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5시 서울 도곡동 베스티안병원(원장 김경식·50·한양대 의대 졸) 중환자실. 어버이날인 8일 밤 0시20분경 발생한 화재 때 가족을 구하려다 전신 화상을 입은 한 중학생이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채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 석교마을 장수종(16·화양중 3년)군이다. 그는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아버지를 구하는 효심을 발휘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86)와 어머니(51)는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현재 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이며, 수종군도 혁띠 찬 부분을 제외한 전신 86% 3도 화상을 당해 안심할 수 없는 상태.
화상 사고는 체표면적의 20∼30%만 화상을 입어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김 원장과 수종군 주치의 문덕주 일반외과 과장은 "지난 8일 오후 1차 다리 수술을 받았으나 배와 등부위 수술까지 앞으로도 몇 차례 목숨을 걸고 수술을 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비단 장군 뿐이 아니다. 이날 베스티안병원 중환자실엔 가스통이 터져 상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은 근로자, 부부싸움을 하다 홧김에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댕기는 바람에 사경에 처한 40대 실직 가장, 교통사고로 불이 붙은 자동차 안에 갇혀 중증 화상을 입어 2중고를 겪고 있는 남성,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하다 가연성이 높은 화학물질을 잘못 다뤄 화상을 입은 청소년 등이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죽음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베스티안병원은 서울 도곡동 본원 외에 경기도 부천과 구리에 2개 분원을 거느린 화상치료 전문병원이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부터 시행중인 전문병원 시범사업 기관으로도 지정돼 있다. 본원과 분원 주위의 대학병원 등 상급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역의뢰할 정도로 화상진료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의료계 안팎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뜻밖의 사고로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이 병원을 찾는 이유에 대해 김 원장은 "고급의료인력을 많이 써야 하는 반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병·의원들이 화상 환자 받기를 기피하고 있는 데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지역만 해도 화상 치료 전문화를 표방하는 병원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화상치료센터(영등포동)와 베스티안병원네트워크 3개 병원, 한일병원(쌍문동), 구로성심병원(고척동) 정도다. 전국적으로도 이들 병원을 포함해 부산의 하나병원(장림동)과 대구의 푸른외과의원(남산동)까지 8곳밖에 안되는 게 우리 의료계의 현실.
이 가운데서도 베스티안병원이 독보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체계적인 화상진료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 화상 환자를 집중 진료하는 외과와 응급의학과, 소아과를 비롯,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진단방사선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협진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화상으로 인한 합병증을 철저하게 감시, 예방할 수 있는 응급진료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현재 병상수는 총 120개. 화상으로 내원하는 환자수는 하루 평균 100여명. 화상 사고가 그리 흔한 것이 아님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화상진료 전문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화상 진료를 위한 전문인력도 200여명에 이른다. 아울러 좀더 편하고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원격진료시스템을 구축, 3개 네트워크 병원 어디서나 진료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의료 인프라와 어린이 화상 환자들을 위한 전문진료센터를 갖추고 있다.
이밖에도 화상환자들의 재활모임 '해바라기'를 통해 퇴원 후 가급적 빨리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회원수는 90명, 한달에 1만원씩 기부금을 내는 후원회원 수는 400여명이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기자(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