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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조력존엄사 또는 의사조력자살, 과연 허용할 수 있을까

안규백 의원의 ‘조력존엄사법’ 놓고 의료계, 종교계, 법조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찬반의견 나뉘어

안규백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주관한 ‘의사조력자살, 말기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조력존엄사 토론회‘가 8월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 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는 지난 6월 안규백 의원에 의해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의 통과를 놓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조력존엄사는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가, 의사에 의해 처방된 약물을 직접 복용 또는 투약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된 이후, 이번에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으로 조력존엄사라는 개념이 처음 제시됐다.

개회사에서 안규백 의원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최근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결과 4월 76%, 8월에는 82%가 찬성했다. 종교계와 의료계의 반대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국민적 관점에서 법안이 통과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고, 죽음을 경시해서 이 법안을 낸 것은 결단코 아니다. 오늘 토론회를 시작으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김현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좌장을 맡았고, 2명의 발제자와 6명의 토론자가 참여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윤영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 및 조력존엄사법안 쟁점’, 김현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의사의 자살조력을 법으로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1.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 및 조력존엄사법안 쟁점’으로 발제를 진행한 윤영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국내외 사례를 바탕으로 조력존엄사법 발의의 배경과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윤영호 교수는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저조한 연명의료중단 결정과 과도한 가족에 의한 결정 등의 문제가 있고, 암 외의 질병으로도 호스피스가 이용 가능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호스피스 이용자의 거의 대부분이 암 환자일 정도로 암 외의 질병으로는 호스피스 이용이 어려운 등의 문제가 있다”며 “그런 부분에서 발의된 조력존엄사 입법화 여론조사 결과는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국민적 기대의 절망적 표출이며, 관계기관의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는 병행될 수 있으며, 조력존엄사 법안의 쟁점을 바탕으로 웰다잉 문화의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연명의료, 호스피스로 대표되는 협의의 웰다잉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광의의 웰다잉으로 나아가, 웰다잉문화 활성화를 위한 기금 및 재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발제를 진행한 김현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조력존엄사보다 의사조력자살이라는 표현이 명실상부한 것 같다”며, 의사조력자살의 허용 논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김현섭 교수는 “예외적 상황에서 허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돕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며, “과연 윤리심리 전문가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없애는 것이 합리적인가?”고 물었다.

또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말기환자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다면, 왜 이를 말기환자에만 한정하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말기환자가 온전히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돌아봐야 한다”며, “원하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할 수 있는 법이, 환자에게는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살을 고려해 보라는 권유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섭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바탕으로 말기환자에 대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다는 연명의료결정법의 논거가 그대로 비말기환자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할 이유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의사가 환자를 안락사시키는 자발적 안락사까지 허용될 수도 있다. 의사조력자살과 자발적 안락사가 허용되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변할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계, 의료계, 법조계, 시민 단체 등 각 분야 대표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연구소장은 “생명은 가장 근본이 되는 가치로, 생명권과 대비되는 죽을 권리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다. 권리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공적인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죽을 권리의 주장은 단지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이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달리 내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것을 존엄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조력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그 역시 자살을 포장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생의 말기 돌봄을 위한 우리사회 전체의 노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며, “간병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의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는 최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에서 시행된 설문조사 결과처럼, 다양한 국민의 원의를 신중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는 “말기환자들의 자의임종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중요한 과제”라며 논의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연명의료와 조력존엄사는 사회 규범과 의료 조치, 의료 윤리 측면에서 매우 다르므로 조력존엄사 법안을 연명의료결정법에 덧붙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말기환자가 겪는 임종 과정은 개개인이 모두 다르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에 대한 담당의사의 판단이 포함된다”며,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심의할 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의사가 임종 돌봄 대신 서류 업무 부담을 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윤석 교수는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존엄이라는 가치를 내포한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보다 의사조력 자의임종이라 하자”며, “조력존엄사법 제정에 앞서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보완이 우선이며, 조력존엄사법은 연명의료결정법과 분리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준희 법무법인 온고을 대표변호사는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조력존엄사법에 찬성하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헌법 제 10조에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구체적 발현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간통죄 폐지), 임신중지권(낙태죄 폐지),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조력자살을 인정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의 판결 사례와 함께 법안 반대의견에 대한 반박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악용 및 남용 가능성에 대한 반박으로는 “개정법률은 조력존엄사의 대상환자를 말기환자로 제한하고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조력존엄사를 판단할 정도로 절차적으로 엄격하다. 악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은 모든 법률에 존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 회장은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개인적 선택은 자살이고 의사조력자살은 존엄사라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자살도 존엄사라고 해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조력자살을 요청했지만 의사가 들어주지 않은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돼 지금 8년째 살고 있다. 의사의 판단이나 환자의 자기결정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영숙 회장은 “말기환자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지 결정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은 아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마지막까지 의미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통증 관리 체계화 등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찬성의견을 밝혔다. 그는 “25년 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 관련 찬반 논쟁이 있을 때의 핵심 논거가 지금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는 안락사가 통과됐다”며, “현재 안락사법이 통과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어 “단체 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느낀 것이 많다. 조력존엄사 입법 발의안도 현장의 상황을 담기에는 미흡하지만 현재 연명의료결정법보다는 발전된 것이라 생각해 찬성한다”며, “간병살인 등 오랜 간병에 지쳐 가해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 찬반이 갈리는 문제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제도이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재경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연명의료제도에 정부 수가를 반영하고, 인프라 확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조력존엄사법 심사위원회로 민간합동 범부처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으나 중복적 설치보다는 기존 협의체를 통해 심도있는 협의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안규백 의원은 폐회사에서 ‘조력존엄사’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 “자살을 금기시하는 동아시아 문화를 고려, 고민 끝에 자살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서에 맞춰 존엄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