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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고대구로병원, 지진 속에서 살아난 아이

생생한 현장담은 박중철 교수 사진 은상 수상


최근 고려대의료원 아이티 의료봉사단에게 뜻밖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봉사활동 당시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 가정의학과 박중철 교수의 사진(왼쪽) 한 장이 ‘의사신문 창간 50주년 기념사진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한 여성 봉사단원이 검은 피부의 갓난아기를 꼭 안고 무언가를 입에 물린 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목넘김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한 진지함이 느껴지는 이 사진은 봉사단원 모두에게 감회가 남달랐던 감동의 치료를 떠올리게 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창 봉사활동 중이던 지난 1월, 대부분의 봉사단체들이 들어가길 꺼려했던 대통령궁 주변의 한 이재민 천막촌에 이동진료를 갔다가, 생후 2개월된 아기를 발견했다.

‘시렙손(男)’이라는 이 아기는 지진으로 부모가 모두 죽고, 이모가 돌보고 있었으며, 심한 탈진으로 울지도 못할 정도로 응급한 상황이었다. 시렙손은 현장에서 몇 번의 혈관주사를 시도한 끝에 겨우 손등에 혈관주사를 성공하고 급히 수액을 주며 진료캠프 본부로 이송됐다.

당시 시렙손은 30~40분 간격으로 피가 섞인 점액질 설사는 쏟아내고 있었고, 생후 2개월임에도 몸무게가 겨우 2.3kg으로 정상 신생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심한 탈수와 감염으로 소변조차 나오지 않았고 40도의 고열로 아이는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한국의 소아중환자실로 가야 할 아이를 지진현장 한 가운데서 만난 건 너무 절망적인 상황이었기에, 의료진들은 이 아이가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으로 마사지를 하면서, 깨끗한 생수에 전해질 과립을 녹여 시럽통에 담아 살짝 입에 물렸더니 눈도 뜨지 못하고 시름 거리던 아이가 시럽통을 무섭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그 살고자 하는 의지에 놀란 의료진들은 혹시 아이가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온 봉사단이 총 동원되어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매달렸다.

다행히 첫날 저녁 봉사단이 간절히 바라던 첫 소변이 터져나왔고, 이후 항생제 치료가 시작됐다. 둘째 날부터 열이 내리고, 설사의 횟수도 하루 10여 차례로 줄어 상태도 많이 호전되었으며 울음 소리도 제법 커졌다.

봉사단 행정팀은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포르토프랭스에서 야시장을 찾아내 몇 배의 값을 치르고 일회용 기저귀와 분유, 젖병을 구해와 아이의 이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봉사단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다른 봉사단의 소아청소년과 교수에게 인계했고, 이후 시렙손이 건강하게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진은 시렙손 진료 셋째날, 박중철 교수가 전해질 수액을 먹이는 고대 구로병원 인공신장실 한우리 간호사를 촬영한 장면이다. 한 간호사는 아이의 엄마처럼 시렙손을 전담해 극진히 보살폈다.

박 교수는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눈도 잘 못 뜨던 아이가 시럽통을 빨며 슬그머니 실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확인했다. 자신을 치료해준 것에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다. 시렙손을 치료한 것 하나만으로도 내가 아이티 온 목적을 찾은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