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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국가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강원특별자치도 서영준 영월의료원장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와 결정 방식의 적절성 문제로 촉발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9개월째 끌면서 일부 응급실과 대형병원 중환자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는 가운데 정부와 의사들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국면에서는 정부가 2025년도 예정된 입시 일정을 진행하고 있어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전공의나 의대생들과 타협의 여지도 없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는 의사만 되면 독점적 진료 권력을 바탕으로 타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경제적 보상과 명예가 따라오는 의료시장에서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힘든 수련을 견디고 있는 예비 의사들이 잠재적 시장 경쟁자가 매년 1,500여명씩 늘어날 수 있는 정책이 그들과 협의없이 느닷없이 강행되는 것에 집단 저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거기에 대고 의사의 직업 책임과 의료윤리를 들어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로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손상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그동안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던 우리나라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고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긍정적 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사태의 뿌리를 파고들어 가보면 해방 이후 80년간 우리나라 의료공급체제를 뚜렷한 이념적 좌표가 없이 자유시장 경쟁에 맡긴 채 1977년부터 시작된 국민건강보험으로 진료비만 일부 통제하면서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온 것에서 이미 그 씨앗이 뿌려지고 성장해 온 것이다. 

국민의 소득 수준은 높아지는데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5% 내외에서 정체되고 필수의료수가 보상은 원가에 미달하면서 2022년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평균 17.5회로 OECD 평균 6.3회의 3배에 달하고 평균재원일수는 19.6일로 OECD 평균 8.1일의 두 배가 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과다 이용 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고가의 비급여 시장과 이를 부추기는 실손보험시장이 커지면서 주로 비급여 중심의 진료과에 수익이 더 많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의료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수익성이 낮은 필수진료과를 고사시키고 의사들 간 상대적 박탈감을 조성하는 등 의료공급시장의 왜곡을 가져오게 되었다. 

우리나라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지표 중 하나로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동네의원에서 언제든지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를 동네병원을 거치지 않고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중증의 큰 수술도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점들이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일들은 자랑이라기보다 과잉 의료이용의 한 단면으로 개혁되어야 할 현상이다. 

질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고, 불필요하게 많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늘릴 뿐만 아니라 국가의료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과다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공급자를 통제함과 동시에 국민들이 꼭 필요한 의료를 지역의 적정한 의료기관에서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필수의료개혁 패키지의 내용에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필수진료 중심의 공정 보상 등을 포함하면서 의료를 국방, 치안, 교육과 같은 수준의 필수적인 분야로 다루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실제 이번 사태의 주요한 명분 중의 하나였던 지역 필수의료체계의 안정적 구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방에서는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필수의료분야의 의사 구인난이 이미 십여년 전부터 시작되어 의사 임금도 계속 올랐으나 수도권이 아니다 보니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는 건강보험 실시와 함께 설정되었던 지역별 진료권의 폐지와 교통망의 개선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고, 수도권 중심으로 일자리 등 사회경제적 자원이 집중됨에 따라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면서 지역의료가 쇠락하기 시작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광역단위로 지방국립대를 중점 육성하여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일자리, 교육, 문화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수도권 집중현상을 의료분야에서만 예외로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강화함과 동시에 필수의료에 대한 공급이 지역 단위에서 충족될 수 있도록 진료권의 재설정과 그에 따른 의료자원의 균등 배분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제도적 유인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지방의 의료취약지에는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이 중심이 된 공공병원들이 최후의 의료안전망 역할을 해야 하나 지역 공공병원들의 현실은 곤궁하기만 하다. 공공병원으로써 지역민의 의료안전망 구축과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 개선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운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실은 적자를 줄여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민간병원과의 차별성을 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지방의료원은 광역지자체가 설립한 공공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운영체계는 독립채산하도록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연봉계약에 따른 단기 계약제 의사들로서 언제 떠나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상당수 지역공공병원은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의사를 제 때 구하지 못해 진료공백이 발생하고, 직원들의 임금은 연공급제로 병원 수입과 관계없이 계속 인상되는 구조여서 재정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임금을 포함한 근무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지역의 환자들이나 병원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련없이 병원을 떠나는 차가운 의료 프리랜서, 용병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 

국가의 안보를 용병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있는가? 의료를 국방과 치안, 교육 등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에 필수적인 공공재로 본다면 최소한의 의료안전망 구축에 필요한 의사들은 별도로 양성되어 공급되어야 하며 공공병원의 운영체계도 총액예산제 등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그동안 자유시장체제에 맡겨져 온 의사 공급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전국의 고교 수재들을 대거 의과대학에 몰리게 하는 비정상을 바로잡고 어떠한 경우에도 의료현장을 이탈하지 않는 의사들을 배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시행중인 의과대학 지역인재 전형을 확대하고, 전공의 수련비용를 전액 국가가 부담하여 의사 양성의 공적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공공병원에 근무할 의사들에 대해서는 공공의대나 의무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별도로 양성한 후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지역의 의료안전망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전체 병원의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의 비중을 취약지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늘리고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으로 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되 연공급 중심의 직원인건비 구조를 직무급으로 전환하는 등 경영의 효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민간병원이라 하더라도 취약지에서 공익적 역할의 비중이 높은 병원은 공공의대에서 양성한 의사를 파견하여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규모의 적정성을 떠나 방향성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일이지만 단지 숫자만 늘려서는 지역 의료시장을 더욱 프리랜서들의 정글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의대 증원과 함께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에 지역수가 신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등의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런 정책들은 오히려 전반적인 의료비 상승이나 이미 수도권보다 높은 지방 근무 의사들의 인건비를 더욱 상승시키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의료시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빠져 있는데 이는 국립대병원의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정책수가를 신설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전공의 집단행동에 국립대 병원 의사들마저 동조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언제든지 마비되어 국가의료안전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국가의료공급체계를 공공성 중심으로 다시 정립하여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의료는 모두 공공재라는 인식 하에 의료시장에서 과잉의료 유도나 비급여 남용을 통한 과다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어렵게 되어야만 이번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국가개혁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중앙정부의 책임하에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의 증가와 과다 의료 이용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국가의료체계의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