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제약기업 육성정책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제약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단지 R&D 투자율로 기업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안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인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무조건 적인 투자만 강요하는 정책이라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인증 기준 등의 내용을 담은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3일 밝혔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기준으로는 ▲연간 매출액 1,000억원 미만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10% 이상 ▲연간 매출액 1,000억원 이상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7% 이상 ▲cGMP 생산시설, FDA 승인 품목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5% 이상이어야 한다.
2010년 R&D 투자비율을 기준으로 시행령에 충족되는 기업은 연간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 가운데 총 9곳이 해당된다.
LG생명과학(19.3%), 한미약품(13.6%), 한올바이오파마(13.2%), 유나이티드제약(11.9%), 안국약품(9.6%), 종근당(9.4%), 동아제약(7.7%), 녹십자(7.2%), 대웅제약(7%) 등이다.
반면, 1,000억원 미만 기업 가운데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이같은 정부의 발표를 두고 제약업계는 단순히 R&D 투자비율 수치로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하겠다는 기준이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R&D 투자율이 높다고 해서 신약개발 능력을 갖춘 회사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차라리 현재 신약을 보유한 업체나 신약개발 중인 업체들의 경쟁력을 판단하고, 개발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를 따져 집중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R&D 투자율과 신약개발 능력이 비례한다는 발상부터 문제가 있다는 것. 이럴 경우 오히려 제네릭 개발에 더 열중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발표한 기준 가운데 FDA로부터 인증받은 cGMP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은 현재까지 한 곳도 없을뿐더러, FDA 승인 품목을 보유한 기업은 지난 2003년 ‘팩티브’로 승인을 획득한 LG생명과학이 유일한 실정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많은 업체들이 정부의 계획에 따라 cGMP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cGMP에 투자했던 중소제약사들은 이제 다 죽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이 같은 제약업계의 노력은 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또한 기업들이 신약개발에 투자비용을 높인다고 해도 이를 회수할 수 있을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발만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신약은 개발비용만 1조원 가량 들어가는데다 개발기간도 최소 10년이 넘게 걸리는 리스크 높은 분야”라며 “신약을 개발한다 치더라도 현재 국내신약 중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는 품목들도 있다. 무조건 투자만 강요하지 말고 이런 부분에 대한 보상측면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