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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의사’ 이유로 헌법상의 권리 유보는 ‘전체주의’ 생각 한계

권복규 교수 “의료법, 전시 목적 징발하는 ‘조선의료령’ 배낀 악법”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의·정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요인으로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헌법의 권리를 제약하고 강제하려고 하는 전시에 만들어진 의료법 등과 정부의 전체주의적 성격·생각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7월 4일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의료정책연구원 창립 22주년 기념 의료정책포럼’이 개최됐다.

이날 이화의대 권복규 교수는 ‘현 의료사태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권력의 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먼저 권 교수는 “기본적으로 의사는 의업을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인 ‘직업인’이다”라면서 “의료라는 것을 취미로 하거나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는 의사들이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국가와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의사들이 자기가 정당하게 일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사적인 관계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권 교수는 “국가가 국민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적 책무를 근거로 개입하는 것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는 누군가가 간섭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계약을 통해서 의사는 자신이 아는 최선의 지식·기술로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면서 의사에게 치료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하는 원초적인 개념에 국가가 들어오려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래라면 국가가 누구에게 치료받을 것인지를 지정할 수 없고, 의사 또한 국가의 지정을 받아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의사들에게 보이는 행동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 아닌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권 교수는 “어떤 권력자의 어떠한 명령이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바꾸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전체주의”라고 질타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되려면 사회의 다양한 집단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고, 법은 어떤 권력자의 일방적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율적인 집단들이 상호 간에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와 권위주의 시대들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해본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오늘날조차도 국가와 자율적인 전문가 집단과의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것도 모자라 전문가 집단인 의사 집단과 국가 간의 관계가 왜곡되어 버린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를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법 중 하나인 ‘의료법’도 전시체제 및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점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의사 경찰과 근대 위생 개념을 일본이 도입해서 ‘위생 경찰 제도’를 만들었고,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일본의 의사 경찰 제도가 들어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세기 이후부터 유럽은 더 이상 보건 위생 문제를 경찰에다 위임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뒤쳐진 제도가 들어온 것이며, 특히 일본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식민지인 조선에서 감염병 등을 예방한다는 취지 하에서 자택을 수색하는 등 여러 난폭한 일을 많이 벌이는 과정에서 국가가 보건의료와 위생 문제를 관할한다는 인식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주입됐음을 전했다.

또한, 권 교수는 보건의료 관련 법률 제정 당시 상황과 관련해 “1944년에 조선의료령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1944년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시절로, 당시에 일본인 의사들이 전부 군의관으로 징집돼서 전장에 나가 있어 남아있는 조선인 의사들과 의료시설 등을 전시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징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어디에도 없었던 조선 총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의료 관계자에게 2년 이내에서는 조선 총독이 지정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조항이 담긴 채로 집행됐음을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권 교수는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1988년에 새로운 의료법을 제정하면서 보건의료 관계자들을 강제하는 내용들을 없애버린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시절인 1951년 의료법을 만들면서 이 ‘조선의료령’을 그대로 베껴왔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의료법 제정 당시 이용설 국회의원이 평화 시에 의사에게 2년간 지정 업무 종사령을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반대했지만, 다른 국회의원이 현재와 비슷한 의사의 도시 집중과 수급 부족을 이유로 의사들은 국민 전체를 위해서 2년은 지정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우겨 통과시킨 법안임을 알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무엇보다도 이로 인해 주무부 장관의 명령 하에 의사의 거주권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으며, 명령을 위반할 때는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시킬 수 있게 됐음을 덧붙였다.

이외에도 1977년에 의료보험법(건강보험법) 개정 당시 추가된 ‘당연지정제’와 관련해서도 의사들에게 공공성이 있는 공익사업을 하니까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라는 명령으로, 이는 백성을 다스리는 전근대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신체제’의 사고방식 결과물임을 주장했다.

권 교수는 “우리는 유신체제를 ‘독재 권위주의 체제’라고 부정하고 있는데, 정작 국가는 이러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라는 이유 만으로 헌법상의 권리가 유보돼야만 하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권 교수는 “의사의 재산권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은 헌법상의 권리가 아닙니까?”라고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특정 직역에 대해서는 국민으로서 가져야 될 아주 기본적인 권리조차 유보시킬 수 있다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시나 코로나19 유행처럼 정말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어느 나라나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명령을 남발하는 것은 국가의 모습이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의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