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고령사회가 점차 다가오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재택의료 도입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평상시와 비상상황 모두 의료기관을 방문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은 환자나 장애인 등을 위한 수단으로도 도입하는 것은 어떠한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대한재택의료학회 이건세 회장(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를 만나 재택의료 도입과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준비가 된 상태이며, 시행 중인 재택의료 시범사업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재택의료 도입과 관련해 해외의 어떤 국가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먼저 재택의료 도입과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는 얼마나 준비돼 있다고 보시나요?
A.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퇴원환자 연계 시범사업 등등 여러 시범사업들이 우리나라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범사업들은 시범사업 지역 또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병·의원에 한해서 수가를 지급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여러 조건들이 까다로워 시범사업에 참여하거나 시범사업에 참여했더라도 재택의료를 펼치기에는 힘든 점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재택의료 환자 기준과 재택의료를 실시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인력에 대한 기준이 어려워 시범사업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병·의원에게는 재택의료 환자 1명당 12만원 정도의 수가가 지급되는데, 보통 재택의료 환자 1명을 돌보는데 필요한 시간은 왕복 포함 1시간 정도 소요됨을 고려하면 외래진료를 보는 것이 더 이익인 상황입니다.
이와 함께 시범사업 내용에는 의사가 간호사랑 같이 환자를 찾아가 진료를 펼치면 수가를 2~4만원 정도 더 주는 규정이 있는데,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시범사업에서 주는 수가로는 간호사 월급을 마련하기가 빠듯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간호사들이 개원가로 오는 이유는 대학병원 등보다는 상대적으로 업무난이도 및 부담이 적어서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환자가 있는 저택·시설을 방문해서 간단한 처치 등을 시키면 좋아하는 간호사는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혹자는 신입 또는 경력이 짧은 간호사들을 뽑아서 보내면 되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신입 또는 경력이 짧은 간호사들이 겁을 내서 보내기가 힘듭니다.
결국은 숙련도와 의욕이 있는 간호사들을 구해야 되는데, 이 과성에서 필요한 월급 등의 비용을 개원가 의사들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많은 의사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의사들이 병원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익숙해져 있어 환자를 찾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실 환자가 병원으로 찾아오면 의사는 병원에 있는 장비와 기구·약물로 진료의 주도권을 쥔 채로 환자를 진찰할 수 있지만, 기존의 방식이 아닌 의사가 생소한 환자 집을 방문해 충분한 장비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의료진도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증세가 간단한 환자라도 ▲중병 여부 ▲응급상황 발생 여부 ▲증세 악화 가능성 등을 비롯해 환자를 찾아가 진료할 때에 챙겨간 장비·도구·의약품으로 과연 충분할지 등에 대해 예측할 수 없어 많은 걱정을 하면서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재택의료·방문진료를 위해 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때에 이용해야 하는 차량에 대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아 자가용을 타고 갔다가 길이 좁아 환자 근처가 아닌 먼 곳에다가 차량을 주차하고 찾아가거나 주차공간을 찾다가 시간이 없어서 급히 세웠다가 주차딱지를 떼는 일이 발생해 의사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형차를 이용하자니 재택의료를 신청한 환자가 있는 곳을 방문하기 전에 어떤 장비를 가져가면 되는지 등에 대한 기준도 없어 의사들이 대략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 챙겨야 하며, 해당 장비들을 싣기 위한 차량 중 어떤 차량이 적합한지에 대한 기준 등이 없어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환자 진료기록이나 청구 자료 등 자료를 입력하는 과정 등도 까다로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자료를 입력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게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상황으로, 저절로 “내가 시범사업에 참여 안 하고 만다”라는 말이나 재택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의사에게 “사업에 참여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라고 말을 할 정도로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재택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더라도 병·의원에서는 재택의료에 선뜻 나서기가 고민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가정간호사’가 있는데, ‘가정간호사’는 큰 대학병원 중심으로 간호사들이 방문진료를 하는 형태이다보니 대학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갈 수가 없는 한계를 갖고 있어 대학병원에서 퇴원한 일부 중증 환자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해외에서는 재택의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고, 우리는 어떤 사례를 본받아야 할까요?
A. 재택의료와 관련해서 대표적으로 생각이 떠오르는 국가로는 유럽이나 미국 등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개업의의 30~40%는 우리나라에서 재택의료로 정의할 수 있는 방문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영국도 의사의 진료기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처럼 병원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약 50% 정도 된다면 20~30%는 전화 상담 환자이고, 나머지는 방문진료(재택의료)를 하는 환자일 정도로 재택의료가 활성화돼 있습니다.
이러한 말만 들으면 우리나라에서 만약 재택의료를 도입한다고 한다면 유럽의 사례를 벤치망킹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유럽·미국은 우리나라와 제도적·환경적인 차이가 너무 커서 벤치마킹을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유럽의 영국·네덜란드의 의사들이 방문하는 모형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형태로 이뤄져 있습니다. 애초에 의료체계 자체가 전혀 다르게 설정돼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의료보험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의료보험체계이며, 영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주치의(GP)를 지정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국가의료제도(NH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재택의료를 도입하는 데에 가장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를 운영 중인 국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제도 등이 유사한 일본이 우리가 벤치마킹하기가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법과 제도, 정책 등의 흐름과 위치가 20~30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택의료 관련해 법과 제도 등을 참고할 때에 현재의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는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을 운용하고 있지만,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처럼 단일 의료보험이 아닌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지역의료보험조합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각 지역마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병이 나면 돈을 걷어 의료비에 투입해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어떻게든 노인들이 병원에 덜 가게 하고, 중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한편, 가급적이면 의료비가 적게 나가는 재택치료로 노인들이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유도함으로써 재정을 절약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보다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예를 들자면 서울특별시 광진구 주민들이 아프거나 광진구 주민들이 의료시설에 많이 방문하게 된다면 늘어난 이용량 만큼 광진구 구청장이 책임지고 광진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의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하는 구조가 현재 일본의 의료·요양보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본 제도적인 여건에 차이가 있으므로 우리나라와 환경이 비슷하다고 일본의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