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근 인제대 상계백병원 원장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계약제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강제지정제도는 결론적으로 합헌이라고 결론지었지만 앞으로도 이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였다. 또한 그 동안 일방적이고 하향적 수가 고시제에서 수가 계약제로 전환되어 시행되었으나 각 계의 의견 차이로 진정한 합의에 의한 수가 계약은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아왔다. 객관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밑그림이 부재된 상태에서 민주적이고 자발적 참여의 합리성에 기초한 급격한 변화에 그 요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우선 의료비용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죽음의 문턱에 잇는 환자를 최선의 의술로 생명을 구해 주는 의료행위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을 가격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연간 수백억의 재산을 모으는 환자를 수술하여 살렸다면 그 수술비를 얼마로 책정할 것이며, 아무 직업도 없이 떠도는 노숙자를 수술하여 살렸다면 그 수술비 또한 얼마로 할 것인가? 평등의 원칙에서 가격을 동등하게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일까? 해답을 얻기란 정말 어렵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개인적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수련의 시절에는 정부에서 수련의 징집이 있었다. 모든 수련의는 6개월간 무의촌 보건지소에서 근무하여야 하는 법령이 재정되었다. 나는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은 외딴섬의 보건지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거의 무료 진료를 하였는데 진료 받은 사람들의 능력이 되는 대로 약값이나 치료비를 내도록하였다. 의료를 수행한 나와 치료 받은 환자 양자간의 직접적 합의에 의해 재료비 수준에서 의료비를 책정하였다. 개인의 지불 능력이 바로 오늘의 의료비 재원을 구성하는 개개의 기본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나에게 치료 받은 환자들은 이 집 저 집에서 식사 초대는 물론 묵은 신문지에 싸 가져온 찐 계란 혹은 삶은 감자 등 정성스런 선물을 가져오곤 하였다. 의료 행위의 가치는 이와 같았던 것이다. 이 당시 의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 개념에 그 기초를 두었으며, 환자와 의료인 양자간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유의료였다. 오늘에 이를 적용한다는 것은 의료에 대한 오늘날의 개념과 의료소비자나 의료공급자의 의식의 전환과 복잡한 사회경제학적 변화로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개념설정에 짚고 넘어가야할 기본적 단위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의촌의 환자들을 위하여 우리 의사들을 징집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권인 생명권의 신장을 위한 의료 보장의 일환으로 의료시혜를 주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전 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시행할 시절 이나라의 정치적 배경이 당사자들간의 대화와 타협으로 미래지향적인 밑그림을 그려 제도화 한 것이 아니며 일방적이고 수직적이고 정치적으로 급격한 의료개혁의 방식으로 시행되었고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못하고 자원 조달이 열악하여 의료비는 비현실적인 저수가로 일방적으로 고시되었다. 모든 의료인이 전 국민의료보험의 선봉장으로 값 싼 임금으로 다시 한번 징용된 것이다.
정부는 전 국민의 건강관리의 원론적인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하여 의료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여야 한다. 따라서 의료에 관한 보험의 조종자로서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저부담을 기반으로 시작한 급작스런 전 국민의료보험 제도는 재원의 한계가 있었으며 어쩔 수없이 저급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앞에서 언급한 의료비용에 대한 절대적 가치는 생각할 여지도 없었으며 제한된 재원에서 분배를 위한 상대적 가치만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금의 의료행위의 가치는 바로 이와 같은 과정에 의하여 변모하여 오늘의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원가계산을 하고는 있으나, 의사의 인건비가 고시된 저수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결국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그 굴레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이와 같은 저부담 저급여의 현실에서 각종 의료의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도에는 그간 일방적인 의료수가 고시 제도에서 의료 소비자, 공급자, 보험자들 간의 계약에 의한 수가 계약제로 전환되었다. 이는 의료 공급자가 열망하였던 것이었고, 그 취지는 매우 고무적이긴 하지만 그 시행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점과 진통이 있었으며, 그 동안 제대로 순산된 수가계약은 한번도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나라의 보험의 시작에서 비롯한 문제점이 그대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재원에서 물가 상승과 의용공학의 발전으로 의료비용은 상승하고 노령화되고 있는 인구 구조로 의료 소비자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 행위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 인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보험부담을 급격히 올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OECD에 진입한 국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그 평균 수준의 의료비 부담으로 끌어 올리지 않으면 합의에 의한 의료계약은 앞으로도 장기간 비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년 초에 보험공단과 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약사회, 한의사협히 등 의약 5단체로 구성된 요양급여비용 연구기획단을 결성하고 요양급여비용 계약을 위한 환산지수 연구용역 사업자를 합의하에 선정하며, 그 외에도 환산지수 산출방법의 검증 및 개발, 요양기관 종별 수가계약 방안 및 요양기관 간 보상의 적정화 방안 등에 대하여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한 것은 수가계약제의 장례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다.
의료가 아무리 공공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모든 의료인을 대화와 타협이 없이 두 차례 이상이나 징용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분야별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볼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동안 의료인들의 희생적 노력이 이 나라 의료 발전에 기여한 바는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의료 제도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현실에서 벋어나 정부에서도 연초에 천명한 바와 같이 의료를 산업화하기 위하여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제조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