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과 기면병, 투렛의 환자들이 장애판정기준 등이 각 질환의 특성과 중증도에 부합하지 않아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장애 판정 자체가 사실상 힘든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다양한 개선방안들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이종성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CRPS환우회와 한국뚜렛병협회, 한국기면병환우협회에서 주관하는 ‘CRPS, 투렛증후군, 기면증 등 소수장애 의견 청취를 위한 간담회’가 4월 21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최종범 아주대학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모든 통증질환 환자들의 중증도와 장애 판정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했다.
먼저 최 교수는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경우 통증점수가 10점 만점에 10점이라도 관절구축 또는 마비가 없으면 장애가 인정되지 않고, 진단되더라도 장애진단 기준의 심하지 않은 장애로만 주로 진단되고 있는 현 상황을 지적하면서 이종성 의원과 두유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사무관에게 現 장애진단 기준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특히, 정신장애도 검사를 통해 장애진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의 행동과 말을 살핀 다음에 장애진단을 내리고 있다면서 통증도 정신장애 진단처럼 환자의 증상, 말, 행동을 보고 판단해 내릴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더불어 미국의학협회에서 통증질환의 중증도를 정립한 기준이 있음을 덧붙이면서 최 교수는 “우리에게도 모든 환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며, 공신력이 있는 기관에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만의 통증질환의 중증도를 정립해야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 장애정도판정 기준이 기면병과 전혀 맞지 않음을 꼬집으며, 기면병 환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개선의 필요성과 개선방안을 제언했다.
우선 정 교수는 “기면병은 뇌에서 히포크레틴 또는 오렉신과 같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돼 각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물질의 분비가 적어지면서 나타나는 질환으로, 참을 수 없는 심한 주간졸림과 탈력발작, 야간수면파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기면병 환자는 ▲업무 능력 저하 78.4% ▲직업 상실 불안 49.3% ▲소득 감소 46.6% ▲승진 제한 38.5%에 달하는 등 사회적 기능이 대폭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사회에서 ‘게으른 사람’이라는 등의 낙인에 찍힌 채로 살아가게 된다”라고 기면병 환자들의 어려움을 전했다.
더불어 기면병 환자의 경우 운전 시 졸음운전 등으로 교통사고 등이 발생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높은 점을 덧붙이며, 이처럼 기면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인 만큼, 국가차원의 장애인 복지정책이 필요한 대상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현재 장애정도판정 기준에 따르면 기면병은 정신장애로 분류돼 있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만 장애로 진단할 수 있어 기면병을 정신장애로 ‘낙인’을 찍게 만들고 있으며, 현행 장애 측정 기준은 기면병과 관련성이 전혀 없는 기준들로 이뤄져 기면병의 장애 정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현재 기면병 환자들은 장애가 있음에도 제대로 진단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기면병 장애등급 판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정 교수는 총 3가지의 방안을 제안했는데, 첫 번째 방안은 기면병을 뇌병변장애로 재분류하는 방안이며, 두 번째 방안은 진단 주체를 정신과 외에 신경과 전문의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세 번째 방안으로 기면병을 뇌전증 장애와 유사하게 독립된 장애로 분류하는 방안으로 신체적장애 > 내부기관장애 > 기면병장애 형태로 분류를 신설하는 방안을 소개했으며, 기면병 환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국 기면병 환자 레지스트리 구축을 비롯해 기면병에 대한 전국 규모의 연구가 필요함을 조언했다.
김수연 한국뚜렛병협회 회장과 조윤화 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학령기에 제일 발병이 높은 투렛의 특성을 감안해 투렛장애 소아청소년에 대한 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김 회장은 “투렛에 대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정한 움직임(운동틱)이나 소리(음성틱)를 갑작스럽고 빠르게 반복해 내는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전체 유병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되는 질환으로, 폭발적 반복성 고함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마의 반복, 다발성 근육경련, 자해, 다양한 동반질환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투렛의 경우 현재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중 습관반전법, 심부 뇌 자극 등이 시행되고 있으나, 해당 치료 행위들은 대부분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완치는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조윤화 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투렛은 소아청소년기(6~18세)에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투렛장애는 발병부터 완화기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진행돼 양육과 돌봄의 스트레스를 초래해 환자와 환자 부모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현행 투렛장애의 장애진단 기준은 2년 이상의 성실하고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치료불응성으로 장애가 고착됐을 경우에만 진단이 이뤄지며, 그마저도 만 20세 이상부터 장애진단이 가능하다는 한계로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아청소년들은 장애진단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조 연구원은 장애 신청을 할 수 없는 투렛장애 소아청소년은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렵고, 증상으로 인해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우며, 장애인복지법 제21조에 의거한 ▲직업지도 ▲직업 적응 훈련 ▲취업 알선 등을 받을 수 없어 독립적 생활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회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전했다.
특히 특수교육의 경우 환경 적응에 문제가 있어야 하며, 학습에도 문제가 있어야만 특수교육 대상자 요건을 충족하게 돼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기만 하면 특수교육 대상자에서 떨어지는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투렛장애 소아청소년의 경우도 기준을 마련해 장애를 판정하고, 이후 장애 상태의 변화에 따른 재판정을 시행하는 형태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장애 판정 업무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현행 장애 판정 기준과 관련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발표했다.
신 교수는 “현재 6개로 나눠지는 등급에 따라 복지 혜택이 결정되는 장애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외부적으로는 중증 장애와 경증 장애로 구분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 장애를 판정할 때에는 6등급으로 판정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3급까지가 중증 장애이고, 4~6급이 경증 장애라는 것을 고려하면 장애 판정 과정에서는 사실상 경증 장애로 판정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로 인해 환자들이 장애 등급 상향을 요구하는 실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장애 유형을 현행 방식대로 분류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질병이 나오거나 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환자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꼬집었다.
이어 질병별로 중증도 등을 토대로 장애 등급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 사회생활이 어려움 여부와 난이도 등을 가지고 다양한 질환·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형태의 기준으로 제도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음을 제언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재까지 제기된 문제점과 제안 등에 대해 해결 과정 등의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에 보건복지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 3가지를 지목 및 정리했다.
먼저 홍 교수는 “장애 판정기준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CRPS와 투렛, 기면병 등의 질환의 문제에 대해 하나씩 해결하며 나아가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CRPS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항은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므로 이를 해결하는 것을 우선시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며, 투렛은 만 20세 이상부터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15세로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기면병은 장애 분류 자체가 ‘정신장애’로 잘못 들어가 있는 것이 문제이므로 현행 정신의학과 전문의만 장애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닌 신경과 의사도 장애 여부를 진단할 수 있도록 추가하는 것이 여러 해결책 중 쉬운 해결책으로 보임을 조언했다.
이용우 CRPS 환우회 회장은 시행령 변경을 통해 CRPS와 기면병, 투렛 등에 대한 장애 기준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조금 더 빠르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두유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사무관은 위와 같은 다양한 제언 등에 대해 “장애판정기준 등에 대한 검토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번에 제안 및 지적한 사안들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많이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수교육과 같은 사안은 교육부와 등록장애인제도가 연결돼 있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임을 설명하며, 교육부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겠다고 전했으며, “장애판정기준 등은 보건복지부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련 연구나 학회 의견, 장애계 의견 등을 수렴해 추진하겠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