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여의 기간 동안 보건의료계를 큰 혼란에 빠뜨렸던 간호법 사태는 법안의 최종 폐기로 일단락됐으나, 그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보조인력(PA)에 의한 무면허 의료행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행위에는 의사가 해야 할 업무와 간호사 및 기타 보건의료직역이 해야 할 업무의 범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의료법에서는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의사의 업무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P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 문제가 커지면서 업무 범위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PA 문제가 대두되고, 무면허 의료행위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어도 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의료기관 내에는 의사가 근무하고 있고, 의사가 그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해당 행위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의사에게 물을 수 있고, 의사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아주 예외적으로 의사가 없음에도 의사가 아닌 공무원에게 제한적인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일반 병의원은 물론 보건소나 보건지소까지도 가기 힘든 의료 취약지역에 위치해 있는 보건진료소이다.
보건진료소는 현재 ‘지역보건법’상 지역보건의료기관(보건소, 보건의료원, 보건지소 및 건강생활지원센터)이 아니다. 보건진료소는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규정된 기관으로, 군수나 구청장이 보건의료 취약지역의 주민에게 보건의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 및 운영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보건진료소가 위치해 있는 지역들을 보면, 공중보건의가 근무해야 하는 보건지소를 설치할 정도의 인구나 진료 규모가 되지 않는 지역이면서, 교통 인프라도 열악하여 의료기관 접근성도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건진료소에는 의사가 배치될 수 없으므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서는 간호사 또는 조산사 면허를 가진 사람에게 24주 이상의 직무교육을 실시한 이후에 보건진료 전담공무원 자격을 부여해 의료행위를 가능하도록 해놓고 있다.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의 범위로는 ▲질병ㆍ부상 상태를 판별하기 위한 진찰ㆍ검사 ▲환자의 이송 ▲외상 등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의 치료 및 응급 조치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 ▲질병ㆍ부상의 악화 방지를 위한 처치 ▲만성병 환자의 요양지도 및 관리 ▲정상분만 시의 분만 도움 ▲예방접종 ▲의료행위에 따르는 의약품의 투여 등이 있다.
언급된 의료행위의 범위를 보면, 보건진료소에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은 사실상 의사가 하는 거의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찰, 검사, 투약, 처치 등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기에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 업무범위와 상충되는 문제가 있고, 의학적 지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실력과 성향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의 건강이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산간 및 도서 지역 등 보건지소조차 설치하기 힘든 지역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도 보건진료소에서 이루어지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역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지역보건의료기관에 보건진료소를 추가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정에 따라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를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보건진료소뿐만 아니라 보건지소의 경우에도 공중보건의가 없는 경우에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하였다.
만약 이 법안이 제정되면, 산간 및 도서 지역 등에서 거주하는 소수의 주민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던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수 만에서 수 십만 명이 거주하는 읍ㆍ면 단위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 지역보건법상 보건소는 시ㆍ군ㆍ구에 1개소씩 설치하도록 되어 있고, 보건지소는 보건소가 위치한 읍ㆍ면을 제외하고 읍ㆍ면마다 1개소씩 설치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본래 지역보건법상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의 의료행위는 공중보건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최근 공중보건의사의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어 아예 진료가 안 되거나, 파견 진료만 가능해 일주일에 1~2일 정도만 진료가 가능한 보건지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준병 의원은 언제든 보건지소에서 주민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번 개정안을 발의했겠지만, 이는 의료행위의 개념과 위험성, 그리고 그로 인한 책임의 문제까지 많은 것을 간과한 어리석은 대책일 뿐이다.
현재 남자 의사들의 대체복무로 충당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의 배출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는 ▲의과대학 내 여학생 수의 증가 ▲군필자의 입학 증가 ▲의대 재학 중 복무기간이 절반 정도인 현역병으로의 입대 비율 증가 ▲군의관 선발 인원 유지 등의 원인 때문이다.
여학생 수, 군필자 수, 현역병 입대 등을 강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만약 정부가 지역 내 공중보건의사의 수를 현실적으로 유지하려면 해결 방법은 의사 병역 제도를 개편해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통합 운영하는 방법뿐이다.
현재 부대 편제에 따라 불필요하게 많이 배치되어 있는 군의관 제도를 없애고, 각 지역 및 권역별로 의사 대체복무 요원들을 적절히 배분해 지역의료센터(가칭)의 형태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
그래서 이 센터에서 평시에는 지역사회 보건의료도 책임지면서 평시 군 작전을 지원하고, 전시에는 군의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보건진료소가 설치돼 있는 도서 및 산간 등 극히 일부 지역에는 병원은 물론 의원급 의료기관도 없기 때문에 보건진료소에서의 예외적인 무면허 의료행위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보건지소가 위치해 있는 대부분의 읍ㆍ면 지역에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병원급 의료기관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읍ㆍ면에 거주하는 주민들까지 무면허 의료행위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동에 불과하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주민들이 읍ㆍ면에 위치한 보건지소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받도록 할 것이 아니라, 읍ㆍ면에 위치한 병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응급 이송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따라서 윤준병 의원은 즉각 해당 법안을 철회하고, 자신의 무지와 부주의함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국회는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질 좋은 의료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지 저질 의료나 무면허 의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해당 법안이 언급조차 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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