여화 등 각종 정책도 쏟아져 나온 해였다.
그러나 모든 정책들이 시행하려는 과정에서 관련 기관-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닫쳤다. 한마디로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를 위한 복지부의 일방적 드라이브에 의료정책의 방향성이 표류했다는 비판들이 빗발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정책 시행의 명확한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할 복지부가 이곳저곳 휩쓸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렇다보니 정책들 중 상당수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여전히 우왕좌왕 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번복 거듭하는 선택의원제(만성질환관리제), 표류
복지부는 선택의원제의 강력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그간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의료계로부터 설득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추진으로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는 반쪽자리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의료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복지부는 선택의원제에 대해 ‘동네의원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만성질환자 등이 자신의 특성을 잘 아는 동네의원을 선택함으로써 예방과 관리를 강화한 맞춤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환자중심 1차의료제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취지로 선택의원제의 당초 계획은 자율참여라는 원칙 아래 환자가 의원을 ‘선택’해 지속적으로 이용하면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주고, 의원에게도 환자관리표 작성에 따른 수가 등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원해 주는 안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월에 도입될 예정이었던 이같은 안은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의사협회는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이 제한돼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며 진료선택 범위의 제한으로 진료 받을 기회 자체가 박탈된다고 비난했다. 이와함께 포괄적이며 획일화된 진료에 초점을 둠으로써 의료서비스 수준이 크게 저하 될 뿐 아니라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급격한 국민의료비 증가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자 복지부는 방향을 선회해 핵심쟁점이었던 '선택지정‘을 생략했다. 즉 고혈압과 당뇨 환자들은 공단에 신청 없이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격을 인정받으며, 이 경우 의료기관을 2회 이상 방문한 재진 이후부터 본인부담률을 20%로 경감 받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
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로는 기존에 환자관리표 제출에 대한 건당 보상이 삭제되는 대신 적정관리 환자 수, 즉 지속관리율 등에 비례한 사후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와함께 1차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상담ㆍ진료 프로토콜과 표준 진료기록부 마련 등이 포함됐다.
이렇다보니 명칭 역시 ‘선택의원제’가 아닌 ‘동네의원만성질환관리제’로 변경되는 안이 논의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입자단체 측은 “변경된 안은 선택의원제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만성질환관리료에 인센티브를 얹어주는 꼴”이라며 끝까지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복지부 측은 의료기관 인센티브 제공을 위한 환자관리 평가 툴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며 환자 동의 절차부분에 대해서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을 가입자 단체 측에 전달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복지부가 원안강행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지자 가입자 단체는 강행 시 법정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각 직역 단체 간 잡음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책 발표는 매번 번복되고 이들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는 등 혼란만 가중되는 꼴이다.
건보재정 절감위한 정책, 의료정책 방향성은 표류
올해는 건강보험재정 절감을 위한 복지부의 정책들이 의료계를 강타했다. 그만큼 의료게 또한 사활을 걸고 방어에 나서면서 끊임없이 충돌이 발생하고 정책들은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올해 건보재정을 절감하기 위해서 복지부가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은 약가인하와 영상장비 수가인하, 대형병원 경증질환외래 약제비 본인부담률 인상 등이었다.
그러나 건보재정 절감이라는 원칙은 명확했던 데 반해 의료정책의 방향성을 길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복지부는 지출구조 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영상검사 수가인하와 대형병원 경증외래환자 약제비 본인부담 인상, 치료재료 가격 인하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같은 정책들로 인해 복지부는 내년도에 건보재정 5500억여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약가인하와 계단식 약가산정 방식 폐지 등 약가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내년 4월 본격 시행되면, 내년 한해 동안 6906억여원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복지부는 내다봤다.
복지부는 이 정책들의 성과로 내년도 보험료율 인상완화 효과를 가져왔다며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정책폭탄을 떠안은 의료계가 복지부의 일방적인 정책시행에 맞서면서, 끊임없는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복지부를 상대로 한 제약업계의 일괄 약가인하 관련 행정소송 준비는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움직임에 착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복지부는 제네릭 등재 시 오리지널과 제네릭 모두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가격의 53.55%를 부여함으로써 기존 계단형 약가 부여방식을 페지하는 일괄적 약가 인하 방안을 행정 예고했다.
복지부는 이같은 약가인하와 함께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대타협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들은 제약산업을 말살시키는 정책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은 커녕 인력 감축과 연구비 축소로 국내제약산업의 후퇴는 자명하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일괄인하가 아닌 단계적 약가인하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일괄 인하로 발생할 약 2만명 이상의 악성 실업자와 가족 및 관련업계에까지 영향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의 양적 축소와 질적 저하까지 유발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측은 무조건적인 인하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복지부와 제약계 간 소송의 막이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일괄 약가인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리베이트에 대한 근절안들이 의료계를 휩쓸면서 교육과 연구마저 발목을 잡힌다는 의료계의 아우성 또한 거세다. 공정경쟁규약과 리베이트 쌍벌제가 이미 시행됐고, 복지부에서는 리베이트에 한번 걸리는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이른바 원스트라이크아웃제까지 언급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차원의 지원도 공정경쟁규약과 리베이트에 막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학회 등에 따르면 제약협회에 전공의 보수교육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제공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술대회나 심포지엄은 지원이 가능하지만 '교육'을 목적으로 열리는 행사는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법원은 최근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지난 2004년부터 의과대학들에 의학서적을 기증한 것이 불법행위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6억여원에 이르는 도서를 기증한 제약사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자 제약사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복지부의 일방적 행태는 영상장비 수가인하 강행에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복지부가 지난 4월 영상장비 상대가치점수를 CT 15%, MRI 30%, PET 16% 각각 인하한 데 대해 병원계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행정법원은 상대가치점수를 직권 조정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행위전문평가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와함께 이뤄진 법원의 고시처분 효력 집행정지 결정에 따라 22일부터 영상장비 수가가 인하(5.1)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복지부는 집행정지에 대한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복지부는 집행이 정지되는 동안 수가가 높게 유지돼 국민들이 높은 본인부담금을 지불해야 하는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영상장비 수가가 인하 된 당시, 국민편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 번 촬영으로 끝날 상황을, 두 번으로 나눠 찍는 등의 행태로 변화했다”며 정책의 비효율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경증질환 본인부담 약제비 차등적용 시행도 바람잘 날이 없다. 당뇨의 경증질환 분류로 인해 학회와 환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 국정감사에까지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52개 질환을 선정,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환자 본인에게 더 많은 약값을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뇨학회는 제도의 시행으로 ▲당뇨전문가에게 치료받는 환자와 ▲동일한 질병인데도 당뇨가 동반돼 더 심각한 상태인 환자들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또 동네의원에서 혈당조절이 되지 않거나, 당뇨병의 증상이 악화돼 상급 의료기관에 전원을 의뢰한 경우에도 환자는 약값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복지부는 대형병원 경증환자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고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민원과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 시간을 두고 면밀히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들이 이미 예측됐는데도, 제도시행을 강행한 복지부에 대해 학회와 환자단체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직접적 당사자인 의료계와, 정책시행의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보재정 절감을 초점에 둔 각종 정책시행은 끊임없는 갈등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정부부처로서 중재자 역할을 실종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