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공조가 모처럼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한 지붕, 두 가정'이 모처럼 화목한 분위기마져 엿보이고 있을 정도.
이처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손을 잡은 이유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결과 때문. 헌재는 지난달 불법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를 금지한 현행 의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일부에서 불법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근절을 촉구했다. 특히 이번 기자회견은 한의협 김정곤 회장이 이끌어 냈다는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허지만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불법 무자격자 의료행위 근절 동조가 의료일원화까지 가기에는 너무 시각차가 크다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됐다.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완대체의학’의 정의에서부터 이견을 나타내 '동상이몽'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의협 산하 보완대체의학 특별위원회는 보완대체의학으로 볼 수 있는 뜸 등의 시술에 대한 의료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통합적 신의료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도 당시 기자회견에서 “근거중심이 아닌 것은 모두 대체의학으로 보는데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며 한의학을 의학에 통합한 보완대체의학 정립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한의협 김정곤 회장은 “의학과 한의학은 그 근본발상부터가 다르고, 보완대체요법은 한의사가 없는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한의학적 시술을 일컫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즉, 불법 무자격자 의료행위 근절에는 같은 시각을 보이면서도 그 정의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였다.
이번 공동 기자회견 말고도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가장 큰 갈등의 고리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문제에서 항상 엇박자 엿다. 그간 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방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와 관련해 김정곤 회장은 후보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현대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서울동부지법 형사1부가 IPL기기를 이용한 시술을 하다 무면허의료행위로 고발당한 한의사 이 모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한의계가 주장했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고 평하며 반색했다. 하지만 그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해 온 의료계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의사협회는 판결 직후 대법원에 상고신청서를 접수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은상용 의협 정책이사는 “법적으로 의료 자체가 이원화 되어 있고 이에 따른 각자의 역할이 있다”면서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 한의사에게 이를 쓰도록 하는 것은 무면허 진료를 시키는 것과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불법 무자격자 의료행위 근절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현대 의료기기 사용 앞에선 ‘무면허 진료’라는 날선 공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편적인 불법 무자격자 의료행위 근절을 위해 두 단체가 손을 잡았지만 결국,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단체 모두 초미의 관심은 대법원의 판결에 집중되고 있다. 불편한 적과의 동침도 이 판결에 따라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